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연 Feb 26. 2019

휴대전화가 없으면 이렇게 놀아요

썸 바디 헬프 미 _ 정신병동 일기

 병원의 아침은 이르다. 오전 6시에 기상하고 7시에 밥을 먹는다. 8시에는 모두 모여 아침 체조를 한다. 오전과 오후에는 일주일에 따라 프로그램이 짜여 있고 주치의나 담당의와의 상담도 있다. 문제는 저녁 시간이다. 아무 프로그램도 없고 외출도 불가능한 저녁 시간. 봉사자도, 의료진도 퇴근을 하는 시간. 우리는 그 시간에 모두 모인다.


 보통 병동은 연령대가 높다. 하지만 내가 입원한 지 두 달 즈음에는 어쩐지 조금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덕분에 병동 분위기는 시끌벅적했다. 홀에 모두 모여 얘기를 하고 간식을 나눠 먹었다. 서로 각자의 사연을 내려놓기도 하고 저녁 시간을 보내겠다는 일념으로 다 같이 드라마를 보기도 했다. 오늘은 무슨 드라마가 하는 날이라는 것을 하나씩 알아간 것도 그때였다.


 기억에 남는 것은 윷놀이이다. 연휴에도 안 할 법한 윷놀이를 병원에서 질리도록 했다. 나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하지만 그때만큼은 나도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게임은 한사코 안 하겠다고 하고 어느새 자리에 앉아있었다.


 윷놀이하기에 앞서 도박중독 오빠가 말했다.


 “우리 내기하자! 이기는 사람이 간식 사기!”

 “그니까 오빠가 병원에 아직 있는 거야.”


 알코올 중독 언니가 말했다. 그 말에 모두가 웃었다. 우리는 서로가 그런 말을 하는 사이였다.

 윷놀이는 순수하게 놀이 목적으로 이뤄졌다. 내기도 하지 않고 그냥 이기면 기분이 좋은 것 정도. 그래도 모두 모여 열정적으로 윷놀이를 했다. 저녁마다 정신 병동에선 큰 환호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병동에 들어와 장기와 바둑을 배우는 사람도 많았다. 어른들은 대부분 장기를 두셨다. 장기를 두시면 다른 어르신 분들이 옆에서 구경하며 훈수를 뒀다. 테이블 하나를 잡고 장기를 두시는 어르신의 모습은 사뭇 진지했다. 가끔은 나도 그 옆에 앉아 모르는 장기 말을 구경했다. 친절하게 장기를 가르쳐 주시던 어르신도 계셨다.


 한 번은 외박을 다녀온 게임중독 오빠가 블루마블을 가지고 들어왔다. 새로운 게임을 해보자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내 압수당했다. 돈처럼 걸어 도박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다시 한번 이곳이 정신 병동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내기도 안 된다. 게임도 안된다. 커피도, 담배도, 술도. 그야말로 안 되는 것 투성이었다.


 그밖에도 날 지난 신문을 접어 딱지를 만들기도 하고 제기차기, 탁구, 퍼즐 맞추기 등 병동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찾아냈다. 외출을 다녀온 다른 분이 만화책을 빌려와 모두가 홀에 모여 만화책을 돌려가며 읽기도 했다. 그때만큼은 정신 병동도 만화방 같은 느낌이 났다. 어른부터 학생까지 모여 만화책을 집중하며 읽는 모습이 유쾌하기도 했다.


 휴대전화도, 컴퓨터도 없기에 유일하게 바깥세상을 알 수 있는 것은 뉴스뿐이었다. 아홉 시 뉴스 시간에는 이십 대부터 육십 대까지 모두가 모여 뉴스를 봤다. 당시에는 정치적으로 굉장히 시끌벅적할 때였다. 하나의 의식처럼 모두가 아홉 시 뉴스를 보고 끝남과 동시에 잠이 들었다.


 낯을 가리던 나도 점점 ‘가족 같음'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씩 말이 늘고 밖에 나와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모두 변하는 나를 보면서 괜스레 뿌듯함을 느끼곤 했다. 많이 좋아졌다고, 이제 퇴원해도 될 것 같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조금 더 적응할 때 즈음 퇴원을 하지 않을까. 조금이나마 기대했다. 나는 정신병동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작가 이수연

*우울한 당신에게 위로와 공감이 될 글을 씁니다.*

'조금 우울하지만 보통 사람입니다' 작가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203948

Facebook

https://m.facebook.com/leesuyeon0427/

Instagram @suyeon_lee0427

이전 05화 알코올 중독 언니의 위로 "조금은 울어도 괜찮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