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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연 Apr 16. 2019

나갈 수 없지만, "노을이 이뻐요"

썸 바디 헬프 미

 유난히 우울하고 답답한 날이 꼭 한 번씩 있다. 내가 입원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나갈 수 없음이, 혼자서 음악도 듣지 못한다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날. 그런 날이면 책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은 없었다. 마음 같아선 창문이라도 깨고 싶지만 깰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깰 수 있는 것이 있어도 깨지는 못했겠지만.


 주치의 선생님께서 면담을 요청했다. 출근해서 병원에 계신 날이면 빠짐없이 나를 면담했다. 주치의 선생님께서 물었다.


 “뭐하고 계셨나요?”
 “그냥 창밖을 보고 있었어요.”



 나는 지는 해를 바라보며 ‘또 하루를 보냈구나’ 하며 정리하고 있었다. 이 우울한 마음은 답답함일까. 그래서인지 창밖을 계속 바라보았다. 혼자서 길을 걷고 싶었다. 음악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이 병동 밖을 한 걸음도 혼자 나설 수 없었다. 바라보는 게 다였다.


 “수연 씨는 하늘을 좋아하나 봐요.”


 “언제 봐도 예쁘잖아요.”


 주치의 선생님은 나와 같은 곳에 시선을 두셨다. 건물 사이로 지는 해가 창에 반사되었다. 그나마 창이 커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라면 정말 버틸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오늘은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밖에 나가고 싶어요.”


 주치의 선생님은 밖에 나가고 싶다는 나의 말에 조금 놀라셨다. 내가 나가서 어떤 행동을 할 생각인지 캐묻듯이 물었다.


 “답답해서요. 그것뿐이에요.”


 내가 말했다. 나가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의 생각은 그것뿐이었다. 주치의 선생님께선 일단 내 마음을 알겠다고 말하며 면담을 마쳤다. 병실로 돌아온 나는 여전히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노크 소리가 들렸다.

 주치의 선생님이셨다. 방금 면담을 마쳤는데 다시 내게 오시며 말했다.


 “수연 씨, 지금 노을이 정말 예뻐요.”


 내가 있는 병실의 방향은 해가 지는 것이 보이지 않는 쪽이었다. 주치의 선생님은 다른 분들을 면담하기 위해 병동을 돌아다니다가 반대편에서 지는 해를 보고 내게 말을 해 준 것이다.


 나는 오랜만에 자리에서 일어나 주치의 선생님과 함께 프로그램 실로 향했다. 정말 붉고 동그란 해가 지고 있었다. 하늘은 파랗고 붉었다. 건물의 모난 지평선과 어우러져 아름답게 하루가 지고 있었다.


 “아까는 정말 예뻤는데, 지금은 좀 져버렸네요.”
 “지금도 예뻐요. 감사해요.”



 주치의 선생님은 창밖의 풍경을 보고 혼자서 하늘을 보고 있다던 나를 떠올리셨을 것이다. 그리고 굳이 내게 와서 그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 말해 주셨다. 그 마음이 감사했다. 나의 말 하나하나가 주치의 선생님의 마음에 담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와 주치의 선생님은 프로그램 실에 서서 노을을 짧게 바라보았다. 어쩌면 나를 조금이나마 걷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 마음에 답답함과 우울함이 덜어졌다. 주치의 선생님의 작은 한 마디에 나는 오늘을 무사히 살아갈 수 있었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을 선물 받을 수 있었다.


"수연 씨와 약속, 항상 기억하고 있어요."


 내가 주치의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킨 이유. 그건 서로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나는 많은 약속을 지키며 살아간다. 작게는 외래 진료에 맞춰 가는 것부터 마지막으로 얘기해달라는 약속 까지. 지금도 약속을 기억하실까. 아마 기억하고 있겠지. 그 믿음이 있기에 치료를 이어갈 수 있었다.





작가 이수연


북 토크, 인터뷰, 스피치 등 제안은 제안하기 혹은 tnrud572@naver.com으로 받고 있습니다.


*우울한 당신에게 위로와 공감이 될 글을 씁니다.*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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