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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연 Oct 10. 2023

소식을 위한 음식은 어디에

소식좌 사회생활백서(2)

 한창 음식 소비문화가 ‘많이! 더 많이!’를 외칠 때, 인터넷과 방송에서 소식좌의 삶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마 과잉된 소비문화에서 식사조차 미니멀리즘을 향해 가는 자연스러운 사회 현상이지 않을까 싶지만, 여전히 음식은 ‘많이! 푸짐하게!’를 외치고 있다.

 이런 문화 속에서 소식은 어찌 보면 가성비가 뛰어나다고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먹고 싶은 음식은 늘상 남기 마련이고 또 버리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배달음식은 양이 너무 많고 식당에 가도 양이 많기는 똑같다. 똑같은 가격을 주고 덜 먹는 것. 그것이 소식의 삶이다.


소식의 여정


 그리하여 나는 소식을 위한 음식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먼저 양이 적어야 한다. 빵 하나, 두유 한 팩이면 한 끼를 충분히 때울 수 있다. 더 간단하게 편의점 삼각김밥이 있지만, 너무 많은 실험을 거쳤기에(몇 그람이 가장 적당한가, 어떤 삼각김밥이 가장 맛있는가) 이제 포장지만 봐도 맛이 느껴지는 경지에 올랐다. 그다음 옮겨간 것은 김밥집이었다. 남겨도 되고, 양도 적고. 김밥집마다 특색 있는 재료로 나름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여기에 조금 더 추천을 하자면 유부초밥을 들 수 있다. 위에 무엇을 올리느냐에 따라 맛도 확확 변하고 반찬과 함께 먹으면 집밥 느낌을 내며 식사를 할 수 있다. 아무것도 올라가지 않은 유부초밥에 김치만으로도 환상의 한 끼가 보장된다. 편의점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종목이기도 하다.

 조금 더 고급지게 소식을 한다면 샐러드월남쌈이 있다. 샐러드는 적은 양의 포장이 많다. 월남쌈은 대체로 푸짐한 인상을 주는데 직접 싸 먹는 것이 아닌 이미 완성된 월남쌈을 배달하는 매장이 있다. 물론 건강식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받고 있지만, 음식을 남기는 아픔에 비하면 충분히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이다. 라이스페이퍼가 아닌 유부나 다시마로 된 쌈도 있고 소스를 여러 가지 선택할 수 있어 다양한 맛까지 즐길 수 있다.

 젊은 여성이라면 한 번쯤은 먹어봤을 마라탕 역시 소식이 가능하다. 자신의 식사량만 제대로 알고 있다면 적정량의 재료만 담아 저렴한 가격에 소식까지 할 수 있다. 물론 최저 금액이 있기 때문에 그 이상 담아야 하지만, 야채를 듬뿍 넣거나 꼬치류를 몇 가지 담아주면 금방 최저금액을 맞출 수 있기에 적극 추천한다.

 도시락 역시 소식과 어울린다. 밥 양이 많긴 하지만, 다양한 반찬이 조금씩 담겨 있는 도시락은 반찬만 다 먹어도 본전이다. 밥은 먹기 전 적정량을 덜어낸 뒤 봉지에 넣어 얼려주면 다음에 또 먹을 수 있다. 한 끼로 여러 끼를 해결하는 요령이랄까.


 하지만 명심해라.

 당신이 만약 소식좌라면 먹고 싶은 것은 분명 남기게 되어 있다.



소식을 위한 음식은 어디에


 이러한 점에서 소식을 위한 음식은 많이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샤브샤브도 칼국수에서 힘이 빠져버리고(죽이 진짜인데), 닭 한 마리 역시 칼국수에서 위기가 온다. 국밥집에 가면 열심히 먹었음에도 “리필했어요?”라는 말을 듣고 치킨을 시킨다면 다음날 식사는 자연스럽게 치밥이 될 것이다. 그나마 양이 맞는 음식은 대부분 건강식이라면서 적은 양으로 같은 가격, 혹은 더 높은 가격을 받는다.


 아아. 우리는 언제쯤 알맞은 양을 먹을 수 있을까!


 음식점에 ‘소자’가 양과 가격까지 소자이길 바란다. 무한리필은 필요 없으니 가격이라도 좀 덜 받았으면 하고 욕심을 낸다. 일 인분도 못 먹는데 가격 때문에 이것저것 더 시키지 않아도 괜찮으면 좋겠다. 돈도 돈이지만, 버려지는 음식은 나도 아깝다. 소식을 한다고 해서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고 싶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적당한 양을 먹고 음식을 남기지 않길 바랄 뿐.


‘더 많게! 푸짐하게!’


 물론 소비자를 위한 일이면서 중요한 일이지만, 소식인도 소비자로 당당히 0.5인분을 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혼자서 식당에 가서 푸짐하게 남기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릇을 싹싹 비워 ‘이곳 참 맛있네’라는 시그널을 사장님께 보내고 싶다.


 각자의 1인분이 다양하게 존중받는 세상에서.





이 매거진은 주 2~3회 연재 이후 브런치북으로 전환됩니다.

소식좌 사회생활 꿀팁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작가소개 : 이수연

남들보다 '덜' 먹는 사람.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더 먹어"였다. 성인이 되어 우울증과 함께 공황장애, 식이장애를 앓았으며 정신병원에 입원해서도 "더 드세요"를 가장 많이 들었다. 지금은 식이장애를 극복하고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소식좌로 살아가고 있다.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등을 썼다.


Insta @suyeon_lee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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