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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연 Mar 12. 2019

자해는 왜 하는 건가요?

썸 바디 헬프 미_정신병동 일기

 많은 사람이 낯설어할 단어. ‘자해’. 나는 자해를 했다. 나를 더 엉망으로 만들고 싶었고 망가트리고 싶어 자해했다. 죽을 수 없는 마음이 다르게 표현되었을 수도 있다. 내게 자해라는 것은 나를 향한 분노의 결과였다.


 심리검사에서 경계성 인격 특성이 나왔다. 경계성 인격 특징은 안정적인 관계 유지를 하지 못하거나 지속해서 자해, 자살시도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결과를 믿지 않았다. 그전까지 나는 칼로 나를 긋는 종류의 자해는 하지 않았다. 내게 자해라 하면 그저 작은 상처를 남기는 일 정도였다.


 처음 자해를 한 것은 병원에 입원하기 한 달 전 정도. 손톱으로 피부를 미친 듯이 긁었다. 간지러웠던 것도 아니고 뭐가 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답답한 마음에 피가 날 때까지 나를 긁었다. 볼펜으로 손등을 찍었다. 내게 자해란 것은 그 정도의 행동이었다.


 병원에서 외박을 받아 첫 외출을 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손목을 그었다. 죽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깊은 상처를 내지 못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만 아파야 했다. 내 마음처럼 아파야 했다. 자살시도보다 자해가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자해를 했고 그렇게 병원에 복귀한 이후로 나는 짧은 외박조차 받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 이유는 당연히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손목을 그은 뒤부터 나는 잦은 자해 충동을 느꼈다. 무언가가 맘에 들지 않으면, 답답하면 자해를 하고 싶었고 피가 나므로 해결이 되는 것을 느꼈다. ‘리스트 컷 증후군'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나의 자해는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병원에는 칼이나 날카로운 물건이 없다. 그렇기에 자해를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손등을 긁는 일이었다. 피가 날 때까지 손등을 긁었다. 피가 나는 것을 보고서야 행동을 멈추곤 했다.


 리스트 컷 증후군을 겪고 있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입원한 여성분들 중 반 이상은 자해를 해본 경험이 있었다. 칼로 손목을 긋거나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손톱깎이로 살점을 잘라내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웃으면서 나누곤 했다.


 자해는 왜 하는 건가요?


 책을 읽다가 자해에 대한 글을 보았다. 책에서 자해는 관심을 받기 위한 행동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관심을 받기 위해. 나도 그랬던 걸까. 관심이 필요해서 한 일이었을까.


 “저는 관심을 받기 위해 자해를 한 걸까요?”


 내가 주치의 선생님께 물었다. 보통 ‘관심받기 위해' 자해를 한다고 하면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보여주기 위해 자해를 했다. ‘내가 이렇게 아프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아프면 안심이 되었다. 그 순간은 아파해도 될 것 같아서. 아프다고 말할 수 있어서.


 병원에 있을 때, 같은 병동에 입원한 동생이 자해했다. 그 동생은 숨기고 숨기다가 내게만 살며시 얘기했다. 그 모습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이 자해하던 그 아이. 나는 그 애를 보면서 자해하는 일이 줄었다.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아픈 일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손목에는 얕게 자국이 나 있다. 그 자국을 볼 때마다 나는 나보다 타인을 떠올린다. 자해 자국을 지우기 위해 문신을 했다. 하지만 문신 사이로 흉터가 비쳐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 마음을 들킨 것 같다. 숨기고 싶은 마음을.


 자해한다는 것은 ‘자해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마음에서이다. 나는 그것 또한 살기 위한 노력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자해는 하지만 최소한 나는 살아있으니까. 가끔은 나도 자해를 한다. 견딜 수 없어서. 도망치고 싶어서. 그리고 모두 그렇듯 흉터를 숨긴다. 자해했다는 것을 알면 내가 그렇듯 모두가 마음 아파할 테니까.


 이제는 상처를 드러내고 싶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상처 주지 않고 보이고 싶다. 그런 식으로 아픔을 증명하고 싶지 않다. 자해는 나에게만 상처 주는 일이 아닌 타인에게도 상처 주는 일이란 것을 알았기에. 우리는 사람과 사람으로서 서로를 바라보고 마음을 배워 나갔다. 정신병원에서 나는 처음 타인의 아픔을 배웠다.



작가 이수연

*우울한 당신에게 위로와 공감이 될 글을 씁니다.*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작가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20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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