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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쓴 Nov 26. 2022

나만의 속도를 지킨다는 것

  관장님은 늘 복싱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씀하신다. 저번 주 주말에 10km 마라톤을 뛰면서 관장님 말씀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너무 오랜만에 마라톤에 참가했고, 연습도 거의 못하고 뛰어서 초반부터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승부욕이 높은 나는 관장님의 말씀처럼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면 안 돼!'라며 힘들어하는 나를 다그쳤다. 연습도 제대로 안 했으면서 난 체력이 좋으니까 괜찮을 거라며 초반에 스피드를 냈고, 내 생각과 달리 몸은 금방 지쳤다. 


  2,3km 지난 시점부터 뛰지 않고 걷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보였고, 반환점이 되는 5km 지점 전까지 걷는 사람들은 더 많아졌다. 그리고 반환점을 돌고 약 8km쯤이 지난 이후부턴 내 주변에 걷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목표지점까지 약 80프로를 꾸준히 뛰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포기하는 게 더 어렵다. 얼마 안 남았는데 포기하는 것이 아깝기 때문이다. 결승점까지 1km쯤 남았을 때 마지막 힘을 내서 속도를 높여 뛰어볼까 했지만, 무릎이나 다리에 무리가 올까 봐 계속 뛰던 페이스 그대로 끝까지 뛰었다. 


  당연히 예전에 한창 마라톤에 자주 참가했을 때보다 기록은 많이 떨어졌다. 이제는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면 안 돼!'라며 나를 혹독하게 밀어붙이기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무조건 나를 다그치며 무리해서 뛰는 것도, 더 뛸 수 있으면서도 자기 합리화하며 걷는 것도 나에게 좋지 않다. 기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적정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그에 맞춰 뛰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뛰는 동안 주변에 포기하는 사람들(뛰지 않고 걷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같이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했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열심히 뛰면서 나를 앞질러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같이 더 빠르게 뛰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나에게 맞는 속도를 지키고자 노력했다. 포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나는 내 페이스대로 가겠다며 걷지 않고 계속 뛰었고, 나를 앞질러서 뛰어가는 사람들을 다시 앞지르려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무리해서 뛰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을 너무 혹사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까지 나를 다그치지 않아도 되는데,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 내가 나에게 그것밖에 못하냐며 내가 나를 스스로 깎아내렸던 기억들이 많다.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나를 다독여 줄 줄도 안다. 이번에 마라톤을 뛰면서 기록은 전보다 안 좋아졌을지 언정 나 스스로 많이 컸구나(?)하는 걸 느꼈다. 기록 몇 분 단축하려고 막판에 무리하지 않은 것도 잘했고, 끝까지 단 한 번도 걷지 않고 계속 천천히라도 뛴 것도 정말 잘했다.


  나만의 속도를 지킨다는 것은 참 어렵다. 우선 내 적정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내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견딜 수 있는지 정확히 아는 것조차도 어렵다. 나만의 속도를 어느 정도 비슷하게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의 속도에 흔들리지 않고 내 속도를 계속 지키며 뛰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이번 마라톤에서도 나만의 속도를 지키며 알았는데 속도보다 조금 높여서 뛰었나 보다. 대회 끝나고 허벅지에 근육통이 왔다. 3일 동안 출퇴근할 때 지하철에서 계단 오르락내리락거릴 때마다 고생을 했다. 그래도 역시나 대회에 참가한 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의 속도를 찾고 그에 맞춰 뛰는 것은 계속 참가하면서 연습해 나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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