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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고운 Mar 07. 2021

엉성한 매력

모도리가 되고 싶었던 무른 사람

 나는 어릴 적부터 똑 부러진다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거의 다. 항상 무언가 엉성하고 빈틈이 많은 사람이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나아지긴 했지만 나의 덜렁댐은 아직 현재 진행 중이다.


 초등학생 땐 알림장을 도대체 왜 썼는지 의아할 정도로 준비물을 자주 깜빡했다. 그래서 학교 안에 있는 콜렉트콜 전화기로 자주 엄마께 준비물을 챙겨달라 부탁드렸다(그 추억의 전화기를 내가 가장 많이 애용했을 것이다). 학교까진 5분 거리였지만 그때만 생각하면 죄송할 따름이다. 이런 나의 태생적인 덜렁댐은 겉으로도 쉽게 드러났다.


 그 당시 내 무릎엔 항상 적갈색 딱지가 존재했다. 장애물 없는 깨끗한 길에서도 기어코 무릎을 찧었다. 제 딴엔 덜 다쳐 보고자 손까지 짚었더니 손바닥에도 생채기가 났다. 들이 완전히 아물기도 전에 나는 또 어디선가 넘어졌다. 심지어 계단을 내려가다 발을 헛디뎌 구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면 이마나 뒤통수가 불룩해졌고 엄마는 기겁을 하고 달려와 걱정 반 분노 반의 감정을 싣고 나에게 청심환을 먹였다.

 

 음식도 평범하게 먹지 않는다. 친구들과 밥을 먹을 때면 '턱에 구멍 뚫렸냐', '왜 이렇게 흘리고 먹냐'란 말을 자주 들었다. 실제로 다 먹고 난 뒤 테이블을 둘러보 유독 나에게만 음식 잔해들이 많았고 어느샌가 옷에는 진한 얼룩이 묻어 있었다. 흰 옷을 흰색 그대로 입고 집에 돌아온 날들이 나에겐 드물었다.


 이게 끝이라면 다행이지만 아직 하나가 더 남았다. 나는 공간지각 능력이 결여된 사람이었다. 쉽게 말해, 타고난 길치란 소리다. 아주 어릴 적 엄마와 마트에서 장을 봤는데 그 작디작은 공간에서 엄마를 잃어버려 울음을 터뜨린 기억이 있다. 어찌 보면 귀여운 에피소드일 뿐이지만, 커갈수록 내가 갈 수 있는, 가야 하는 공간들이 점차 넓어지면서 이런 성향은 크고 작은 문제들을 일으켰다. 휴대폰 지도가 친절히 알려주어도 기어코 반대로 가서(쓰면서도 어이없는 웃음이 새어 나온다) 버스를 놓친다던지 약속 시간에 늦어버리는 일이 적지 않았다. 다행히도 이젠 지도를 어느 정도 볼 수 있어서 그런 일이 현저히 줄긴 했지만 목적지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라면 약속 시간보다 한참 이른 시간에 집 밖을 나서곤 한다.


 나는 이런 빈틈들을 메꾸기 위해 엄청나게 애를 썼다. 뭐든 척척 해내는, 똑 부러지고 야무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학생 땐 성적으로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생이 될 때까지 굉장히 많은 시간을 책상에 앉아 있었다. 시험을 칠 땐 항상 거의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문제를 금방 풀었어도 덜렁대는 내 성격을 알기에, 몇 번이고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그 덕분에 틀릴 뻔한 문제를 맞힌 적이 꽤 많았다. 처음으로 일등을 했을 때 그 감정이 아직도 잔향처럼 남아 있다.


 또 짐을 쌀 때 무언가 빠뜨리지 않기 위해 반복적으로 물품들을 뒤적거리며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여행을 갈 때, 고향으로 내려갈 때 매번 비슷한 항목들이 필요했지만 몇 번이고 점검하고 또 점검했다. 예전에 자주 잃어버렸던 지갑은 요즘 아예 가져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휴대폰 케이스에 단지 카드 한 장을 넣고 다닐 뿐이다.


 실수를 줄이려는 나의 노력들이 이렇듯 좋은 결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정신적인 부작용이 찾아왔다. 20대 초반, 나는 극심한 완벽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사소한 실수에도 금세 우울감에 빠져들었다. 높은 성적은 자신감보단 안도감을 주었다. 성적뿐 아니라 잠깐이라도 나의 태생적인 빈틈이 보이기라도 하면 자책하고 채찍질했다. 그런 고통으로 인해 좋은 결과를 얻은 걸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나의 청춘을 괴롭게 보냈어야 했나 싶다.




 예전에 가수 아이유가 나오는 '효리네 민박'을 본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을 보고 인간 '이지은'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녀는 많은 연예인이 가지고 있는 성향과 정반대의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이지은'은 처음 만난 이효리, 이상순 부부를 보고 어색함을 감추지 못했다. 본업 외의 일을 할 땐 무언가 엉성하고 서툴렀다. 그런데 그 모습이 밉지 않았다. 이건 비단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의 그런 모습에 편안하고 힐링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항상 빠릿빠릿한 모습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느리지만 잔잔한 분위기를 가진 사람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참 좋았다. 마음가짐을 달리 먹기로 했다. 나의 단점을 주변에 피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만 고치려고 하되, 억지로 사회가 원하는 성향에 끼워 맞추지 말자고. 나의 단점을 충분히 매력으로 생각해주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이제 조금씩 보편성이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다. 어리숙하고 엉뚱하지만 순하고 차분한 나를 좀 더 좋아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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