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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연 Apr 09. 2019

정신병동에서 메리 크리스마스

썸 바디 헬프 미

 크리스마스까지 병원에서 보내게 될 줄은 몰랐다. 당연히 그전에 퇴원할 거로 생각했지만 나는 어느새 병원의 최고 장기 입원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의 입원 기간은 삼 개월 정도. 나는 팔 월에 입원을 했으니, 벌써 넉 달이 넘은 상황이었다. 크리스마스 전 주치의 선생님과 면담에서는 외박을 얘기했다.


 “크리스마스에 외박 보내주세요.”
 “안돼요.”



 주치의 선생님은 단호하게 말하셨다. 크리스마스나 추석, 설에는 대부분의 환자분들은 외박을 나갔다. 나도 당연히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주치의 선생님의 답은 즉각적이었다.


“왜요? 충동적이니까요?”
 “외박을 무사히 다녀오신 적이 없잖아요.”



 주치의 선생님 말씀에 반박할 수 없었다. 지난 외박만 해도 사고를 치고 병원에 일찍 들어왔다. 술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마시고 자해를 했다. 그런 나를, 밖에 보내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계셨다.


 “수연 씨를 보다 보면,
제가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할지, 조금 물러나야 할지,
좋은 의사인지 고민하게 돼요.
혹시 저 때문에 더 나빠지진 않을까 걱정도 되고요. 이번엔 외출만 다녀오세요.”



 결국, 주치의 선생님의 진심 어린 걱정에 나는 병원에 남기로 했다. 


 병원의 크리스마스는 조용했다. 대부분 환자가 외박을 나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병원에 남아있는 사람은 '나갈 수 없'거나' 갈 곳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중 '나갈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나마 어렵게 동반 외출을 받았다. 혼자 외출하는 것이 아닌 보호자의 동반 하에 외출하는 것이다. 외출 시간에 맞춰 남편이 데리러 왔다. 크리스마스라며 꽃 한 송이를 내게 건넸다. 특별한 날마다 선물하는 꽃 한 송이가 우리의 소리 없는 약속이었다. 정신병동에 어울리지 않는 장미 꽃 한 송이가 병실에 놓아졌다.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



 남편이 내게 말했다. 나는 내 마음을 얘기한 적이 없는데 남편은 계속해서 살아있음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빨리 병원으로 복귀했다. 병실에 다시 혼자 남겨져 있다 보니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가 떠올랐다. 그때는 혼자가 싫었는데, 지금은 혼자가 좋았다. 외로워도 괜찮으니까. 사람 속에서 외로울때면 더 마음이 아팠으니까.


 나는 외출 동안 빌려 온 책을 쌓아놓고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창밖을 보았다. 두꺼운 유리창 너머로 불빛들이 반짝였다. 나도 그 불빛 중 하나일까. 사람들도 창문으로 나의 불빛을 바라보고 있을까. 아니면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하고 있을까.


 여기서는 죽을 수 없다. 이곳을 벗어나 저 밖의 불빛이었다면 나는 죽었을까. 모두를 뒤로했을까. 그런 생각이 드니 지금 이곳이 삶과 죽음의 경계같이 느껴졌다. 나는 지금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책을 읽는 것이다. 크리스마스까지 혼자 책을 읽으며 죽음을 생각하는 내게 조금 웃음이 나기도 했다.


 병실 문 밖에선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졌다. 자원봉사자분들이 와서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나는 여전히 병실 안에 있었다.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내게 말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작가 이수연


스피치, 인터뷰, 북 토크 등 문의와 제안은 tnrud572@naver.com 혹은 제안하기로 받고 있습니다.


*우울한 당신에게 위로와 공감이 될 글을 씁니다.*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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