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6개월 차, 무기력증이 찾아왔다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탐색 중이다.
스스로도 부끄럽고 우스운 일이다. 얼마 전의 패기는 어디로 간 건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갑자기 방향을 모두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지금도 퇴사를 후회하진 않지만 열정을 잃어버리니 어쩔 줄을 모르겠다. 나는 우선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머릿속을 뒤적였다.
얼마 전 토익을 다시 졸업했다. 나는 목표치에 도달하니 그동안의 긴장감이 풀려서 몸이 쉬라고 강제 선언을 내버린 건 아닐까 생각했다. 두 달 반 동안 거의 7시간씩 공부한 게 탈이 난 게 아니었을까.
최근 준비 중인 단편 소설 절반이 워드의 자동 저장 오류로 날아가버렸다. 집에서 30분을 내내 울었다.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데이터 복구 센터에 갔지만 오만 원을 날리고 결국 복구하지 못했다. 이틀간 내 몸은 허무감으로 채워졌다. 다행히도 겨우 노트북에 앉을 힘이 생겨 이전보다 더 좋은 글이 나왔다. 그렇지만 아직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걸까.
혹은 첫 소속감의 부재 때문일까. 생각해보면 유치원, 초, 중, 고, 대, 직 20여 년 동안 소속감을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개인주의인 내가 그 소속감이 답답하여, 독립적인 개체로 나아가려 큰 용기를 냈는데 그 습관을 벗어나지 못해서일까. 등등.....
모르겠다. 일단 무기력증 방법을 찾아보다 '집에 있는 시간을 최소화하라'는 말에 9시쯤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뚝섬 유원지역에 내려서 한강으로 갔다. 평일 아침의 한강 풍경은 생경했다. 간혹 조깅을 하는 어르신들만 있을 뿐, 굉장히 한적했고 주말엔 화려했던 한강도 유난히 적막했다. 오늘은 안개가 많이 껴 있어 예쁘지는 않았지만 숨통이 조금은 트였다. 그렇게 한강을 따라 걷다가 갑자기 유튜브 생각이 났다.
유튜브엔 다양한 사람의 자기 계발 영상이 수두룩하다. 당연히 도움이 많이 된다. 그런데 정말 나한테도 그런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다. 아니었다. 오히려 영상을 본 그때뿐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그걸 밤에 본다는 거였다. 밤에 보면 실천을 할 수가 없고 오히려 수면에 방해만 될 뿐이었다. 결국 내게 시간낭비일 뿐이라는 판단을 내렸고 토익 공부할 때 인스타그램을 지웠던 것처럼 유튜브 사용을 중지했다. 화면에서 사라졌지만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당분간은 이대로 살아야겠다.
조금 더 걷다가 근처 조용한 카페에 왔다. 챙겨 온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의 마지막 부분을 10쪽 정도 읽었는데 도저히 글자를 볼 수가 없어 가방에 도로 집어넣었다. 사실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우선 12시까지 늦잠을 자지 않았고, 침대에서 일어나 씻고 준비해 문을 열고 밖의 찬바람을 마셨고 지하철을 타고 멀리까지 나와 산책한 후 카페에 앉아 책까지 읽었다.
오늘의 나는 이런 노력만으로도 만족하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지금 이렇게 글도 쓰고 있다)
이제 왓챠로 매트릭스 2를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