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연 Apr 23. 2019

이 아픔이 나아질 수 있다면

썸 바디 헬프 미

 많은 사람이 병원에서 나아지길 기대했다. 일상생활을 찾아갈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병원 치료를 받았다. 주치의 선생님은 이 병원이 외과 병동이었다면 모두 눈에 보이는 부분이 아팠을 거라 하셨다. 그리고 나도. 하지만 나는 어느 곳도 아파 보이지 않았다. 한없이 정상에 가까운 비정상이었다.


 나아진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 고민한 적 있다. 나는 일상생활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게 그런 시간은 오지 않았다. 내겐 너무나 욕심 같은 일이었다. 한 걸음만 나아가도 나아진 것인데 나는 그 이상을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주치의 선생님은 항상 말했다.


 “나아질 수 있어요. 다시 살아갈 수 있어요.”



 그 말을 믿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믿지 않던 말도 그 말이었다. 나아질 것이라는 말.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


 만약 신이 내 소원을 하나만 들어준다면 나는 어떤 소원을 빌까. 나아지게 해 주세요? 행복하게 해 주세요? 나는 여러 가지를 떠올리다 하나를 정했다. 모두가 나를 먼저 떠나지 않게 해 주세요. 내 선택은 그것이었다.


 주치의 선생님께서 출장을 가신 날, 간호사님이 내 병실로 오셨다. 그리고 내 손을 잡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제 수연 님, 입원할 수 있는 날도 많이 남지 않았는데 힘내야죠.
남편을 생각해서라도 힘내요.
스스로 이겨내야 해요.”



 대부분의 정신병원 입원은 육 개월을 넘기지 않는다는 말을 다른 사람에게 들었다. 나는 이제 막 다섯 달이 넘어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내게 남은 시간은 한 달도 남지 않은 것이다. 나아져야 하는데, 이젠 정말 이곳을 나서야 하는데 어느 것 하나 자신 없었다. 그 사실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었다. 변화에 대한 믿음. 주치의 선생님은 퇴원을 고려하는 세 가지를 말해 주셨다. 사랑을 하는지, 감사하는지, 변화에 관한 믿음이 있는지. 나는 그 믿음이 없었기에 퇴원이 미뤄지고 미뤄졌다. 결국은 장기 입원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이 두세 번을 입원하는 동안 계속 혼자 병원에 남아있었다.


 “나아진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내가 주치의 선생님께 물었다. 주치의 선생님은 내게 확신을 주고 싶어 하는 듯이 말했다.


 “이수연 씨는 그렇게 느끼고 있지 않지만 많은 것이 나아졌어요.
저는 그 모습을 봐 왔고요.
분명 앞으로도 많은 것이 나아질 거예요.”



 솔직한 마음으로 기대하지 않았다. 기대는 상처를 만드니까. 나는 혼자 기대하고 혼자 상처 받고 싶지 않았다. 우울 속에 있다는 것은 내가 상처 받지 않기 위한 하나의 방어기제였다.


 앞을 바라보면 내가 얼마나 나아갔는지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면 내가 얼마나 걸어왔는지 알 수 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은 뒤를 돌아보는 일. 그리고 스스로 잘 걸어왔다고 말하는 일이다. 앞을 보다 지치면 가끔은 뒤를 봤으면 좋겠다. 앞을 보았을 때 알 수 없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나는 퇴원을 앞둔 채 뒤를 돌아보았다. 많은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달라진 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다. 더 악화된 것도, 나아진 것도 있다. 하지만 아주 조금은,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지 않았을까. 나는 스스로 그렇게 위로를 하며 이제 이곳도 떠나야 함을 느꼈다. 비행 전 준비같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작가 이수연

북토크, 스피치 등 문의는 제안하기로 받고 있습니다.

*우울한 당신에게 위로와 공감이 될 글을 씁니다.*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작가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203948

Instagram @suyeon_lee0427

Facebook

https://m.facebook.com/leesuyeon0427


이전 13화 나갈 수 없지만, "노을이 이뻐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