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나라에서 보낸 계절

푸바오도 자라고, 내 아이도 자랐다.

by 꽃하늘


난 어릴 때 참 소원이 많았다.

과자를 실컷 먹어보고 싶다에서부터 놀이동산에 가보고 싶어요까지,

적어도 백 개는 넘었던 것 같다.

의식주를 해결하기 어려운 시대는 아니었지만,

최소한의 것만 누릴 수 있었던 환경이었기에

그 외의 것을 바라는 건 ‘소원’ 정도는 되어야 이루어질까 말까였다.


놀이공원이란 곳은 수도권에 있는 특별한 장소였고,
지방 아이들에겐 소풍날이나, 친척이 서울에 살고 있는 등
아주 특별한 조건이 맞아야만 갈 수 있는 ‘환상의 나라’였다.
실제로 에버랜드에 갔을 때 울려 퍼지던

“환상의 나라로 오세요”라는 노랫말이
내 귀에 콕 박히기도 했다.
‘아, 그렇지. 여긴 정말 환상의 나라였지.’

그러다 내 삶에 천사 같은 아이가 들어오고 나서,
나는 어릴 적 소원으로만 품었던 것들을
하나씩 정말 이루어가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인해 바깥활동이 어려웠던 그 시기,
내 아이는 네 살이었다.
맞벌이 부부였던 우리에게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어린이집뿐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등원하지 않던 시기,
내 아이는 거의 매일 어린이집에 갔고
어떤 날은 원에 혼자 있는 날도 있었다.
회사에서 그 얘길 듣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무엇을 위해 내가 지금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있는 걸까.’
그 물음을 백 번, 천 번은 반복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더욱 주말마다 최선을 다했다.
우리 집에서 에버랜드까지는 차로 25분 거리.
연간 이용권을 끊고 한 달에 두 번은 갔던 것 같다.
사람들이 적었던 그 시기,
에버랜드는 동물과 나무, 꽃을 실컷 볼 수 있는
고맙고도 특별한 공간이었다.

물론 나도 어른이었지만,

놀이동산에선 내 아이의 누나 같은 마음으로 함께 걸었다.


에버랜드에는 많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물들이 있었지만,
내 아이와 참 닮은 동물이 있었다.
통통하고 포동포동한, 이름도 예쁜 푸바오.

어떤 날은 높은 나무에 올라갔다가
사육사님이 데리고 내려오는 모습을 보며

장난꾸러기 같기도 하고, 그냥 너무 귀여웠다.
내 아이도 푸바오를 마치 친구처럼 여기고
“나 왔어” 인사하며 꼭 보고 갔다.

내 아이가 자라는 시간 동안
푸바오도 함께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그땐 아기 같은 포동포동한 동물이 당연히 그 자리에 계속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사람도, 동물도 언젠가 독립해야 한다는 생각을 그땐 미처 하지 못했던 것 같다.


푸바오가 엄마를 떠나 중국으로 가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일부러 관련 기사를 읽지 않았다.

사람은 슬픔을 사실로 받아들이기 전에
이미 무의식으로 감지하고 있다가
‘활자’로 마주했을 때, 훨씬 크게 증폭이 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정해진 시간 동안만 머무를 수 있다는 것
그날이 지나면
그 자리에 있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
더 가슴 아플 수도 있다.


내가 그토록 푸바오에게 감정이입을 했던 이유는,

아마도 내 아이와 함께 자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천진한 얼굴이 내 아이의 얼굴과 겹쳐 보였던 것이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판다가 어미와 떨어져 독립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 영상을 보며 많이 울었다.

그 시기의 나는
눈물 버튼이 한번 눌리면 멈출 수 없던 시간이었고,
어미 판다와 새끼 판다의 이별 장면은
곧 내가 언젠가 겪게 될 미래를 상상하게 했다.

내 아이도 언젠가 자라서

내 곁을 떠나는 날이 오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더 많이 눈물이 났다.


푸바오가 중국으로 떠나던 날,
많은 사람들이 TV와 뉴스를 통해 배웅했지만
나는 그 영상을 끝내 보지 못했다.

전 국민이 사랑했던 푸바오지만,
나에게는 인기 때문이 아니었다.
푸바오가 내 아이를 닮았기에,
내 마음이 먼저 닿았기에.


이제 푸바오는 다른 나라에 있다.
속상한 일이 생겨도
엄마한테 이르러 오기엔
비행기를 타야 하니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내 아이는 이제 초등학생이다.
학교에서 억울한 일이 생기면
저녁에 내게 이야기보따리를 꺼내놓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꼭 안아주며 말한다.

“오늘 하루도 참 애썼어.”

그러면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말한다.

“엄마, 내 편 들어줘서 고마워.”


내 마음의 눈물 버튼이 자주 눌리던 시기에
환상의 나라에서, 천진난만한 얼굴로 항상 그 자리에 있어 줘서 고마웠어.

언젠가 내가 중국을 여행하게 된다면
멀리서라도 너를 보고
꼭 말해주고 싶어.

“고마웠어.
그리고 혼자서도 잘 지내줘서 정말 애썼다.”

내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것처럼
너도 항상 건강하고 잘 지내길 바란다.


"그때 그 자리에, 항상 있어줘서 고마웠어."

keyword
작가의 이전글너를 만나도 되는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