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좌 사회생활백서(2)
양심고백!
따스한 음식 냄새가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저녁시간, 창문 너머로 스멀스멀 들어오는 된장찌개 냄새 같은 푸근한 글을 한가득 넣고 싶었다. 하지만, 애써 변명을 한다. 솔직히 나는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못 한다.
현실판 자취러
그런 나는 일명 현실판 자취러였다. 자취라 해서 혼자 음식을 해 먹는 그런 모습을 떠올린다면 드라마를 많이 봤을 가능성이 있다(‘식샤를 합시다’는 공감하지 못하는 드라마 중 하나다). 진정한 현실판 자취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최소한의 설거지거리를 배출하며 초간단 요리 몇 가지를 하는 정도다. 물론, 혼자서 잘해 먹는 분이 있을 수 있다. 그런 분이 있다면 존경을 담아 기꺼이 배우러 가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나의 자취는 현실이었다. 돈 없는 스무 살. 적은 식비로 살아가기 위해 대부분의 끼니는 집에서 해결해야 했다. 자취의 환상에 빠져 설레는 마음으로 예쁜 식기를 고르며 식재료를 잔뜩 샀지만, 실상은 음식물 쓰레기를 창조하는 창조요리의 향연이었다. 내가 만든 것을 차마 먹을 수 없었고(인간이 허용할 수 있는 맛이 아니었다), 양조절에 실패해 남은 음식은 썩기 마련.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는 것이 마음 아픈 사람이다.
삼 개월 차에 들어갈 때에는 현실을 인지했다. 나는 소식을 하며 요리를 못 한다. 심지어 라면조차 제대로 끓이지 못해 쫄깃한 면에 알맞은 국물이란 로또 당첨과 비슷한 확률로 성공했다. 그래서 구입한 것은 식판. 딱 먹을 수 있는 양만 덜 수 있고 설거지도 간편할 거란 의미에서였다.
일단 밥은 전기밥솥이 알아서 잘해주기 때문에 직접 지어먹었다. 지난날, 엄마가 알려주신 대로 쌀을 씻고 밥솥에 넣은 뒤 손을 담가 물 양을 조절했다. 꼬들보단 질은 밥을 좋아해 물은 부족하지만 않게 넣는 것이 목표였다. 마지막으로 전기밥솥의 ‘취사’ 버튼을 누르면 밥이 완성. 뜨끈한 김이 뿜어져 나오기 전, 메인 반찬을 준비했다.
가장 좋아하던 것은 스팸이었다. 자취하는 사람에게 명절 최고 선물은 스팸선물세트였다. 대중성에 비해 가격이 높은 스팸은 대부분 명절에 선물 받은 것들이었다. 설거지거리를 줄이기 위해 스팸은 캔 안에 넣은 채 칼로 잘라 바로 프라이팬으로 향했다. 지글지글. 노릇노릇하게 익어 기름이 튀기 시작하면 식판 위에 키친타월을 올리고 스팸을 식판으로 옮겼다.
또 다른 메인 반찬은 3분 시리즈였다. 따스한 집밥 얘길 하는데 3분 시리즈가 나오는 것이 민망하지만, 나에게는 소울푸드에 가까웠다. 어릴 때부터 집에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 직접 밥을 해결해야 했고 그때 가장 많이 먹은 것이 3분 시리즈였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손맛 대신 3분 시리즈로 입맛이 맞춰진 나는 3분만 있다면 소울푸드를 소환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나 버렸다.
3분 시리즈, 혹은 스팸이 식판의 메인을 차지했다면 나머지는 밑반찬을 더는 작업이었다. 밑반찬은 대부분 반찬가게에서 구매했는데 오징어젓갈, 계란장조림, 열무김치, 깻잎 무침 등이 단골손님이었다. 최대한 잘 쉬지 않는 반찬이기도 하고 흰 밥에 하나만 올려 먹어도 한 끼가 가능한 무적의 반찬들이었다. 쓰지 않은 젓가락으로 반찬을 먹을 만큼만 조금씩 식판에 올리고 막 지은 밥을 한 주걱. 든든한 한 끼 완성이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뜨끈뜨끈하게 갓 지은 흰쌀밥과 노릇노릇한 스팸. MSG가 넘쳐나는 3분 시리즈와 그나마 나의 건강을 책임지는 밑반찬들. 탄수화물과 지방, 단백질이 묘하게 합을 맞춰 올라간 식판. 반찬들은 딱 먹을 만큼만 덜기도 했고, 식판에서 음식을 남기게 되면 곧 음식물 쓰레기 행이기에 일부러라도 음식을 다 먹었다. 싹싹 먹은 식판은 물로 헹군 뒤 퐁퐁으로 헹구고 빡빡 닦으면 반짝이는 빛을 냈다. 수저와 식판. 이 모든 식사에 나온 설거지였다.
혹시나 국이 없어 걱정했다면, 시중에 포장된 국을 사 먹기도 했다. 다만 1인분으로 나온 양이 많기에 2개로 소분해서 하나는 냉동실에, 하나는 국그릇에 담았다. 국그릇이라는 설거지거리가 하나 더 나오긴 하지만, 든든하게 한 끼!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국은 필수인지라 가끔 기분을 낼 때 사 먹는 특별식이었다. 엄마가 소분해서 국을 얼려 보내주신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데워 먹었지만.
아아. 음식 냄새가 나는 푸근한 글을 쓰고 싶었는데. 밥 말고는 해 먹은 것이 없는 것 같아 뒷맛이 씁쓸하지만, 나는 이게 자취의 현실이라 생각한다(내가 갔던 어떤 분의 자취방은 그릇조차 없었다. 모두 일회용품을 쓰신다고). 그나마 저녁에나 저렇게 해 먹을 수 있었지, 아침에는 보온된 쌀밥 위에 김자반을 뿌려먹었다. 그만큼이나 빡빡한 삶이었다. 마음에 여유가 없어 요리도 못 했나 보다.
지금 나는 여유로운 나를 꿈꾼다. 나를 위해 소중한 요리 하나를 정성스럽게 만드는 모습.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그릇에 담아 조금씩, 먹고 싶은 만큼만 먹는 모습. 내게 촉박한 출근시간과 밀린 업무만 없었어도 지금쯤 요리왕이 됐을 텐데. 하지만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아직 풍요로운 마음을 가진 요리왕이 될 수 있을 ‘가’ 능성이 있다. 비록 지금 요리점수는 ‘가’일지라도.
이 매거진은 주 2~3회 연재 이후 브런치북으로 전환됩니다.
소식좌 사회생활 꿀팁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작가소개 : 이수연
남들보다 '덜' 먹는 사람.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더 먹어"였다. 성인이 되어 우울증과 함께 공황장애, 식이장애를 앓았으며 정신병원에 입원해서도 "더 드세요"를 가장 많이 들었다. 지금은 식이장애를 극복하고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소식좌로 살아가고 있다.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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