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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연 Mar 05. 2019

엄마, 이제 엄마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아

썸 바디 헬프 미 _정신병동 일기

 나는 입원한 지 한 달이 넘어서야 가족에게 입원 사실을 알렸다. 부모님과의 사이가 좋은 편도 아니었다. 그런 갈등을 해결하자는 의미였을까. 주치의 선생님은 내게 말을 꺼냈다.


“어머니께 편지를 써보는 게 어떨까요?”

주치의 선생님은 나의 반응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말을 이어가셨다.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면 방어적인 태세를 보이기도 해요. 편지를 드리기 전에 제가 읽어보고 함께 어떻게 마음을 전달할지 얘기해봐요.”


 주치의 선생님은 나를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언젠가 한 번은 엄마에게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결혼까지 한 자식이 다 커서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나는 선생님의 권유대로 편지를 썼다. 남편에게 부탁해 작은 편지지 하나를 전달받았고 손으로 글을 채우기 시작했다. 무슨 단어들을 꺼냈을까. 그저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제 괜찮다고. 사랑한다고.


 편지는 두 장을 넘어갔다. 내가 그동안 느꼈던 마음과 앞으로 대해 얘기를 했다. 나는 엄마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천천히 내 마음을 꺼냈다. 그리고 엄마에게 편지를 드리기 전, 주치의 선생님께 먼저 그 편지를 건넸다.

 오전에 면담하고 편지를 받으신 주치의 선생님께서 내 편지를 읽고 다시 저녁에 오셨다. 주치의 선생님은 기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편지 너무 잘 썼어요. 감동했어요. 이 치료를 하길 잘한 것 같네요.”


 그리고 이내 걱정스럽게 내게 물음 하나를 던졌다.


 “근데 너무 이상적인 내용이라, 이게 진심일까 싶기도 했어요. 진심으로 쓴 편지인가요?”

 “진심이에요.”


 나는 진심이었다. 이제는 용서하고 싶다.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가고 싶다. 미워하고 원망한 시간이 너무 길었다. 지금 용서하지 않으면 내게 더는 용서할 시간이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세상의 끝에 선 것 같았으니까.


 엄마를 만난 건 그 주의 금요일이었다. 엄마에게 할 말이 있다고 미리 얘기하고 면회실에서 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간식을 사 오셨다. 나는 조심스럽게 내가 쓴 편지를 엄마에게 건넸다.

 나는 내가 쓴 글 하나하나를 읽기 시작했다. 한 줄 한 줄을 읽을 때마다 울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내 마음을 온전히 전하고 싶었다.


 ‘엄마! 엄마는 늘 내게 따듯하게 안아주는 딸이길 바랐다고 했지. 이제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이해는 하지만 용서는 못 한다던 내가 이해와 용서를 모두 할 수 있게 되었어. 그만큼 나도 자랐다는 의미겠지. 좋은 딸이 되지 못해서 미안해. 사랑해.’


 편지를 다 읽은 뒤에도 엄마는 한동안 말이 없으셨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미안했다고, 미안하다고 하셨다. 더는 내게 화가 아닌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는 엄마가 내 눈앞에 있었다. 많은 것이 변해감을 느꼈다. 엄마는 이제 내게 상처 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전에 수연이가 그런 말을 할 때면 나도 힘든데 왜 그러나, 싶었어. 근데 이제 엄마도 여유가 생겨서 돌아보니 모든 게 미안하더라. 곁에 있어 주지 못해서, 사랑한다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의 눈물에 내 마음이 흔들렸다. 엄마는 굳은 분이셨다. 마치 더럽혀진 과거를 씻어내듯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내 마음속의 응어리도 조금은 풀려가는 듯했다.

 이후에 엄마가 내게 답장을 줬다. 나를 사랑한다고, 앞으로 더 사랑하고 지내자고 내게 말했다. 나는 그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그 편지를 읽고도 눈물을 흘리지 않게 되자 나는 용서를 마쳤음을 알 수 있었다. 그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부모와의 상처는 모든 자녀가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늘 같은 부모님도 결국은 나와 같은 작은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데 얼마나 긴 시간이 걸렸는지. 조금 더 빨리 알았다면 나도 좋은 딸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약간의 후회가 남지만, 너무 늦지 않았음에 감사한다. 지금도 나는 엄마를 사랑한다.



작가 이수연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작가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20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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