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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고운 Mar 28. 2021

장단점에 절대성은 없다

나의 장점이 타인에겐 단점이 될 때

 그런 순간이 있다. 그동안 장점이라 여겨왔던 나의 부분이 주변 사람들에겐 오히려 단점으로 보일 때.


  나는 결과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대체로 몇 번의 검열 과정을 거치는 편이다. 그런데 이 섬세함이 때론 주변인들에게 답답함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들은 내게 말한다.

 "뭘 그렇게까지 해? 넌 너무 꼼꼼해. 빨리빨리 해!"

 인생마저 극도의 효율성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나의 장점은 독이 되어버린다. 물론 적당한 효율성은 필요하지만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듯이 '빨리빨리'에 유독 치우쳐진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나의 조급함 점차 커져갈 뿐이다. 약간의 물기만 남아 있어 그냥 두어도 금방 마를 수건을 더욱 빨리 마르도록 억지로 쥐어짜는 느낌이다.


 또한 나는 의견을 표출할 때 상대가 기분 상하지 않도록 우회적으로 말하는 편인데, 이러한 대화 방식에 있어서도 상대방과 충돌한 경우가 있다.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 건데?"

 내 딴엔 배려를 위해서였는데 오히려 상대에게 불편함을 주었고 그 화살이 나에게 돌아왔을 때 말문이 턱 막혀버린다. 직설을 포장으로 무례하게 말하는 사람들처럼 되지 않기 위한(또한 직설과 무례의 선도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나만의 최선의 기준이었는데 그런 반응을 보이면 당혹스럽다.


 휴식의 차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쉼, 즉 에너지 충전을 위해서는 오롯이 혼자 있어야 한다. 혼자 카페에 가서 책을 읽거나 혼자 음악을 들으며 산책을 하고 여행을 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왜 굳이 밥을 혼자 먹어?"

 "왜 사람들과 잘 어울려 놀지 않아?" 

 "혼자 여행하면 무슨 재미가 있어. 외로울 텐데."

 내가 정말 괜찮다는데, 주변에선 걱정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곤 한다.




 물론 서로가 생각하는 장점의 기준과 단점의 기준은 충분히 다를 수 있다. 나 또한 상대가 본인이 생각하기엔 고치고 싶어 하는 모습이 나에겐 그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나의 장점을 단점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소수가 아니라 다수일 때, 그리고 그런 상황들이 지속적으로 나타나 인정받지 못할 때 조금씩 안정된 정체성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지금까지의 내 성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부가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도 이를 타격 없이 유하게 흘려보낼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정말 문제인가 싶어 고쳐 보려고도 했지만 그럴수록 나를 잃어갔고 오히려 반발심만 늘어갔다. 불안감이 증폭되었고 나의 진짜 모습을 쉽게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이 문제에 조금이라도 의연하게 대처할까 생각해 보았다. 사회에 발을 담그기 시작한 후부터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걸 학생 때보다 더 자주 깨닫곤 한다. 실제로 한국에선 내향형보다 외향형의 사람들이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 내가 지금 이런 혼란을 느끼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주변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 한 내 장점을 타인을 위해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개성 있는 내 성향을 더욱 발전시켜 남들과는 다른 능력을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나의 본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다수의 사람들보다 내 장점을 알아주는 소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집중할 것이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보편성에 쉽게 말려들지 말자.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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