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과함께 방 안에 들어서자 '우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크고 폭신한 침대가 놓여 있었고 오른쪽에는 수십 권의 책이 꽂힌 책꽂이가 놓여 있는 원목 테이블과 등받이가 있는 검은색 기다란 의자가 있었다. 그 맞은편엔 커다란 옷장이었는데 전면이 거울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유독 마음에 들었던 부분인데, 바로 엄청나게 큰 통유리창이었다. 창으로는 겨울의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앙상한 나뭇가지를 드러낸 나무들이 보였다. 계절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넓은 창이 참 좋았다. 여기서 책을 읽고 있는 상상을 하자 정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님은 자세한 숙소 설명을 해주시고 푹 쉬라며 자리를 피해 주셨다. 나는 이 공간을 좀 더 섬세하게 눈에 담았다. 혼자서 이 넓은 방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니 정말 행복했다. 나는 바로 책을 읽진 않고 파주에 처음 왔으니마을을 구경하고밥도 먹을 겸 서둘러 짐을 풀고 간단히 소지품만 챙겨 일층으로내려갔다. 서재에는 작가님이 계셨다.
"밖에 나가시려고요?"
"네. 밥도 먹고 구경도 좀 하려고요. 그런데 혹시 제 신발 못 보셨나요?"
"날이 많이 추워서 바깥에 두면 얼 것 같아 제가 뒤쪽 현관에 옮겨 놓았어요. 뒷문으로 나가셔도 돼요."
작가님은 항상 존댓말을 해주셨고 내가 괜히 죄송스러울 정도로 배려 넘치는 행동들을 보여주셨다. 연령에 상관없이 대해 주시는 존중이 정말 감사했다.게다가 내가 신발을 신고 밖을 나갈 동안 언 눈으로 인해 미끄러지지 않도록 도와주셨다. 날씨는 추웠지만 마음은 따스했다.
모티프원을 나오니 금세 저녁 시간이 되어 있었다. 겨울이라 해가 빨리 저물었다. 점심도 아직 못 먹었기에 주린 배를 채울 식당부터 찾아 나섰다. 헤이리 마을에는 한식보다는 양식이 훨씬 많았다. 나는 유독 불빛이 밝고 내부에 하얀색 트리와 하얗고 거대한 곰돌이 인형이 보이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클래식하고 고급스러운 식당 분위기에 꼭 유럽여행을 온 것만 같았다. 나는 파스타를 시키고 휴대폰으로 사진과 영상을 마구 찍어댔다. 파스타가 나오자 또다시 여러 장의 사진을 남긴 후에야 허겁지겁 먹을 수 있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이번에는 예쁜 카페를 찾아따뜻한 코코아를 마시며 차가워진 몸을 데웠다.
카페를 나와 헤이리 마을을 천천히 거닐며 사색에 잠길 생각이었는데 12월의 날씨는 추워도 너무 추웠다. 나는 몇 분 둘러보고 모티프원으로 급하게 발길을 돌렸다. 불빛이 새어 나오는 문을 드르륵 여니 작가님이 반겨주셨다. 나는 방으로 올라가 편하고 따뜻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캐리어에서 글배우님의'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를 꺼내고 아까 사두었던 차가운 캔맥주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기다란 의자에 앉으니 통유리창으로 맨살을 드러낸 나뭇가지들을 비추는 달이 보였다. 책 읽기 완벽한 장소였다.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편안하게 책장을 넘겼다. 그러다 감성에 젖으면 멍하니 창밖의 달빛을 바라보기도 하고 노트북에 생각나는 구절을 남겨놓기도 했다. 몸이 살짝 찌뿌둥해질 때쯤 장소를 옮기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
서재에서 작가님은 책을 읽고 계셨다. 혹시나 방해될까 싶어 다른 좌식 원목 테이블에 앉았는데, 작가님이 일어서더니 감사하게도 나에게 맥주와 간단한 안주거리를 내오셨다. 나는 과자를 먹으며 작가님과 함께 조용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 라디오에서는 독서를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음악이 흘러나왔다.작가님은 곧 주무시러 들어가셨고 나도 좀 더 읽다 방으로 들어가 잘 준비를 했다. 씻고선 폭신한 침대에 들어가 휴대폰으로 잔잔한 음악을 틀어 놓고 책을 마저 읽었다. 점점 졸음이 쏟아졌다. 마지막 장까지 넘긴 후에야 불을 끄고 폭신한 이불속에 파고들었다.따스하고 편안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