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나의 첫 북 스테이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사실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숙소는 앞으로 소개할 모티프원이 아니었다. 작년 겨울, 글배우님의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에세이를 읽고 위로를 많이 받은 후 작가님이 운영하시는 '글배우 서재'에서 혼자 2박 3일간 북 스테이를 할 예정이었다. 그곳에선 작가님이 직접 고민을 들어주시는 상담도 운영 중이라 꼭 예약하고 싶었다. 하지만 예약을 하기 위해 전화를 드렸더니 하루만 숙박이 가능하다 하셨다. 아쉽게도 남은 1박을 위해 다른 숙소를 찾아야 했다. 그곳이 바로 모티프원이었다. 이렇게 첫날은 글배우 서재에서, 둘 째날은 모티프원에서 책과 함께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그 날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중 글배우 서재에서 다급히 연락이 왔다.
"죄송합니다. 동파로 인해 수도관이 터져 숙박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계좌번호를 알려주시면 빠르게 환불 도와드리겠습니다."
물론 동파는 사람의 잘못이 아니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기대감만큼 공허함과 실망감은 컸다.이제 다른 숙소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찾아보아도 근처에 괜찮은 곳이 없어 결국모티프원에서 이틀을 묵기로 했다. 캐리어를 끌며 이동하는 내내 사실 기분이 마뜩잖았다. 글배우 서재에서 작가님을 직접 뵐 수 있는 고민 상담도 함께 신청해 놓았는데 물거품이 돼버리다니. 무거운 기분을 이끌고 지하철을 타고 합정역에 내려 파주로 향하는 2200번 버스에 몸을 실었다. 빈자리가 많아 나는 앞쪽에 위치한 창가 자리에 앉았다. 다행히 이동 중 창밖에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들에 홀딱 반해 내 심란한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그렇게 50여 분을 달려 모티프원이 있는 파주 헤이리 마을에 도착했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예쁜 건축물들이 아기자기 모여있는 동화 같은 마을이었다. 아직 체크인 시간까지 조금 남았지만 짐이 무거워 숙소에 짐을 두고 마을을 구경할 생각이었다. 나는 휴대폰으로 지도를 켜 모티프원을 찾아가기로 했다. 길치라 지도를 보면서도 작은 골목들을 오가며 길을 헤맸다. 하지만 그 덕분에 독특한 건축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결국 몇 번 더 헤맴 끝에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심스레 문을 드르륵 열었다. 30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인지 주인분 것이라 추측되는 고무신 한 켤레를 제외하고는 아무 신발도 놓여있지 않았다. 안에는 희고 긴 수염을 가진 분이 계셨는데, 헤이리 마을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주인분 옆에는 방들에 놓일 깨끗한 수건들이 탑처럼 쌓여 있었다. 내가 너무 일찍 왔나 싶어 조심스레 여쭤보았다.
"아유, 아니에요. 금방 방 정리 끝낼 테니까 그동안 여기서 천천히 구경해요. 이틀간 손님이 주인공이니까 마음껏 이용하세요."
"감사합니다!"
주인분은 정리를 하시면서 끊임없이 나에게 말을 건넸다.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알고 온 건지, 이름, 나이, 직장인인지 학생인지 등등 다양한 질문을 하셨다. 그 덕에 처음 본 사람에게 선뜻 말을 걸지 못하는 내가 대화하기 한결 편해졌다. 우리는 만난 지 10분, 아니 5분도 안 되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인분은 헤이리 마을을 관리하는 촌장님이자 직접 책을 출간하신 작가님이셨다. 나는 책을 내셨단 말에 기뻐하며 주인분께 항상 작가님이라 불렀다.숙소 주인이 마을의 촌장이자 작가라니, 정말 동화 같고 멋지지 않은가.
주인분, 아니 작가님이 위층 숙소 정리를 마저 마무리하실 동안,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1층은 공용 공간으로, 부엌과 거실이 있었다. 거실에는 인터넷에서 봤던 대로 수백 권의 책들이 빽빽이 들어찬 서재와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글배우 서재에 가지 못한 아쉬움이 전부 사라져 버릴 정도로 서재의 분위기가 참 좋았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 수십 장의 사진을 찍었고 동영상 촬영도 하였다. 한껏 다른 세상 같은 분위기에 취해 있을 때, 작가님이 계단을 내려오며 준비가 다 됐으니 내가 묵을 방을 소개해준다 하셨다. 한 계단씩 올라갈 때마다 심장이 점점 더 빨리 요동쳤다. 드디어 나의 첫 북 스테이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