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연 Oct 20. 2023

명절 음식 거절하기

소식좌 사회생활백서(3)

 전국민적 식폭행(?)이 일어나는 명절. 소식인이 아닌 사람조차 괴로워하는 끝없는 음식의 향연. 그날은 명절. 설날과 추석이다.


 한 유튜브 채널에서 <그랜드마더>라는 영상이 올라왔다. 명절인지 아닌지 몰라도 할머니 집에 간 손자가 끝없이 나오는 음식을 이겨내지 못하고 계속 친구를 부른다. 스릴러같이 묘사되는 영상 속에 끊임없이 친구는 불어나고 그보다 더 음식이 불어난다. 마침내 음식을 다 먹어갈 즈음 두려운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음식이 부족한가 보네.”


 이 영상이 큰 반응을 얻은 것은 역시 공감되기 때문일 것이다. 할머니를 뵐 때면 계속 나오는 음식이 놀라우면서 부담스럽다. 그러나 그것이 할머니의 마음이라 생각하며 차마 남길 수 없다. 그렇기에 억지로 먹고 또 먹는다. 하루종일. 그곳을 벗어날 때까지.


소식인의 명절


 내가 태어날 때부터 소식인이라 하더라도 할머니는 피해 갈 수 없다. 엄마와 외할머니가 같이 지낸 이후부터 본가에 갈 때면 엄마와 할머니가 나를 두고 신경전이 펼쳐졌다. 엄마는 내가 원래 많이 먹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적게 담으라 잔소리하고, 할머니는 너무 적지 않냐며 계속 그릇에 밥을 올리셨다. 밥을 얹고, 덜고. 내 앞에 밥그릇이 놓일 때까지 두 분의 신경전은 끊이지 않는다.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내 앞에는 적은 양의 밥이 놓이지만, 솔직히 내겐 그것도 많다. 나는 역시나 자식 이기는 부모 없음을 시전 하여 이 정도는 못 먹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직접 일어나 밥솥으로 향해 먹을 수 있는 밥만 남기고 모조리 덜 어버린다. 그제야 엄마와 할머니 모두 합심하여 “왜 그것밖에 안 먹냐”라고 말씀하신다.


 이때 중요한 것은 진솔함이다. 상대는 가족이다. 거부할 수 없는 사랑과 애정이 넘치는 가족. 음식을 적게 먹는 것이 그 마음의 거절처럼 느껴져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진솔하게 말해야 한다.


 “저는 많이 못 먹어요. 이 정도가 적당해요. 마음으로도 배불러요.”


 여기서 우리 가족은 대충 넘어가는 분위기지만, 그렇지 않은 집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나 역시 할머니께 이렇게 말해도 할머니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신다. 여러 실험을 통해 찾아낸 값은 ‘건강’을 이유 삼는 것이다. 어른들은 특히 건강을 중요시하니까. 여기서 몇 가지 예제를 들겠다.


1) “전날 먹은 게 체한 것 같아요. 조금만 먹을게요.”
2) “요즘 속이 안 좋아서 조금 먹어야 속이 편하더라고요.”
3) “한의원에서 그러는데 너무 많이 먹으면 무리가 갈 수 있대요.”


 음. 이 말에 진솔함이 얼마나 담겨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건강을 무기삼는다면 어느 정도 넘어갈 수 있다. 특히 한의원을 무기 삼는 것은 꽤나 효과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건강에 관해 엄청난 질문세례와 걱정을 받을 수 있다. 병원 예약까지 하게 될 수 있으니 적당히 얼버무리는 능력을 갖춰야 사용 가능한 방법이다. 


 그런데 이조차 통하지 않는다면?

 그럴수록 잘 먹어야 건강하다는 답변이 돌아온다면?

 그때는 사실 이 방법밖에 남지 않는다.


 “실은 낮에 너무 배고파서 뭐 좀 먹고 왔어요. 지금 좀 배불러서 많이 못 먹을 것 같아요.”


 이 말은 명절날 첫 끼에서만 사용할 수 있지만, 본가에서 1박 2일 이상 머무는 것이 아니라면 효과적이다. 다만 서운해하는 엄마와 할머니의 표정을 볼 수 있기에 조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 서운한 표정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다면 명절날 본가에 가기 전, 전 날부터 쫄쫄 굶을 수밖에 없다. 정말 배고파서 조금이라도 더 먹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명절은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만약 1박 2일이라면? 아아. 피해 가기 어려운 일이다. 첫 번째로 뭐 좀 먹었다는 변명 이후 할 수 있는 변명이 없다. 그럴 때는 그냥 천천히 먹는 수밖에. 하지만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떠나기 전, 마지막 식사에서 쓸 수 있는 기술이 있다. 바로 “싸 주세요.”

 명절날, 본가를 떠나기 전 마지막 식사라면 모두가 아쉬운 분위기일 것이다. 이때 그간 너무 잘 먹었다는 것을 어필하며 조금만 담아달라 말한다. 대신 음식을 싸달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음식을 싸 주실 때엔 옆에서 보고 있는 것이 좋다. 감당할 수 없는 양의 음식을 싸주실 수 있기 때문에 곁을 지키며 이렇게 외쳐야 한다.


 “조금만요!! 조금만!! 다 못 먹어요!!!”


 음식을 종종 싸 주신다면 작은 락앤락 통을 챙기는 것도 요령이다. 음식의 양을 작은 용기로 제한하는 것이다. 작은 락앤락 통을 사놓으면 다음번 명절에도 챙겨가 그만큼의 음식만 싸 올 수 있다. 서로 기분이 상하지 않으면서 잔소리를 조금이나마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사실 명절 식사는 가족의 사랑을 느끼는 자리이기에 힘들지만 버텨야 하는 시간이다. 이런저런 수법으로 완벽하게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 밥을 안 먹을 수도 없고, 명절에 가족을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명심하라.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작가소개 : 이수연

남들보다 '덜' 먹는 사람.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더 먹어"였다. 성인이 되어 우울증과 함께 공황장애, 식이장애를 앓았으며 정신병원에 입원해서도 "더 드세요"를 가장 많이 들었다. 지금은 식이장애를 극복하고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소식좌로 살아가고 있다.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등을 썼다.


Insta @suyeon_lee0427

이전 13화 뷔페와 무한리필 대처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