소식좌 사회생활백서
어째서 뭐든 곱게 끝나지 않는 걸까. 병원 치료를 받으며 조금씩 ‘먹기’ 시작한 나는 아주 보기 좋게 같은 병실 동생의 길을 따랐다. 거식증에서 폭식증으로 넘어간 것이다. 그것도 아주아주 애매한 ‘폭식 없는 폭식증’으로. 덕분에 내가 폭식증이라는 걸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했다. 누가 봐도 많이 먹진 않으니까.
폭식 없는 폭식증
폭식 없는 폭식증을 이해하기 위해선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누가 봐도 많이 먹고 조절할 수 없는 사람은 ‘폭식 장애’에 해당한다. 반복적으로 폭식을 하는 사람. 폭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 하지만 ‘폭식증’은 이에 하나가 더 붙는다. 폭식 후 ‘제거 행동’을 하는 것. 이뇨제를 복용하거나 일부러 구토를 하는 등. 섭취한 음식을 제거하기 위한 행동이 따라오면 ‘폭식증’으로 구분된다. 그렇기에 ‘폭식 장애(대식증)’은 비만인 경우가 많고 ‘폭식증’은 정상체중 혹은 저체중인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나는 ‘폭식증’에 해당했다. 먹고 싶은 것을 조절하지 못하고 구토하기를 반복했으니.
다만 ‘폭식’이 없다고 말한 것은 내 기준에 많이 먹었다고 한들 다른 사람 기준에는 정상적인 식사량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만약 내 앞에 자장면 한 그릇이 있고 그걸 다 먹는다면 사람들은 “잘 먹네!”라고 말할 테지만 내 입장에서 그 양은 ‘폭식’이었다. 한계를 넘은 식사량. 조절하지 못한 식사량. 실은 그럴 때마다 나는 남몰래 속을 게워냈다. 매 끼마다 빠짐없이.
말할 수 없는 폭식증
내가 ‘먹고 토한다’는 것은 아주아주 가까운 사람만이 알고 있었다. 같이 사는 사람만. 사람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몰래 빠져나와 화장실에서 “우웨엑”하는 것도, 식사 약속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붸에엑”하는 것도 대부분 알지 못했다. 그만큼이나 난 노련했다. 처음 먹고 구토를 할 때엔 눈물 콧물 다 빼며 힘들어했지만, 익숙해지다 보니 과식을 하면 자연스럽게 위액이 역류했다. 조금의 의지만 있다면 모두 게워낼 수 있었다. 그렇게 습관이 됐다. 아주 못 된 습관이.
지인들과 함께하는 식사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넷이서 훠거 집을 갔는데 훠거는 내게 요주의 대상이었다. 훠거를 좋아하는 나머지 과식 할 위험이 많기 때문에. 게다가 끊이지 않고 나오는 음식들은 차마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하나, 둘. 조금씩 집어먹은 음식이 점점 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가슴까지 음식이 찼을 땐 속을 비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저 잠깐 화장실 좀....”
나는 여러모로 나에게 졌다. 조절하지 못하고 음식을 먹었고 이 음식을 ‘제거’하고 싶다는 충동에도 졌다. 깔끔하게 청소가 된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 뚜껑을 열고 소리 없이(노련해지면 거의 소리가 나지 않는다) 속을 게워냈다. 변기가 지저분해지지 않게 물을 부어 청소까지 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너무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자칫 다른(?) 오해를 할 정도로.
손을 깨끗하게 씻고 자연스럽게 난 눈물까지 닦아내며 최대한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자리에 앉았다. 지인들은 왜 이리 안 오나 걱정하던 찰나였다. 나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화장실 찾는데 시간이 좀 걸려서요.”
입만 열면 거짓말.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식사 중인 사람에게 “토하고 왔어요.”라고 말하는 것도 실례이지 않나. 사람들은 구토로 피가 쏠려 붉어진 내 얼굴을 보며 걱정했다. 혹시 속이 좋지 않느냐고. 나는 역시 거짓말을 했다.
“제가 위가 좀 안 좋아서요. 괜찮아요, 정말.”
애써 말을 돌려 상황은 모면했지만, 자괴감이 쏟아졌다. 다른 사람과의 식사자리에서도 ‘제거 행동’을 참지 못하는 나. 먹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가지는 나. 제거 행동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나. 심지어 먹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까지. 아무리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해도 나는 알고 있었다. 나의 진실을. 나의 진심을.
폭식증을 되돌아보다
반복되었던 지난 오 년. 나는 만성 위염을 얻었고 역류성 식도염을 얻었다. 더불어 목 안의 형태가(기능적으로 문제는 없지만) 기형에 가까워졌다는 검사 결과를 받았다. 소화기내과 의사는 내게 물었다.
“혹시 억지로 구토하는 버릇이 있나요?”
“... 네.”
“그것 때문에 목 안쪽이 변형된 것 같아요. 지금 당장 문제는 없지만, 계속 구토를 하시면 식도 파열이 올 수 있어요. 치료를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의사는 문제없는 것은 단순히 내가 젊기 때문이라고 했다. 식도 파열이 오면 죽을 수 있다는 것 즈음은 나도 알고 있었다. 아버지도 식도 파열로 죽다 살아났던 사람이니까. 식이장애가 없던 아버지도 연세가 들며 식도가 파열됐는데, 나는 얼마나 남은 걸까?
물론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경각심을 가지며 ‘고치겠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 정도로 삶에 의지가 있는 사람은 아니어서. 다만 먹고 제거하는 행위가 일반 사회생활에서 불편함을 주고 내 마음도 불편하게 만들기에 자제해야 한다는 마음만큼은 자연스럽게 들었다. 갈 땐 가더라도 살아있는 만큼은 속 편히 먹고살아야 하니까.
제멋대로 사는 게 자유는 아닌 것처럼.
자신에게 얽매이는 것도 자유가 아닌 것처럼.
나에게는 제약이 필요했고 그 제약은 자유를 위한 기본 규칙이었다.
이 매거진은 주 2~3회 연재 이후 브런치북으로 전환됩니다.
식이장애 이야기 이후 소식에 관련된 이야기 / 소식좌 사회생활 꿀팁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작가소개 : 이수연
남들보다 '덜' 먹는 사람.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더 먹어"였다. 성인이 되어 우울증과 함께 공황장애, 식이장애를 앓았으며 정신병원에 입원해서도 "더 드세요"를 가장 많이 들었다. 지금은 식이장애를 극복하고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소식좌로 살아가고 있다.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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