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좌 사회생활백서(3)
아무리 집밥을 좋아하는 사람일지라도 피하기 어려운 식사 약속이란 존재하는 법이다. 소개해 준 사람이 결혼을 한다던가(얻어먹어야 하는 순간이다), 어른과의 식사자리라던가, 평소 동경하던 스승님과의 만남이라던가. 식사는 때때로 ‘대접(마땅한 예로써 다함)’의 의미로 통하기 때문에 받아야 하는 순간은 무릇 존재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식사 약속을 피할 수도 있다. 여기서는 평소 식사 약속을 피하는 노하우와 피할 수 없을 때의 대처를 소개하려 한다.
식사약속 피하기
먼저 사람을 만나지만 식사는 하고 싶지 않을 때. 주로 지인이나 친구를 만날 때가 여기에 해당한다. 만나서 얘기하고 신나게 놀고 싶지만, 먹는 것은 부담스럽다. 소식인이라는 걸 밝혔을 경우에는 수월할 수 있어도 애매한 사이라면 아래 팁을 참고해 보자.
첫 번째는 약속 시간을 애매하게 잡는 것이다. 오후 12시~2시 사이는 대부분 점심시간으로 통용된다. 이러한 경우 점심 식사를 하는 것이 자연스럽기에 식사를 피하기는 어렵다. 비슷한 의미로 오후 5시~8시 또한 저녁 시간에 해당된다. 이 시간에 만났을 때는 저녁을 먹고, 이 차로 술집에 가는 것이 통상적인 루트다. 그렇기에 약속시간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 오후 3시~4시를 적극 활용한다.
퇴근 이후의 만남이라면 저녁식사는 피하기 어렵다. 6시에 퇴근하면 향후 두 시간 동안은 저녁 시간에 해당하므로 중간에 다른 볼일이 있다고 말하지 않으면 저녁 식사로 이어진다. 물론, 점심을 먹고 열심히 일하느라 배고플 수 있다. 하지만 기억하라. 당신은 소식좌고 저녁식사는 2차를 부른다는 것을.
이럴 때에는 요리주점에 가길 추천한다. 식사를 해결하면서 단번에 술로 갈 수 있다. 이때 쓸 수 있는 말은 “여기 근처에 요리 주점 괜찮은데 있대!(검색은 미리 해보시길)” 혹은 “나 배는 별로 안 고파서 안주 겸 저녁 먹을 수 있는 데로 가자.” 등이 있다. 이때 안주는 처음 과하게 시키지 않는다. 시킬 때엔 이 말을 곁들이자.
“일단 조금만 시키고 나중에 더 시키자.”
이 말을 하지 않으면 처음부터 너무 많은 양의 음식을 주문하게 되어(배고픔에 속는 것이다!) 음식이 많이 남겨버릴 수 있다. 여러 사람과의 자리라면 이 말을 하면서 자신은 자리에 없다는 생각으로 음식을 시키게 하자(인원수 -2인 정도의 양만 시켜라). 당신인 1인석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지만, 당신의 위는 1인분이 아니니까. 또 남모를 소식좌가 존재할지도 모르니 마이너스 2인이 안전하다.
심화과정
이번에는 피하기 힘든 식사 약속에 관해 다뤄보겠다. 이건 조금 과할 수 있지만, 피할 수 없다면 뭐다? 즐긴다! 특히나 어려운 상대와의 식사자리라면 잘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으므로 내가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상태로 상대를 만나야 한다. 그러니까, 하루종을 아무것도 먹지 않는 거다.
실제로 나는 이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는데, 저녁 약속이 있다면 점심을 먹지 않는다. 너무 배가 고프다면 두유나 우유로 허기를 달랜다. 흔들리는 마음에 삼각김밥이라도 먹게 되면 그날 저녁식사는 “왜 이렇게 못 먹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잘 참는 것이 포인트다. 만약에 점심 약속이라면 전날 밤 9시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그러면 최소 12시간은 공복 상태가 유지되므로 평소보다 많이 먹을 수 있다.
이 방법은 비싼 음식점(오마카세, 참치 등)에 갈 때에도 유용하다. 일반인들이 뷔페에 가서 많이 먹기 위해 전날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과 비슷한 심리다. 뽕을 뽑자는 심리. 뷔페에서 많이 먹는 것은 진작에 포기했다지만, 비싼 음식까지 포기하기는 어렵다. 특히 오마카세라면 천천히 조금 나오는 음식을 끝까지 음미해야 하지 않는가. 이럴 때는 식사시간에 따라 적당히 공복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맛도 배로 즐길 수 있고 식사량도 배로 늘릴 수 있는 기술이다.
하지만, 갑자기 생긴 어려운 자리라면? 이 부분은 사전 준비를 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말로 승부를 보아야 한다. 평소 관심 있던 상대가 “아 배고프다. 밥 먹고 싶은데.”라고 말한다면 당장 달려가서 함께 밥을 먹어야 하지 않은가. 혹은 아무 생각 없이 모임에 갔다 뒷풀이를 하게 된다면? 혼자 빠져나가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들과 어울리고 싶다면? 이럴 때는 일단 자리로 향한 뒤 조금 먹는 시늉을 하다 이렇게 말한다.
“아, 오늘 점심(혹은 어제저녁)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 아직 속이 안 좋네.”
여기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약간의 연기를 더한다면 사람들은 당신에게 음식을 권하지 않을 것이다. 단점이 있다면 의도치 않게 소화제를 먹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말을 할 때 이미 배부른 상태일 것이므로 소화제는 순수히 소화를 도울테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자주 만나는 사람에게 이 기술을 쓴다면 병원에 가보라는 권유를 받을 수 있으니 가끔 쓸 수 있는 방법이다.
꼭 식사를 해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먹어야 하는 ‘식사’라는 것은 서로가 함께할 수 있는 시작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모든 식사자리를 피하기보다 적절하게 함께하는 것이 인간관계가 부드러워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한 가지. 거짓은 오래가지 못하므로 가까워졌다면 꼭 그들에게 소식인임을 당당히 밝히도록.
작가소개 : 이수연
남들보다 '덜' 먹는 사람.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더 먹어"였다. 성인이 되어 우울증과 함께 공황장애, 식이장애를 앓았으며 정신병원에 입원해서도 "더 드세요"를 가장 많이 들었다. 지금은 식이장애를 극복하고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소식좌로 살아가고 있다.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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