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좌 사회생활백서(3)
사람들이 많은 술자리에선 마음이 조금 편안하다. 대충 양 많은 안주를 넉넉히 시키고 덜어 먹는 요즘 술자리에선 쌓여가는 술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이때만큼은 모두들 “왜 안 드세요?”라는 말의 의미가 ‘술’로 바뀐다. 술 왜 더 안 드세요. 술은 왜 안 드세요. 아무도 안주를 안 먹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다.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 꼼수는 메뉴를 골라야 하는 산을 넘어야지만 가능하다. 안주 욕심이 없는 나는 술친구로 적합하지만, 친구 이전에 서로가 배려하기 바쁜 애매한 관계들이 모인 술자리에선 난 애물단지다. 모두들 가장 ‘잘 못 먹는’ 나를 두고 무엇을 시켜야 조금이라도 더 먹을지 고민하기 때문이다.
“수연 씨 드시고 싶은 거 시켜요!”
“수연 씨 못 드시는 거 있어요?”
“이건 좀 드실 수 있으시려나??”
이런 질문들이 내게 쏟아지면 난 머리를 긁적인다. 아, 저는 뭘 시키든 상관은 없어요(안 먹을 거니까). 뭘 시켜도 얼마 못 먹어요(안 먹고 싶다고). 애써 말해보아도 사람들은 배려하기 바쁘다. 키도 작고 체구도 작은 내가 잘 먹지도 않으면 뭔가 없어 보이는 걸까. 뭔가 없어 보여서 자꾸 챙겨주려 하는 것인가. 아... 아핫. 먹지도 않을 안주를 골라야 하는 상황에서 어색한 웃음만 나온다. 아무거나 시켜주세요. 진짜 아무거나. 외로운 외침이 울려 퍼지는 순간 사람들은 다시 묻는다.
“그래도 못 드시는 건 있을 거 아니에요. 그거라도 제외시키죠!”
이런 따뜻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기어코 나를 먹게 만들겠다는 마음이 정말이지 대단하다. 내 머릿속은 ‘못 먹는 거’를 자꾸만 떠올린다. 곱창은 못 먹어요(어차피 술집에 곱창메뉴 없어요, 다른 거는요?). 비린 거 못 먹어요(이건 비리려나? 사장님! 이거 비려요?). 뼈 있는 거 못...(아 그럼 뭐 시키지?).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과 방패의 싸움. 그 끝에 결국 나는 커밍아웃을 한다.
“저 시식코너만큼 밖에 못 먹어요...!!!”
그 순간 술자리는 조용해진다. 일, 이, 삼 뒤엔 웃음이 터져 나온다. 시식코너만큼 먹는 날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삼 초 정도인 것이다. 나름 애처로운 마음으로 소식 커밍아웃을 해내면 사람들은 메뉴 선정에서 나를 제외시킨다. 웃겼으니, 조금 위트 있었다고 해도 될까. 그렇게 술자리는 시작된다. 내 앞접시에 아무것도 없어도 모두 눈치채지 못한다. 오로지 술잔이 비었는지만 신경 쓸 뿐이다.
끝나지 않는 밤
그렇게 끝난 1차는 보통 식사와 술이 동시에 진행된다. 하지만 술자리가 어디 1차에서 끝나랴. 다들 어렵게 모인 만큼 술자리는 다음을 향해 간다. 술자리를 옮긴다. 술집에서 술집으로. 안주를 다시 시켜야 하는 곳으로.
나는 이때가 되면 사람들이 배려심을 잃을 만큼 취했길 바란다. 아직 술기운보다 배려심이 세게 남아있다면 다음 메뉴 권한도 다시 내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술집 거리를 배회하다 보면 사람들은 다시 묻는다.
“수연 씨 저건 먹어요? 저긴 어때요?”
“저는 배불러서... 아무거나 괜찮아요.”
“그래도 얼마 안 먹었더구먼! 이번엔 진짜 수연 씨가 잘 먹는 거 먹어요.”
피할 수 없다면 마주하라. 다양한 간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국밥집. 고깃집. 피자집. 치킨집. 어쩜 저리 먹기 부담스러운 이름들만 가득한지. 간판을 보기만 해도 배부른 느낌이 든다. 내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가벼운 것’을 찾아낸다. 보통은 ‘맥주집’이 그 대상이다. 맥주만 마셔도 괜찮고 안주도 작고 가벼운 곳. 혹은 1인 1 메뉴를 시키지 않아도 눈치 보이지 않는 곳.
그러나 수제 맥주집에 가는 것은 피한다. 이런 곳은 보통 소주를 팔지 않아 술 값이 엄청나게 나오니까. ‘할맥’이나 ‘봉구비어’ 같은 곳이 적합하다. 다행히 이런 곳은 체인점이 많아 어딘가엔 분명 있다.
보통 그렇게 ‘맥주집’을 찾아낸다면 다시 세계는 술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안주는 적당한 양과 적당한 가격이면 모두 수긍하며 시키니까. 술잔은 점점 쌓여간다. 목소리가 점점 커져간다. 그렇게 내가 먹는 양을 신경 쓰던 사람들도 배려심을 잊어간다. 그렇게 우리는 적당히 배려하는 관계에서 대충 배려하는 관계로 넘어간다.
술자리가 끝난다. 아무도 내가 먹은 양을 알지 못한다. 그럭저럭 잘 마신 맥주 덕분에 나는 나름 잘 먹는 인상까지 남긴다. 더치페이 카톡이 온다. 시식코너만큼 먹었지만 쿨하게 돈을 보낸다. 다음 만남에선 배려가 덜해지기 바라는 마음으로 카톡을 남긴다.
작가소개 : 이수연
남들보다 '덜' 먹는 사람.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더 먹어"였다. 성인이 되어 우울증과 함께 공황장애, 식이장애를 앓았으며 정신병원에 입원해서도 "더 드세요"를 가장 많이 들었다. 지금은 식이장애를 극복하고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소식좌로 살아가고 있다.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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