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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연 Mar 19. 2019

-일 만큼 성공하셨습니다

썸 바디 헬프 미

 입원이 길어지면서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이 대부분 퇴원을 했다. 가까운 사람들이 퇴원하고 다시 일인실로 배정을 받자 나는 밖에 나가는 일이 확연히 줄었다. 중독 병동에 덩그러니 남겨진 우울증인 나는 언제나 궁금함의 대상이었다. 


 "왜 우울증이 이 병동에 왔대?"

 "왜 퇴원을 못 한대?"

 "나이는 몇 살 이래?"


 젊은 여자애에 입원 기간도 길었고 병실 밖에 나와서 함께 대화하는 일도 많지 않았다. 게다가 일인실을 쓰고 있었다. 내가 대화하는 사람은 주치의 선생님밖에 없었다. 간호사님과도 많은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한번 홀에 나가자 도박중독 오빠가 내게 말했다.


 “나는 만날 네가 벽보고 있는 줄 알았어. 인제 보니 멀쩡히 말할 줄 아네.”


 내가 워낙 말도 없이 은둔생활을 하다 보니 그런 오해도 많이 받았다. 방에서 나오지 않는 이유는 단순했다.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책을 읽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너무 은둔생활을 하는 내게 병동 사람들이 제안했다. 저녁을 먹고 하루에 한 시간씩 병동을 걷자는 얘기였다. 나는 처음에는 거절하다가 나중에는 같이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십 분, 다음에는 삼십 분. 천천히 늘려가면서 나중에는 한 시간을 채웠다. 밖에는 나가지 못하니 병동을 동그랗게 돌며 걷는다. 걸으면서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했다. 술을 먹고 싸웠던 일, 도박해서 돈을 잃고 딴 일, 마약을 처음 접했던 일 등 각자의 얘기가 가득했다. 그중에 내 얘기는 참, 할 게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게 내 병이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듣는 쪽'이었다. 그래도 이제는 병실을 나와 조금 걷는 나를 사람들은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마치 ‘내가 키웠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여기 중독이란 중독은 다 있네. 도박, 마약, 게임, 술, 수면제, 자살.”

 “자살 중독도 있어요?”


 알코올 중독으로 들어온 아저씨가 말했다. 나는 처음 들어보는 ‘자살 중독'이라는 말에 아저씨에게 되물었다. 아저씨는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잖아, 너. 자살 중독.”


 사람들이 웃었다. 자살 중독이라니. 나도 중독 병동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던 걸까. 내가 아무리 숨기려 해도 소문은 빠르게 돌았다. 뭐로 들어왔단다, 무슨 사고를 쳤단다. 모두가 이미 알고 있었다. 누구를 통해 알게 되었는지도 모르게.


 “중독 치료를 할 때 ‘-일 만큼 성공하셨습니다’라고 하면서 중독을 이겨낸 시간을 세곤 해요. 그런데 수연 씨는 그게 ‘자살'인 것 같네요. -일 만큼 자살을 하지 않은 것에 성공했다고요.”


 나를 지켜보던 주치의 선생님께서 말했다. 주치의 선생님도 나를 ‘자살' 중독으로 보고 있었다.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과 내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얘기하셨다.


 중독이 ‘의존’을 의미라는 거라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나는 죽음에 의지하고 기대하고 있기에. 이 힘든 마음을 끝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바라보았기에. 지금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새롭게 나를 표현하는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아픔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냈다. 중독이 평생을 함께 이겨내는 일이라고 본다면 나 역시 평생을 함께 이겨내야 하는 것과 함께하고 있다. 이왕이면 우울 중독이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 이수연

*우울한 당신에게 위로와 공감이 될 글을 씁니다.*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작가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20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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