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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연 Mar 26. 2019

언니밖에 없어요

썸 바디 헬프 미

 병실에서 잘 나오지 않았지만 그런 내게도 찾아오는 손님은 있었다. 다른 병실의 폭식증 동생과 약물 중독 동생이었다. 높은 나이 때 중에 유일하게 비슷한 또래가 나였기에 그랬던 것 같다. 항상 내 방에 와선 비밀들을 살며시 털어놓곤 했다.


"저 이번에 대학교 지원해보려고요. 앞으로 미용 쪽 일도 하고 싶어요. 언니는 벌써 직업도 있고, 좋겠다. 근데 언니도 학교 갈 때 많이 힘들었어요?"

"사실 저번에 약을 한 번에 먹어서 위세척까지 했어요. 위세척 진짜 힘들어요. 언니는 그러면 안돼요. 제가 해봤잖아요."

"나가면 이제 심하게 다이어트 안 할 거예요. 제가 생각해도 그때는 너무 심했던 것 같아요. 언니도 더 많이 먹어야 해요. 그래야 안 아파요."


 아직 어린 그 동생들은 내게 진로 문제를 상담하기도 하고 자해에 관한 얘기도 털어놓곤 했다. 나는 어떤 말을 들어도 간호사실에 얘기하지 않았다. 모르길 바라면서, 알아주길 바라는 그 마음을 알기에 나는 그들과의 비밀을 몰래 지키곤 했다. 


 한 번은 폭식증으로 들어온 동생이 내게 간식이 정말 먹고 싶다고 말했다. 폭식증이기에 정해진 식사만이 가능했고 간식도 제한이 있었다. 먹는 것을 조절하는 것이 그 동생에겐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다른 사람의 간식을 훔쳐 먹거나 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그 동생을 위해 나는 간식을 나눠줘야 하는 건가, 아니면 치료를 생각해서 모른 체해야 하는 걸까. 무엇이 더 이 동생을 위한 일인 걸까. 너무 어려운 선택이었지만, 그 동생은 계속해서 내게 부탁을 했다.


 결국, 몇 번을 몰래 간식을 건넸다. 내가 받은 간식을 나눠주고 내 병실에서 먹을 수 있게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간식을 훔쳐서라도 먹었을 것이다. 나는 폭식이 아닌 거식 증세가 있었다. 나와 아주 다른 증상을 가진 그 동생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조절하지 못할 정도로 먹고 몰래 토를 하고. 정말 그 동생을 위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부탁을 거절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약물 중독으로 들어온 동생은 자해했다. 손목에는 흉터가 가득했다. 병원에서 어떻게든 자해를 한 것이다. 그 사실을 숨기고 숨기다가 내게 살며시 말했다. 나는 그 흉터를 보자마자 속상함이 가득했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도 이렇게 나를 걱정하는 걸까. 나는 말없이 몰래 연고와 밴드를 챙겨줬다. 덧나지 말라고, 이제 아프지 말라고. 


 다행인지, 아닌지. 그 동생들은 모두 나보다 먼저 퇴원했다. 나는 병원에 남아 퇴원 축하한다고 말을 꺼냈다. 나는 병원에 남았지만 나아져서 퇴원하는 모습을 보는 게 기뻤다. 폭식증 동생은 음식을 적당히 조절하는 법을 배웠고 약물 중독 동생은 환청이나 환각이 나아졌다. 나중에 내게 건넨 한마디가 그 말이었다.


 “언니밖에 없었어요.”


 우리는 서로 같은 환자였지만 서로의 치료자이기도 했다. 의사에게 하지 못하는 말을 서로 나누고 비밀을 나눴다.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웃기도 했다. 비록 병원을 나가면 만날 수 없는 사이지만 그렇기에 서로 비밀을 더 털어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 동생들을 보며 아픈 사람을 바라보는 것도 아픈 일이란 것을 알았다. 우리는 나이를 떠나 서로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작가 이수연


*우울한 당신에게 위로와 공감이 될 글을 씁니다.*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작가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20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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