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그 시절, 나에게 묻는다.

- 기억하기엔 아프고, 잊기엔 너무 선명한 시간

by 사랑스러운 민정

누군가에게는 그저 평범했던 하루가

내겐 도무지 살아내기 버거운 날들이었다.
햇살조차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던 그 시절.
숨을 쉬어도, 살아있다는 감각이 들지 않았다.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저려온다.
기억 속에서 다시금 꺼내보면
그 작은 조각들조차 선명해서,
아직도 눈물이 난다.


나는 매일같이 내 안에서 무너졌고,
그 무너짐을 아무도 몰랐다.
괜찮다고 말하는 게 버릇처럼 익숙해졌고,
사실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그때 나는 하루하루를 이렇게 달랬다.
"이 순간조차 다 지나갈 거야, 조금만 더 참자."
그 말 하나 붙들고,
벼랑 끝처럼 느껴지는 하루를 기적처럼 버텨냈다.


아버지는 소아마비로 두 다리를 쓰지 못하셨다.
목발 없이는 한 발도 내딛기 어려우셨고,
휠체어 없이는 방 안을 가로지르기도 힘드셨다.

어릴 땐 그 모습이 어쩐지 부끄러웠고,
좀 더 자라서는 아프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아버지의 고통을 너무 늦게야 이해했다.

그분은 고요하게 무너져갔고,
그 속에서 나는 조용히 무뎌져갔다.


어머니가 집을 나간 뒤,
아버지는 술과 담배로 시간을 태우셨고
폐암으로 겨우 마흔한 살의 생을 마감하셨다.
그 장례식장에도, 어머니는 오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을까.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다.

기억 속 어머니는 늘 어디론가 떠나 있었고
늘 ‘자기 삶’이 먼저였던 사람.

1년에 한두 번,
그것도 마치 지나가던 바람처럼 스쳐가곤 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음식’을 기억하지 못한다.
가족이 둘러앉은 저녁 밥상은,
내겐 동화 속 장면처럼 낯설다.

집에 오실 때마다 어머니는
다리를 쓰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돈을 달라고 요구하셨다.

아버지는 국가에서 받는 소액의 지원금이 전부였고,
어머니는 그마저도 빼앗아갔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그건 너무 잔인한 풍경이었다.


그 시절,
나는 대체 무엇을 보고 자라온 걸까.
어린 날의 나에게 묻고 싶다.

사랑은 어떤 모양이었니.
믿음은 어떤 색깔이었니.
안전함이라는 단어는, 너의 마음 어디쯤 있었니.


내게 ‘엄마 같은 언니’가 있었다.
첫째 언니.

어린 두 동생을 챙기느라
자신은 돌보지 못한 사람.
늘 우리를 위해 한 걸음 늦추던 사람.

그 언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어른이 되어서야
자신의 삶을 찾으려 했던 언니.

언니야, 이제 말할게.
언니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걸 누릴 수 있었던 사람이야.
언니는 날개를 달 수 있었던 사람이야.
그런데 두 동생의 무게를 등에 짊어진 채
그 날개가 꺾여버렸지.

나는 이제서야 언니의 억울함과
말하지 못한 아픔을 헤아리게 되었어.
그래서 미안해.

그리고 진심으로,
지금은 언니가 나보다 더 행복하길 바란다.
언니가 나를 원망했을지라도
나는 언니를 미워한 적 없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둘째 언니.
우리는 정말 지겹도록 많이 싸웠지.
말이 칼이 되고, 침묵이 벽이 되었던 그 시간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싸움은 서로를 향한 구조 요청이었을지도 몰라.

언니는 힘들었고,
나는 그 힘듦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고,
결국 나는 조용히 병들어갔지.

내 마음을 말하고 싶었지만
말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았고,
말했을 때 되돌아오는 상처가 더 아팠기에
나는 그저 침묵했어.


그 시절,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으려 애썼고
누구 하나 온전히 다치지 않은 사람이 없었지.

지금은 성인이 되었고,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그 시절의 상처는 여전히 그림자처럼 남아 있어.


그래도 나는 믿고 싶어.

우리가 서로를 미워하지 않고
다시 사랑하게 될 날이 올 거라고.


그리고 우리 세 자매가
서로의 마음에 다시 불을 밝혀줄 수 있는 날이
꼭 올 거라고.


나는 그날을 기다릴게.
글로, 마음으로, 살아있는 이 시간들로
언니들을 향한 내 마음을 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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