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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연 Apr 02. 2019

주치의 선생님의 "걸으실래요?"

썸 바디 헬프 미

 비가 왔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세상을 어둡게 만들었다. 나는 비 오는 날 나가는 것은 싫어한다. 그래도 비 냄새는 좋아한다. 하지만 이곳은 병원이었고 어차피 나는 이 밖으로 한 걸음조차 나갈 수 없었다.


 나가지 못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비 냄새를 맡고 싶었다. 손바닥만큼도 열리지 않는 창문의 문을 열고 숨을 들이마셨다. 축축한 내음이 방안에 퍼졌다. 바람이 세게 불어 날카로운 바람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의 비 오는 날이었다.


 평소와 같은 시간에 평소와 같이 주치의 선생님께서 오셨다. 그리고 창문을 열고 있는 내 모습에 물으셨다.


"창문을 열어놓으셨네요?"
 "비가 와서요."


 주치의 선생님도 시선을 창가로 옮겨 함께 비가 오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나에게 다시 물음을 던지셨다.


 "비 오는 날 좋아하세요?"
" 비 냄새는 좋아해요."
 "그럼, 오늘 옥상 보여 드릴까요?"


 지난날, 항상 창밖만 바라보는 나에게 했던 작은 약속이었다. 언젠가 옥상을 한번 보여주겠다는. 나는 그 약속을 잊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주치의 선생님은 나와의 약속을 기억하고 내게 말했다.


 “저랑 동반하시면 건물 옥상에 가보실 수 있어요.
가끔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 기분 전환으로 모시곤 하는데
수연씨도 조금은 걸을 필요가 있어 보이네요.
워낙 나가지 않으시니까요.”


 나는 말 없이 주치의 선생님 뒤를 따랐다. 문이 열렸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주치의 선생님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탄 것도 처음이었다. 함께 병동 밖을 걸은 것도.


 옥상 전망대에 도착하자 주변이 멀리까지 보였다. 병동에서 바라보는 주변 환경과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커다란 유리창에는 빗방울이 방울져 있었다. 나는 창문을 밀었다. 역시나 한 뼘도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이로 빗소리와 내음이 흘러나왔다. 주치의 선생님께선 주변의 건물들을 가리키며 알려주셨다.


 “저기는 학교로 여기는 공사 중인 건물이에요. 수연씨, 완공까지 보셔야죠.”


 그때까지 살아있으라는 주치의 선생님의 마음이었다. 나는 그 마음을 알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비가 오던 날, 나를 생각해 주신 주치의 선생님의 마음을 깊이 새겼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병실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주치의 선생님께 말했다. 어렵게 꺼낸 나의 진심이기도 했다.


 “일단 살아만 있으세요. 너무 멀리 보지 말고 당장 한걸음 앞만 바라봐요.”


 내 말에 대한 주치의 선생님의 답이었다.


 모두에게 마음을 닫은 내가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도 그때 즈음이었다. 나를 위해 노력하고 얘기를 들어주는 주치의 선생님에 대해 다른 시선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 치료 관계도 하나의 소중한 ‘관계'란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때부터 나는 내 이야기를 조금 더 꺼내기 시작했다.


 주치의 선생님은 지금도 내게 옥상을 보여주겠다는 약속을 기억하고 계신다고 했다. 나 역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약속하고 싶진 않다. 지키지 못한 약속은 죄책감이 될 수 있으니까. 누구도 나 때문에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나는 그 약속을 잊을 것이다. 나는 잊은 약속이니 지키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면서.


 그런데도 주치의 선생님은 기억하실 것이다. 나를, 그 약속을. 그 약속을 지킴과 함께 나도 주치의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말해달라는 약속을.



작가 이수연


*우울한 당신에게 위로와 공감이 될 글을 씁니다.*

https://youtu.be/i639pT3EqYc

열정에 기름붓기 스피치_작가 이수연


*스피치, 북토크 인터뷰 등의 문의는 제안하기로 남겨주세요:)

*여러분 이야기에 함께하겠습니다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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