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좌 사회생활 백서(2)
소식이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절. 소식인을 세상에 꺼내게 된 사건 하나가 생긴다. 바로 웹 예능인 <밥 맛 없는 언니들>. 박소현 님과 산다라박 님이 출동한 이 예능은 ‘소식좌’라는 단어를 탄생시키며 단회 조회수 400만까지 이끌어 냈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후 우후죽순 소식좌와 관련된 콘텐츠가 생겨났으며 소식은 하나의 식이습관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전의 소식인은 어떻게 살았는가. 만날 복 없이 먹는다는 말과 그것밖에 못 먹냐는 말을 견뎌내며 살아야 하지 않았는가. 그게 다 먹은 거냐는 공격과 사주는 맛이 안 난다며 핍박받지 않았는가. 소식인들이여, 일어나라! 당당히 말하라! 우리는 다 먹었다고!
동료를 만나다
이러하듯 ‘소식좌’라는 단어가 세상에 나오기 이전. 세상은 여전히 1인분을 기준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와 같은 소식인은 당당하게 소식인이라 말하지 못하고 남들의 권유에 못 이겨 과식을 해야 했다. 그럴 때 반가운 동료를 만난 적 있다. 소식좌인 남성분이었다.
당시 나는 한 모임을 진행하는 호스트였다. 나를 주축으로 처음 보는 사람들이 모였고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세 시간의 모임동안 서로의 정보는 꽁꽁 감춘 채 ‘인생은 무엇인가’에 가까운 주제로 토론을 했다. 모임이 다 끝나자 사람들의 발걸음이 서성였다. 아쉬운 마음에서였다. 소식을 하지만, 술은 참지 못하는 나는 그들을 술집으로 이끌었다.
소주병과 맥주병이 테이블에 놓이고 갖가지 안주가 올라왔다. 늦은 시간까지 영업하는 홍대 술집에는 세계를 막론한 술과 안주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모임 시간은 저녁 7시부터 10시. 저녁을 먹지 못한 사람들은 전투적으로 안주를 공략했다. 나와 그분만 빼고.
남들 다 든 젓가락 한 번 들지 않고 맥주를 호로록 마시는데 그 남성분과 눈이 마주쳤다. 모임 동안 대화는 나눴지만, 아직 서로를 잘 모르기에 나는 편하게 먹으라는 몸짓을 했다. 그분은 사람 좋게 웃으면서도 끝까지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앞접시에 챙겨줄 정도로 사람이 좋지 못한 나는 챙기는 시늉만 하고 술을 마셨다. 그렇게 술자리는 무르익었다.
언뜻 보아도 다 취해 보이는 상황. 막차를 타는 사람은 자리를 뜨고 남을 사람만 남았다. 여덟 명의 멤버는 반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분 또한 술자리에 남아있었고 2차는 감자탕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와 내가 같은 종족임을 확인했다.
술자리의 인원이 적어지니 누가 음식을 먹고 먹지 않는지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우거지만 골라서 먹고 있었고 그분은 국물만 골라 먹고 있었다. 술병은 계속 쌓여가는데 음식은 줄지 않았다. 그야 소식좌 두 명과 일반인 두 명이 감자탕 대자를 시켰으니, 입이 많았다. 줄어들지 않는 안주를 보고 사람들 또한 우리의 정체를 눈치채기 시작했다. 누군가 불쑥 물었다.
“두 분은 왜 안 드세요?”
“아, 저는 일차에서 많이 먹어서요.”
그분이 대답했다. 거짓말이었다. 내 앞에 앉아있어 계속 관찰한 결과 그는 거의 안주에 손을 대지 않았다. 하지만 화려한 말솜씨로 위기를 모면하고 사람들의 눈은 나를 향했다. 나는 그보다 조금 더 솔직한 사람이었다.
“저는 술 먹을 때 안주 잘 안 먹어요.”
술자리에서 대충 넘어가기 좋은, 그러나 완전히 거짓은 아닌 적절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분은 나의 그 넘기기 스킬을 눈치챈 듯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유심히 보았다. 이윽고 모두 택시를 잡던 새벽 2시. 그가 내 옆으로 와 은근슬쩍 물었다.
“원래 많이 안 드시죠?”
나만 그를 관찰한 게 아닌 듯했다. 우리는 서로를 관찰하며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바로 고백했다.
“저 원래 잘 못 먹어요.”
“실은 저도 그래요. 저 아까 전 세 젓가락이랑 국물 두 스푼 먹었어요.”
“저는 번데기 탕 조금이랑 우거지... 근데, 그걸 세요?”
내가 반문하자 그는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나는 잽싸게 그 물음의 이유를 밝혔다.
“사실 저도 뭐 먹을 때 얼마나 먹었나 세어요. 워낙 조금 먹으니까 셀 수 있더라고요.”
“저도요. 아, 저 같은 사람도 여기 있어서 다행이네요.”
그때 나는 알았다. 소식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먹었는지 자연스럽게 계산한다는 것을. 누군가 “왜 안 먹어!”라고 말할 때 방어하기 위함일 수도 있고 그냥 적게 먹다 보니 습관이 된 일일수도 있었다. 그런데 나만 그런지 알았지, 그도 그랬다. 이후 소식인을 몇 번 조우했을 때, 그들 또한 얼마나 먹는지 세고 있다는 걸 알았다. 젓가락질마다 생각하는 것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한 입..., 두 입....”
이후 소식인의 역사적인 사건, <밥 맛 없는 언니들> 웹 예능이 나오고 출연진이 각각 몇 입을 먹었는지 제작진이 셀 때, 먹은 것을 세는 건 소식인의 특징이라는 걸 확신했다. 프로그램의 후일담까지 알 수 없으나, 소식인이 얼마나 먹는지 세는 것의 아이디어는 나와 그분 같은 소식인을 자세히 관찰해야 생각해 낼 수 있는 아이디어라면서.
나는 아직도 이 소식인의 특징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분이 아직도 얼마나 먹는지 습관처럼 세는지도. 그것이 설령 ‘먹고 있다’는 변명의 수단일지라도 나는 이렇게 꾸며내고 싶다.
“우리는 먹을 때도 먹고 있는 것에 집중합니다. 얼마 못 먹기 때문이죠. 공자도 마음이 있어야 먹어도 맛을 안다고 했습니다. 식사량을 알고 먹는 것. 이것이 마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작가소개 : 이수연
남들보다 '덜' 먹는 사람.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더 먹어"였다. 성인이 되어 우울증과 함께 공황장애, 식이장애를 앓았으며 정신병원에 입원해서도 "더 드세요"를 가장 많이 들었다. 지금은 식이장애를 극복하고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소식좌로 살아가고 있다.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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