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연 Oct 20. 2023

사이드는 사랑입니다

소식좌 사회생활백서(3)

 지금 내가 상주하는 작업실에는 때때로 사람들이 가득 찬다. 글쓰기 수업과 그림 수업 때문. 글쓰기야 한 편을 쓰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그림은 다르다.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 기나긴 시간이 들어간다.

 그렇기에 작업실에 자주 남는 것은 그림반 사람들이다. 작업실 여기저기에 이젤을 세우고 그 위에 작품을 하나씩 올린다. 세 시간이라는 짧지 않은 수업 시간이면서 그림반은 늘 ‘나머지 수업’이 있다. 재료와 공간이 필요한 그림의 특성상, 사람들이 남아서 작업을 하는 것이다.


 사정이 그러하다 보니 그림 수업 날이면 자연스럽게 그림반 사람들과 저녁을 먹게 됐다. 오후 두 시부터 시작하는 수업은 저녁 다섯 시가 돼도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저녁시간을 훌쩍 넘기기 마련. 이때는 누군가 나서서 저녁을 제안한다. 작업을 해야 하니 선택되는 것은 배달 음식. 모두의 의견을 통합하기 어려우므로 보통은 도시락이나 한식, 피자로 통합된다.

 만약 다 같이 덜어먹을 수 있는 음식(피자 같은)이라면 큰 어려움은 없다. 대충 먹는 시늉을 한 뒤 먼저 일어나 작업을 할 수 있다. 그러나 1인분을 시켜야 하는 상황이라면 조금 난감하다. 각자 자신이 먹을 음식을 고르는데 1인분을 못 먹는다고 해서 남의 걸 빼앗아 먹기도 그러니까. 나만 먹으려고 끓인 라면에 한 젓가락이 얼마나 짜증 나는가. 물론 그 한 젓가락을 빼앗아 먹는 입장이라면 세상에서 제일 매력적인 음식이 되겠지만.

 그럴 때 내가 선택하는 것은 사이드 메뉴다. 다 함께 1인분을 시키기 때문에 나 하나 1인분을 주문하지 않는다고 배달 업체 사장님이 기분 나쁠 리 없다. 총 몇 명이 나눠먹는지도 알 수 없고 가게의 1인석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기에 마음 편히 먹고 싶은 사이드를 시킨다. 사이드는 뺏어먹는 라면 한 젓가락이기도 하다. 1인분 이상을 시키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특별식이니까.


내 위장은 사이드만 한가


 그날도 저녁은 배달이었다. 인원은 총 일곱 명. 선택된 곳은 도시락집이었다. 각자 하나씩 도시락을 선택했다. 삼겹살 도시락. 떡갈비 도시락. 김치제육 도시락. 이름만 들어도 든든한 느낌의 메뉴 속에서 내가 고른 것은 ‘묵무침’이었다.


“작가님 진짜 이것만 먹을 거예요??”



 1인분이 가능한 일반인들이 내게 물었다. 사이드라고 해서 오븐구이 파스타나 김밥 한 줄도 아닌 반찬으로 나오는 묵무침. 솔직히 나도 조금 망설여졌다. 배가 꽤나 고픈 상황에서 묵무침은 좀 너무한가? 행여나 다른 사람의 음식을 빼앗아먹는 진상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마음을 잡았다. 내 한 끼는 묵무침으로.

 배달이 오고 사람들은 익숙하게 자리를 펼쳤다. 포장을 뜯고 각자 시킨 도시락을 받아 들었다. 내게 주어진 것은 손바닥만 한 일회용기에 담긴 묵무침. 뚜껑을 열자 정말 묵만 한가득했다. 사람들은 걱정의 시선을 보냈다.


 생각보다 푸짐했던 도시락집의 인심은 반찬도 한가득이었다. 심지어 기본 반찬으로 묵무침이 나왔다. 그것뿐이랴. 떡볶이에 어묵무침, 잡채까지. 나는 남의 것을 빼앗아먹고 싶지 않아 묵묵하게 묵무침만 먹었다. 한 분은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내게 반찬을 나눠먹자고 했다. 자기도 1인분은 너무 많다며. 나는 선의를 거절하지 않고 아주 약간의 반찬만 나눠먹은 뒤(잡채를 거부하기 어려웠다) 다시 묵무침을 먹었다. 그리고 마침대 다 먹었을 때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배가 불렀다!


 사람들이 도시락을 싹싹 비워 먹는 동안 나는 묵무침을 싹싹 비워먹었다. 음식을 먹으며 바닥이 보이는 기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내가 한 그릇(손바닥만 한)을 다 먹다니! 간에 기별만 약간 줄 양의 묵무침은 무사히 내 위에 도착했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생각보다 든든한 한 끼였다.

 그 이후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이드 작가’라는 별명이 생겼다. 함께 밥을 먹을 때면 늘 사이드를 시켰기 때문. 파스타 집에서 배달을 시키면 수프를 주문했고, 햄버거를 배달시킬 때엔 어니언링이나 감자튀김만 시켰다.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사이드의 양을 무사히 소화해 냈다.


특별한 사이드, 특별한 사이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소식좌에서 사이드란 사회적 생존 노하우라는 것이다. 1인분의 음식은 부담스럽고 밥은 먹고 싶을 때, 사이드는 우리의 위를 충분히 만족시켜 준다. 다른 이들에게 1인분을 맡겨버리고 마음껏 단품으로 시킬 수 없는 사이드를 즐기는 것이다. 사이드는 늘 맛있고, 또 충분하다. 많이 먹어야 한다는 부담조차 주지 않는 착한 녀석이다. 그렇기에 만약 다 함께 배달을 시켜 먹는다면 당당히 사이드를 주문하자. 가격도 저렴하니 먹은 것과 상관없이 더치페이를 한다고 해도 남들에게 피해 줄 일이 없다.


 어쩌면 소식인의 삶이 ‘사이드’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당당히 인정받기 위해 이해가 필요한 모습. 보통 음식점에서 사이드는 1인분을 주문한 뒤 추가로 주문할 수 있는 음식이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특별하지 않은가. 솔직히 떡갈비나 돈까스 정식보다 그 뒤에 시킬 수 있는 사이드가 더 매력적이지 않은가. 어딜 가도 사리추가가 제일 맛있지 않나. 빠져나가기 힘든 유혹이지 않나.

 조금 더 주장해 보자면 심지어 소식인의 ‘사이드’는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걸 배울 수도 있다. 누군가 1인분을 시켜줘야만 사이드를 시킬 수 있으니까. 또 1인분을 시킨 사람이 사이드와 함께 풍성하게 먹고 싶다면 마음을 맞춘 뒤 다 같이 나눠먹을 수도 있으니까. 더불어 살아간다면 과식과 음식물 쓰레기가 없는 건강한 식사를 할 수 있다. 함께 하는 삶이 별거 있나. 다 같이 먹을 수 있는 만큼, 풍성하게 먹는 일이지.


 오늘도 나는 사이드를 시켰다. 만두 한 접시. 나는 넓은 마음으로 내 만두를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한 접시도 내게 많으니까. 욕심내지 않고 타인과 나눌 줄 아는 사람. 소식인이라고 해서 마음까지 좁은 것은 아니었다.






작가소개 : 이수연

남들보다 '덜' 먹는 사람.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더 먹어"였다. 성인이 되어 우울증과 함께 공황장애, 식이장애를 앓았으며 정신병원에 입원해서도 "더 드세요"를 가장 많이 들었다. 지금은 식이장애를 극복하고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소식좌로 살아가고 있다.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등을 썼다.


Insta @suyeon_lee0427

이전 16화 술자리 버티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