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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연 Oct 01. 2023

NO! 프로아나!

소식좌 사회생활백서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프로아나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신조어나 뉴스 등에 관심 없는 나는 프로아나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내가 모를 수 없을 정도로(?) 프로아나라는 단어가 흔히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친구가 내게 이렇게 물었을 때 프로아나를 처음 들었다.


“너 프로아나야?”
“그게 뭔데?”
“그 뭐냐, 마른거 좋아하고 동경하고 그런 거.”


 

사실 그 사람이 한 말도 명확한 의미는 아니었다. 프로아나의 명확한 의미는 아래와 같다.


프로아나 (pro-ana)는 찬성을 의미하는 프로(pro)와 거식증을 의미하는 아나(anorexia)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신조어이며, 마른 몸을 추구하여 거식증 치료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위키백과


 그러니까 프로아나는 단순히 마르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거식증을 찬성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거식증인데 치료의사가 없거나 거식증에 걸리고 싶어 하거나 뼈가 보일 정도로 마른 것을 동경하고 또 원하는 것. 조금 더 프로아나에 관해 알아보자 ‘프로아나 조항’까지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곳에는 나조차도 상상하지 못한 무서운 조항도 있었다.



-혀를 면도칼로 베어서라도 먹지 마라.



 내가 식이장애이고 프로아나의 특징인 ‘먹토’나 ‘거식증’ 또한 경험했지만, 이 문구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다른 사람이 날 보면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게 이런 느낌일까 싶기도 했다. 혀를 면도칼로 베어서라도 마르고 싶은 것인가. 도대체 어느 정도면 혀에 면도날을 벨 생각까지 하는 걸까. 물론 나도 마른 것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스스로 프로아나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식이장애와 프로아나는 다르다


 나의 행적을 아는 사람들은 ‘그거나 그거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식이장애인 나에겐 꽤 중요한 문제다. 거식증에 ‘일부러’ 걸리고 싶어하고 그렇게라도 마르고자 하는 마음과 거식증에 걸릴 마음이 없는데 걸리는 것은 다른 일이다. 이건 마치 학교에 가고 싶은데 감기몸살로 결석하는 학생과, 학교에 가기 싫어 감기몸살이라도 걸리려 하는 학생의 마음차이라고 해야 하나. 학교에 가고 싶은 사람은 빨리 나아 학교로 가려 하겠지만, 학교에 가기 싫은 학생은 조금이라도 감기몸살이 오랫동안 낫지 않길 바랄 테니까.


 나도 마른 나를 좋아한다. 인정한다. 하지만 이건 다른 문제다.


 그들과 나를 구분지어 ‘저는 아닙니다’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프로아나를 선포한 한 학생은 왜 프로아나가 되었냐는 인터뷰에서 살이 쪘을 때엔 친구가 없었는데 살이 빠지니 연애도 해보았다고 말했다. 살이 빠지는 기쁨이 배고픔을 참는 고통보다 크다는 것이다. 그런것을 보면 그들도 나름의 속사정은 있을거라 생각한다. 사회의 시선이나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나. 프로아나를 정신병자 취급한다는 대목에선 (진짜 정신질환자로서)조금 억울했으나 조금은 따뜻한 시선으로 봐 달라는 말은 공감했다. 문제를 비난하기보다 사회와 환경을 개선시켜 나가는 것이 서로를 위한 일일테니까.



NO! 프로아나


 그럼에도 내가 ‘NO! 프로아나!’를 외치는 것은 식이장애가 자칫 ‘프로아나’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아나는 거식증에 ‘찬성’하는 것을 의미하지 곧 모든 식이장애를 의미하진 않는다. 먹을 수 있는데 먹지 않는 것과 먹을 수 없어서 먹지 못하는 것도 다르다. 나는 식이장애를 겪으며 스스로 식이를 조절할 수 없었다. 음식을 보기만 해도 헛구역질이 나 입 안에 넣을 수조차 없었다. ‘먹지 말아야 해!’가 아니라 ‘우웩!’이었다. 병원에서도 정신과적 문제라고 판단했고 말 그대로 ‘치료’가 필요했다.

 치료에 대한 의사 또한 프로아나는 다르다. 프로아나는 거식증에 걸리더라도 치료를 거부한다. 더 마른 몸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식이장애가 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정신병원에 입원하면 젊은 식이장애 환자를 종종 볼 수 있고 그들 중 다수는 스스로 치료 의지를 가지고 병원에 입원했다. 나 또한 식이장애에 관해 치료의사가 있고 그렇기에 식사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똑같이 종이컵에 밥을 담아 먹어도 ‘살을 빼기 위해’와 ‘치료를 위해’로 목적성이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거식증에 찬성하지 않는다. 식이장애는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고 느낀다. 죽을 수 있다는 것은 둘째치고(우울한 사람에게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아무런 타격이 없다) 거식증인 상태 자체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무척이나 불편하다는 게 중요하다. 강박 장애가 있는 사람이 강박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는 그 행동을 하면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우울하든 강박이든 식이장애든 우리는 마음이 ‘편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식이장애는 불편해도 너무 불편하다. 매 순간, 매 끼니가 불편하다. 최소한 그건, 내가 원하는 삶은 아니다.


 프로아나는 10대에서 20대 초반 여성들이 많다고 한다. SNS에서 프로아나를 드러내는 것은 그렇다 해도 ‘먹토 하는 법’을 공유하거나 ‘자극 사진’이라며 심각하게 마른 사진을 공유하는 것이 안타깝다. 그들은 이 ‘불편한 삶’ 속에 들어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그렇기에 나는 말한다. No, 프로아나.





이 매거진은 주 2~3회 연재 이후 브런치북으로 전환됩니다.

식이장애 이야기 이후 소식에 관련된 이야기 / 소식좌 사회생활 꿀팁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작가소개 : 이수연

남들보다 '덜' 먹는 사람.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더 먹어"였다. 성인이 되어 우울증과 함께 공황장애, 식이장애를 앓았으며 정신병원에 입원해서도 "더 드세요"를 가장 많이 들었다. 지금은 식이장애를 극복하고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소식좌로 살아가고 있다.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등을 썼다.


Insta @suyeon_lee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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