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연 Oct 20. 2023

채식주의는 아닌데요

소식좌 사회생활백서(2)

“혹시 채식주의세요?”


 상추만 씹어먹던 내게 누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2023년. 세상은 먹거리에 철학을 넣어 싸우기 시작했다. 채식 vs육식. 채식이 몸에 이롭다. 육식이 몸에 이롭다. 동물을 위해서 채식을 해야 한다. 채식은 동물을 위한 게 아니다 등. 이들의 싸움은 전 세계적으로 번져가 서로에게 찌릿한 눈빛을 보내기에 이르렀다.


 그런 나에게 날아온 조심스러운 질문. 혹시 강력하게 채식을 외치는 것은 아닌지. 종교적 신념이나 동물을 위한 뜻이 있는 것은 아닌지. 나는 족발 대신 남은 상추를 쌈장에 찍어먹으며 말했다.


 “그건... 아닌데요?”


 건강 따위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았던 스무 살의 현실자취러는 건강을 염려해야 할 삼십 대가 되었다. 흰 밥에 김자반만 올려 아침을 먹어도 하루종일 일할 수 있던 나는 이제 흰 밥을 많이 먹으면 피곤함이 미친 듯이 몰려와 낮잠을 자야 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그것뿐이랴. 뱃속에서는 자꾸 노래를 불렀다. 꾸르륵. 꾸르르륵. 소화 능력까지 떨어져 매번 불편한 배를 움켜쥐어야 했다. 소식좌의 기본은 소화기관의 무능함 아닌가.



나이가 들었나


 그때부터 나는 채식 위주의 식사에 눈이 갔다. 편의점에 나오기 시작한 비건 만두부터 채식 식당, 채식 요리. 특별히 채식에 관해 사회적 의지를 품은 것도 아니고, 고기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지만, 전생에 초식동물인가 싶을 정도로 채식을 하면 속이 편했다.

 또 하나의 장점. 채소는 조리가 크게 필요 없었다. 맛있게 먹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대충 먹자면 또 한없이 간편했다. 대부분 데치거나 찌거나 무치면 끝! 거기에 참기름, 된장, 쌈장, 고추장만 있으면 무엇이든 한식 느낌을 내며 먹을 수 있었다. 소금은 필수.


 가장 많이 해먹은(해 먹었다고 표현하기 민망하지만) 것은 양배추찜이었다. 태국에 한 달 살기를 갔을 무렵, 가져온 한식이라곤 쌈장밖에 없던 시기였다. 이미 이 주 넘게 매일 향식료가 톡 쏘는 태국 음식을 매일 먹은 지라 음식에 지쳐갔다. 그때 마트에서 파는 양배추는 나를 구원해 주었다. 태국 마트에도 양배추는 팔았으니까. 심을 잘라낸 뒤 물에 씻어주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 그릇에 담았다. 물을 자작하게 부어주고 구멍 난 비닐봉지를 씌운 뒤 전자레인지에 5분 돌려주면 양배추 찜 완성. 거기에 쌈장을 찍어먹으면 일품 한식집에 온 기분이 들었다. 타지에서 맛볼 수 있는,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한식이었다.


 또 즐겨 먹는 것은 브로콜리. 어릴 때부터 브로콜리는 사과주수와 더불어 나의 주식이었다. 새벽에 출근하는 엄마는 그래도 애들 밥은 먹이겠다고 요리를 해 두셨지만, 아들딸 그 누구도 엄마 요리에 손을 대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엄마는 요리를 그만두었고 어느 날부터 삶은 브로콜리와 초장만 덜렁 식탁 위에 올렸다. 그리고 비로소 나의 취향을 저격했다. 나는 엄마가 삶아 준 브로콜리를 모두 먹었고 엄마는 딸이 음식(?)을 다 먹은 것에 놀랐으며 그 뒤 내 주식은 브로콜리가 됐다.


 그런 의미에서 브로콜리는 물에 담가 잘 씻은 뒤 칼로 밑동을 조금 잘라내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썰면 준비가 끝난다. 브로콜리를 손질할 때 미리 냄비에 물을 끓이고 소금 조금을 넣은 뒤 팔팔 끓는 물에 1분 정도 데치면 끝. 아삭하면 아삭 한대로, 푹 익으면 익은 대로 맛있다. 왜냐하면 초장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엄마는 내가 본가에 갈 때면 브로콜리를 준비하신다.


 고깃집에서도 나의 베스트는 버섯이다. 잘 구운 양송이버섯과 새송이 버섯은 웬만한 소고기 저리 가라다. 고기를 안 먹는 것은 아니지만, 고깃집에서 버섯은 거의 다 내 차지다. 다들 고기를 먼저 먹으니까. 숯불에 잘 구운 버섯에는 맛깔스러운 그릴 자국이 떡하니 나 있다. 고기용 가위로 한 입 크기 정도로 작게 자른 뒤 쌈장에 찍어먹으면 환상의 맛이 난다. 근데 이 정도면 그냥 쌈장을 좋아하는 걸지도.


 마지막.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편의점에서 야식을 찾는다면 연두부를 먹는다. 180g 정도로 포장된 연두부에 발사믹 소스를 곁들여 먹으면 고급스러운 샐러드처럼 즐길 수 있다. 연두부에 소스를 부을 때에는 구석구석 소스가 침범할 수 있도록 숟가락으로 길(?)을 만들어준다. 방충망같이 조각조각 사이를 갈라준 뒤 소스를 뿌려 한 입 먹으면 연두부와 발사믹이 적절한 비율로 입안에 들어온다. 당장 먹지 않아도 유통기간이 충분한 편이라 쟁여두고 먹기도 하는 간식 겸 야식이다.



결론은...


 사실 지구의 평화를 위해서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는진 모르겠다. 채식주의자와 육식주의자 간에 싸움은 다가가기 무서울 정도다. 물론 그런 분들의 뜻에 반기를 들 생각은 없다. 존중하고 그 실천에 각각 의미가 있다. 이게 다 잘 살자고 그러는 거 아닌가.


 그럼에도 ‘거봐, 역시 채식이잖아.’라고 끌어당긴다면 나는 온몸으로 저항하며 외칠 것이다.


 “저는 그저 무능한 소화기관을 가진 소식인이라고요!!”


 지구의 평화를 챙기기 이전에 내 위장부터 평화를 찾았으면 좋겠다. 위장과 세계에 외치고 싶다. 다들 싸움을 멈추세요! 우린 하나라고요!





작가소개 : 이수연

남들보다 '덜' 먹는 사람.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더 먹어"였다. 성인이 되어 우울증과 함께 공황장애, 식이장애를 앓았으며 정신병원에 입원해서도 "더 드세요"를 가장 많이 들었다. 지금은 식이장애를 극복하고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소식좌로 살아가고 있다.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등을 썼다.


Insta @suyeon_lee0427



이전 10화 씹고 뜯고 맛보고 마시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