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좌 사회생활백서(3)
뷔페. 그리고 무한리필. 소식인이라면 두려워할 이 두 단어. 뷔페와 무한리필에 갈 돈이면 차라리 양이 적고 비싼 오마카세를 가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겠지만,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 이를테면 회식자리나 결혼식, 가족모임 같은.
소식인이 뷔페에 가면
이럴 때 참으로 난감할 수밖에 없다. 모두 전투적으로 먹는 현장에서 나 홀로 고고하게 조금 먹은 뒤 “다 먹었어요.”라고 식사를 끝내기 어렵고 주변에서 계속 퍼 나르는 음식은 화수분마냥 줄어들지 않는다. 만일 당신이 먼저 수저를 내려놓는다면 사방에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왕 돈 내는 건데 좀 더 먹어! 왜 이렇게 조금 먹어!”
“더 먹을 수 있어. 자, 자!!”
그러면 당신의 앞접시에 음식이 쌓일 것이고 당신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아주 작은 음식을 골라 입에 넣고 최대한 오래 씹게 될 것이다. 어차피 그릇이 비워지면 다시 주변에서 음식을 놓을 것이기 때문에.
나 역시 사회생활을 하는 입장으로 이러한 경우를 많이 겪었다. 무한리필 샤브샤브집은 우리 집 단골 가족모임 공간인데 그곳에 가면 항상 감당할 수 없을 양의 음식을 먹어야 했다. 결혼식에 가도(요즘은 식사를 안 하는 게 도와주는 거라지만) 뷔페가 나온다면 어쩔 수 없이 무엇이라도 먹어야 했다. 모두가 자리를 지키는데 나 홀로 빠져나올 수 없기에.
그래서 이 이야기에 공감할 당신을 위해, 소소한 뷔페와 무한리필 대처법을 알려주려 한다.
대처 꿀팁 대방출
먼저 뷔페 대처법이다. 일단 뷔페에 가게 되는 시간대는 대부분 식사시간일 것이다. 그렇다면 배가 고플 테고, 아마 꽤 많이 먹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 부분을 조심해야 한다.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은 첫 접시에 많은 양의 음식을 담게 만들기 때문이다. 페이스 조절은 첫 접시부터. 첫 접시는 무조건 적게 담는 것이 포인트다.
접시에 음식을 담을 때에는 ‘맛만 본다’는 생각으로 한 입 정도의 양만 담는다. 종류는 다양해도 상관없으나 접시에 최대한 펴 담아 많이 담았다는 인상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 접시를 가지고 자리로 돌아왔을 때, 주변의 잔소리를 피할 수 있다. 뷔페에서도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면 조금 많이 담게 되는데 이 또한 주의하시라. 당신이 퍼 나르는 접시는 하나여선 안 된다. 다음 접시에서 더 담으면 된다.
첫 접시는 천천히 먹는다. 다른 사람들은 첫 접시에 많이 담기 때문에 먹는데 시간이 걸리므로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천천히 먹어야 한다. 탄산음료는 헛배가 찬 느낌을 주므로 음식이 물릴 때 아주 조금 마시길 추천한다.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 접시로 향해 갈 때 은근슬쩍 같이 일어나면 첫 단계 클리어.
아마 진정한 소식인이라면 이 첫 단계에서 이미 배가 찼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식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두 번째 접시부터 배가 조금 덜 찼다면 좋아하는 음식을 조금, 배가 찼다면 대충 먹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야채나 샐러드 위주로 그릇을 채운다. 마치 음식을 데코레이션 하듯 고기 한 점에 야채를 가득 담는다면 푸짐하게 담았다는 인상도 줄 수 있다. 실상은 다 풀떼기겠지만.
세 번째 접시는 위기다. 평균적으로 2~3 접시 이후 디저트로 넘어가게 되는데 이때 사람들의 눈치를 잘 챙겨야 한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즈음이라면 먼저 일어나 사람들을 위해 디저트 음식, 혹은 과일을 담아 온다. 디저트 접시는 내가 다 책임지지 않아도 괜찮은 ‘공용’ 접시다. 사람들을 챙기는 척하면서 디저트 접시를 놓으면 내가 먹지 않아도 사람들이 먹어주기 때문에 내가 먹었다는 착각까지 줄 수 있다.
만약 이렇게까지 했는데 모두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이 없다면 과감하게 커피로 넘어가라. 차나 커피 등을 가지고 와 자리에 앉고 고상하게 디저트와 곁들인다면 여유 있는 이미지와 함께 음식을 덜 먹을 수 있다. 마시는 것도 먹는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뭐라 할 가능성은 비교적 낮아진다.
이번엔 무한리필
다음은 무한리필 대처법이다. 소식인은 성실해야 한다. 특히 무한리필 집에서. 무한리필은 대부분 셀프 바로 운영되기 때문에 당신은 먹는 일보다 음식을 가져오는 일을 맡는 것이 편하다. 자리는 바깥 자리에 앉는다. 고깃집이라면 고기를 굽는 것도 좋다. 아쉽게도 나는 고기를 잘 굽지 못해 받아먹는 입장이지만, 능력자라면 고기 굽는 위치만큼 음식을 덜 먹는 포지션도 없다.
또 하나 내 앞에 놓인 앞접시의 음식은 디피용처럼 손을 잘 대지 않는 것이 좋다. 앞접시가 비어있는 순간 음식이 앞에 놓일 것이기에 앞접시에는 음식을 하나쯤 남겨두면 덜 먹을 수 있다. 활용하자면 앞 접시에 음식을 하나즈음 남겨두고 테이블에 빈 음식이 없는지 스캔한다. 고기나 반찬 등 필요한 것이 있다면 가져오겠다며 자리를 피해라. 그리고 여유롭게 음식을 담은 뒤 올려두면 배려심 넘치는 이미지와 함께 덜 먹을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계속 더 먹으라고 권유한다면, 술을 주문하는 것도 좋다. 대부분 무한리필 집은 술은 추가금액을 내야 한다. 사람들이 먹는 것에 집중할 때 추가금액을 내야 하는 술을 마시겠다 하면 눈치 없어 보일 수 있지만, 모든 음식은 안주로 전락하여 조금 먹어도 되는 이미지를 준다. 모두 식사에 전념할 때 혼자 느긋하게 술을 곁들여 음식을 먹으면 마이웨이를 강하게 어필할 수 있다.
가장 강력한 자리는 ‘내가 사는 자리’다. 만약 이 모든 비용을 내가 낸다면 권력의 힘으로 음식을 거절할 수 있다. “저는 많이 못 먹어요. 대신 더 많이 드세요~”라고 말한다면 상대를 챙기는 느낌까지 줄 수 있다. 다만, 돈이 많이 든다는 단점은 치명적이다.
여기까지 오신 소식인이어
뷔페와 무한리필을 이겨낸 당신. 자랑스럽다. 여기서 깨달음을 얻는다면, 소식좌는 돈이 많아야 한다. 돈을 내는 대신 적게 먹을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 것이다. 뷔페와 무한리필은 상대를 대접하는 느낌으로 접근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건필을 빈다.
작가소개 : 이수연
남들보다 '덜' 먹는 사람.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더 먹어"였다. 성인이 되어 우울증과 함께 공황장애, 식이장애를 앓았으며 정신병원에 입원해서도 "더 드세요"를 가장 많이 들었다. 지금은 식이장애를 극복하고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소식좌로 살아가고 있다.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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