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브런치 작가 신청에서 한 번에 합격했었다. 취업은 매번 떨어졌으면서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면서 이건 한 번에 합격하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건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자신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취준에 대해 쓰고 싶은 글이 너무나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처음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게 해 주었던 취준 관련 글들을 지워버린 지 꽤 되었다. 정확히는 지웠다기보단 작가의 서랍에 먼지 소복이 쌓인 채 몇 년째 보관 중이다. 취준에 관한 글을 썼을 당시, 나는 정확히 취준생은 아니었다. 취업을 포기하고 방황 중인 백수였다고나 할까. 대학원까지 졸업 후 몇 년 동안 과외와 취업 준비만 하다가 30대가 되었고, '이제 뭔가 다른 걸 해봐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취업 외에 돈을 버는 방안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봤지만, 그나마 조금 할 줄 아는 공부를 한 번 더 해봐야겠다는 게 그때 나의 결론이었고 그래서 노무사 시험을 준비했던 거였다.
그렇게 취준에 관해 내가 쓰고 싶던 글들을 마음껏 다 쏟아내 놓고 이제와 그 글들을 모두 지워버린 이유가 있다. 그즈음에 나는 장기간의 취준이라는 그 상황과 그 감정 속에 나를 계속 놓아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오랜 경험을 디딤돌 삼아 이제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취준 글들을 계속 보고 있으면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의 나를 본 적 없이 내 브런치 글들만 읽은 사람들에게 내가 그저 '취준을 오래 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게 싫었다. 취준 기간은 내 인생의 경험과 생각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여러 가지 중 그저 딱 한 가지 부분일 뿐이다. 나는 이제 글에서 더 다양한 모습이 있는 다채로운 사람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취준 관련 글들은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게 해준 사랑스러운 글이면서,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미운 글이기도 하다. 그런 애증의 글들을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내가 그때보다 얼마나 더 성장했는지,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한 그때의 느낌은 어땠었는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대략 3년 만에 다시 읽은 글들에서 느낀 점들을 정리해봤다.
1. "장기간의 취준 & 취업 실패" 경험으로 내가 배운 점들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글들을 읽다 보니 모든 글에서 내가 취준으로 얻은 깨달음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 가지 목표만 보고 미친 듯이 열심히 달려가지 말라"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의 인생에도 해당될 말이다. 그때는 "취업"이란 목표 하나만 보고 미친 듯이 달렸다. 그래서 인간관계, 나의 마음건강, 여유로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놓쳤다. 지금도 너무 목표 하나만 세우고 그것에 너무 몰두하고 있진 않은지 반성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2. 장기간의 취준이 정말 힘들다는 걸 알지만, 그때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한 절절함이 이제는 잘 느껴지진 않는다. 이별이 너무 아팠지만 연인과 헤어지고 몇 년이 지나니 그때의 뜨거웠던 마음이 잘 안 느껴지게 되는 것처럼. 하지만 그렇다고 취준생이었던 나에게 "야, 그 정도는 힘든 것도 아니야. 살면서 그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 얼마나 많은데."란 말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그런 말 자체가 더 큰 상처가 된다. 그저 그때의 나를 꼭 안아주고 싶다. 네가 나약한 사람이라 힘든 거 아니라고. 너 정말 힘든 거 맞다고. 정말 고생 많았다고.
3. 내가 취준 기간이 길었던 것이, 결국 원하는 곳에 취업이 되지 않았던 것이 정말 진심으로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의 경험 덕분에 단순히 "취업"이 아닌 장기적으로 내가 원하는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을 길게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리고 대기업 또는 공기업, 연봉 높은 곳에 취업이 되었다면 아마 나는 주변 사람들과 계속 비교만 하면서 살았을 거고, 그러니 남들 따라가기에 급급해했을 거고, 명품이나 차 사는 것이나 해외여행 등에 돈을 쓰면서 돈을 제대로 모을 생각을 못 했을 것 같다.
내가 처음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할 때 내 글을 읽은 많은 취준생 독자분들 생각이 난다. 그때 취준생 독자분들 대부분도 이제 취업 여부 상관없이 그때와 상황이나 생각이 많이 달라져 있으시겠지. 그분들에게 지금의 나의 글들은 또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지기도 하다. 예전에 나의 취준 글들을 처음부터 다시 정독했다는 댓글을 봤던 적도 있는데, 감사하면서도 또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도 든다. 이제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또 다른 부분들도 많아서.
요즘 취준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내가 취준 할 때보다 더 어려워지면 어려워졌지 좋아지진 않은 것 같다. 예전에 내 글에 위로받았다고 댓글을 달아주신 독자들처럼, 지금의 취준생들도 내가 썼었던 글들을 보며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공개해둘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하지만 위에서 썼던 이유들로, 결국 '나를 위해' 계속 서랍 속에 꼭꼭 숨겨놓기로 했다.
한때는 내 취준 글들을 보며 위로받았었고, 이제는 또 다른 힘듦과 고민에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는 독자분들을 상상해 본다. 그분들도 나도 함께 오랜 취준 경험에서 배우고 깨달은 것을 토대로 더 성장하고 빛나는 사람들이 되어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