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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연 Sep 10. 2023

거식증이 나라고?

소식좌 사회생활백서

 처음 정신과를 찾은 것은 단순히(?) 일상생활에 문제가 있어서였다. 공황장애로 비행기에서 실신하고 손목 물리치료를 받다가 실신하고 영어 시험 본 뒤 실신하고 얼굴이 찢어지고 나서야 치료를 받아야겠다며 정신과를 찾았다. 정신과를 찾기 전엔 신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건강검진도 받았다. 하지만 정상, 정상, 정상. 내가 아픈 거에 비하면 건강검진 결과는 정상이 아니었다.

 비로소 찾게 된 정신과는 다행히 번지수가 맞았다. 나는 초진에 우울증과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정신과 상담과 약물 치료를 병행했다. 하지만 파워풀한 정신질환은 불씨가 꺼지지 않았고 초진 석 달 만에 나를 폐쇄병동에 입원시켰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심리검사를 받았다. 무려 일주일간 진행된 검사였다. 결과는 이랬다.



-만성 우울증
-공황장애
-식이장애
-알코올 의존 장애(과거병력)
-경계선 인격 성향



 솔직히 우울증은 우울하니 와닿고 공황장애는 실신하니 와닿고 경계선은 뭔진 모르겠지만 듣고 보니 그런 거 같고(정신증과 신경증의 경계선에 있다는 의미로) 술에 의지해 온 것도 맞긴 한데 식이장애에선 ‘응?’이란 생각이 들었다. 거식증이 나온 것이다. 거식증이면 진짜 비쩍 말라서 뼈밖에 없는 거 아닌가. 그런 거 치고 나는 제법 살이 있지 않나. 비록 굶어서 몸무게의 20%가 빠진 것은 사실이나 내가 그렇게나 체형에 집착하는 걸까. 그때 의사가 말했다.


“쉽게 거식증이라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것도
식이장애의 특징이죠.”



 이렇게까지 대놓고 뼈를 때릴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나는 끝끝내 부정하고 싶었다. 마르고 싶다는 마음은 당연한 게 아닌가. 먹으면 살이 찔까 생각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입맛이 없는 것도 우울하면 당연한 게 아닌가. 식이장애라고까지 해야 하는 걸까. 그 정도로 마르지도 않은 거 같은데.



아 저 거식증 아니라고요


 하지만, 나는 정신병원 요주의 인물이었다. 식사시간에 식사를 하러 나오지 않기 일쑤였고, 매 식사시간마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분들이 번갈아가며 날 설득시켰다.


"딱 한 숟가락만이라도 먹읍시다!"


 

 어쩔 수 없는 설득(그분들의 일이니)에 어쩔 수 없이 식판 앞에 앉았다. 난 약속대로(?) 딱 한 숟가락을 먹고 식판을 반납했다. 처음에는 한 숟가락만 먹어도 된다고 설득했던 의료진들은 진짜 딱 한 숟가락만 먹으니 날 막아섰다. 다시 식판을 앞에 가져다 두고 말했다.


“조금 더 드세요. 반납 안 돼요.”



 한 숟가락만 먹어도 된다면서...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자리에 앉았다. 화내고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정신과 병동에서 난리를 치면 안정제를 맞거나 안정실에 격리된다는 걸 다른 환자들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안정제는 일명 ‘코끼리 주사’라고 불렸는데 코끼리도 잠재운다는 의미로 붙은 별명이었다. 코끼리 주사를 맞고 안정실에 격리된 환자분이 깨어나 나온 모습은 굉장히 초췌했기에 품위를 지키고 싶은 나는 억지로 식사를 했다. 물론 여기서도 꼼수가 있었다. 반찬을 다른 환자에게 주거나 국에 밥을 넣어서 밥을 더 먹은 것처럼 속였다.


 식이장애로 판명난 나에게 취해진 조치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입원 당시 복용하던 정신과 약은 약 열 알이었는데 그중 입에 녹여 먹는 약이 있었다. 다른 병동과 달리 정신과 병동은 약을 삼키지 않고 모은 뒤 극단적인 시도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약을 먹은 뒤엔 ‘아’하고 입 안을 확인했다. 나는 품위 있는 환자라 꼬박꼬박 약을 먹었다. 하지만 녹여먹는 약의 정체를 알게 된 뒤 나는 의사에게 항의했다. 바로 식욕을 올려주는 약이었다. 원래 조현병 치료제이나 식욕을 올리는 용도로 사용된다는 걸 다른 환자가 내게 이른 것이다.


 “그 약 빼주세요.”

 “안 돼요.”

 “왜요?”

 “식사 안 하시잖아요. 의료진 분들이 얼마나 걱정하는지 아세요? 이수연 씨 몸무게 재는 날마다 간호사 분들이 저한테 이수연 씨 얘기만 해요. 살 빠졌다고요.”

 “....”

 “그러니까 드세요. 잘 드시면 약 빼드릴게요.”


 항의는 큰 효과가 없었다. 단호한 의사의 판단에 나는 약을 먹었고 식사를 해야 했다. 홀에 나와 체중계 앞에 서면 간호조무사 분들이 제지하기도 했다. 정해진 날에만 체중을 잴 수 있다고. 나는 도저히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죽을 정도로 마르지도 않았는데 왜 내가 거식증이고 왜 내가 식이장애인지.



맞습니다, 식이장애


 하지만 6개월의 입원 기간은 나의 생각을 바꿨다. 나는 식이장애라고. 정상적이지 않은 강박이 있다고. 의료진의 엄청난 노력도 있었지만, 솔직히 내가 인정하게 된 것은 식이장애 환자와 같은 병실을 쓰면서였다.


 내가 장기 입원자로 자리 잡아갈 때 그 친구가 입원했다. 거식증과 폭식증을 오가며 식이장애로 입원한 여동생은 성격도 싹싹하고 말하는 걸 좋아했다. 나이도 비슷해 자연스럽게 친해졌는데 처음에는 그 동생이 왜 식이장애일까 싶었다. 눈에 띄게 마른 것도 아니고 밥도 잘 먹었으니까. 

 그런 그 동생은 병동에서 사사로운 언쟁에 휘말렸다. 간식 때문이었다. 식욕 조절이 어려워 식사량과 간식에 제한이 있었는데, 그걸 안타깝게 생각한 다른 환자분이 간식을 나눠준 것이다. 사실 인간적인 모습이지만, 의료진은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같은 병동의 환자분께 누누이 일렀다. 간식을 나눠먹지 말아라. 어떻게 혼자먹냐. 난감한 상황. 나 역시 그 요청을 피할 수 없었다.


 나는 괜스레 동생 몰래 간식을 먹는 것이 미안해 아예 간식을 다른 사람에게 줘 버리기도 했다. 그냥 나도 먹지 않겠다면서. 그런 내게 동생은 이런 얘길 해 주었다.


 “언니, 저 폭식증 오기 전엔 마른 게 최고라고 생각했어요. 진짜 안 먹어서 비쩍 말랐는데 그게 좋은 거예요. 그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어느 날 가족이 저보고 징그럽다고 한 거예요. 너무 말라서 징그럽다고. 그때 충격받아서 먹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폭식증이 오더라고요. 저도 잘못된 거 알면서 조절이 안 돼요. 그래서 입원한 거예요.”


 그 동생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식욕 조절이 어렵지만, 자신의 체중관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비쩍 마른 모습이 보기 좋은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치료라는 것을. “그러니까 언니도 좀 더 먹어요. 언니 말랐어요.”라고 말할 정도였던 나의 심각성을. 자신도 나와 같았다는 것을.


 그 뒤 동생은 나보다 먼저 퇴원하며 말했다.



“언니, 건강해져요.”
“우리 다시 여기 들어오지 마요.”




 병원 특유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병실에 혼자 남겨졌을 때, 나는 그 동생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체중에 관해 얘기하던 모습. 음식을 먹을 때의 죄책감. 서로가 서로를 걱정했던 마음. 우리는 다르지 않았다. 서로를 이해했다. 그러니까, 나 역시 식이장애였다.


 첫 입원은 ‘아는 것’으로 끝났다. 나를 ‘아는 것’. 식이장애라는 걸 인정하는 것. 그 이후 나는 꼬박꼬박 식사시간에 나갔다. 비록 여전히 국에 밥을 말아 더 먹은 척을 하고, 다른 환자분들께 반찬 나눔을 했지만, 식사자리에 앉는 것만은 피하지 않았다. 그것이 당시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노력이었다. 몇 번의 입원이 더 반복되었음에도. 






이 매거진은 주 2~3회 연재 이후 브런치북으로 전환됩니다.

식이장애 이야기 이후 소식에 관련된 이야기 / 소식좌 사회생활 꿀팁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작가소개 : 이수연

남들보다 '덜' 먹는 사람.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더 먹어"였다. 성인이 되어 우울증과 함께 공황장애, 식이장애를 앓았으며 정신병원에 입원해서도 "더 드세요"를 가장 많이 들었다. 지금은 식이장애를 극복하고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소식좌로 살아가고 있다.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등을 썼다.


Insta @suyeon_lee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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