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한지 겨우 5개월도 채 안 됐는데 나는 혼자 사는 지금이 너무나 익숙하다. 5개월이 아니라 5년을 혼자 살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정도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지만 정말 빠르게 완벽히 적응을 해버렸다. 걱정할게 뭐가 그리 많았었는지 의아할 정도로 혼자 사는데 어려운 점도 없다. 이제는 오히려 30년 넘게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는 것이 더 낯설게 느껴진다. 가끔 본가에 가면 집도 내가 썼던 방도 낯설다. 지금 혼자 사는 집이 훨씬 더 익숙하고 편하다.
이사 후 초반에 우왕좌왕했던 시간이 지나가고 금세 나만의 동선과 루틴이 잡혔다. 겨우 10평 남짓 원룸이지만 이 사각형 방 안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오롯이 만끽하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무도 없는 고요함이 너무 좋아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되고, 내가 좋아하는 침대와 이불의 감촉에 부비부비 하면서 행복해한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베란다에 나가서 반려 식물들이 그새 또 얼마나 자랐는지 관찰하고, 주말마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대청소를 하고, 세탁기에서 막 꺼낸 섬유 유연제 향기가 나는 뽀송뽀송한 빨래 향에 취하고, 전기밥솥에서 방금 막 완성된 하얀 쌀밥 냄새에 취하고, 그냥 이 모든 게 너무 자연스럽고 평화롭다.
사실 독립하고 나서도 집에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본가에 있을 때보다는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때가 많다. 아침 햇살 맞으며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멍 때리고, 주말에 일주일간의 청소를 몰아서 하며 땀 흘리고 샤워하고 나와서 또 멍 때리고, 주말에 낮잠 자고 깨서 침대 위에서 혼자 뒹굴뒹굴하며 천장 보면서 또 멍 때리고..
잠시 멍 때릴 시간조차 없이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렸던 나의 지난날들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이제 익숙해진 혼자 사는 일상이 더욱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너무 바쁘게 살지 말자고 또 다짐하게 된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여유를 조금은 즐길 줄도 알게 되었다. 여유를 즐길 줄 알게 되니 지난날을 뒤돌아 보기도 하고, 현재 주위를 둘러보기도 하고, 저 멀리도 내다보기도 하면서, 시야도 좀 더 넓어지게 된 것 같다.
독립하고 나서야 나 자신에 대해 알게 된 것이 몇 가지 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하고 또 놀라운 것은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는 것이다. 단순히 가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나는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과 혼자만의 공간을 풍성하게 즐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 외에도 내가 요리해 먹는 것, 청소를 열심히 할 줄도 아는 사람이라는 것도 독립하고 나서야 처음 알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혼자 사는 집에 아무도 없는 조용한 느낌이 싫다고 하는데, 나는 아무도 없는 이 조용한 나만의 공간이 너무나 마음에 꼭 든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이 순간, 고요한 나만의 공간에 나 혼자 있을 때는 그냥 시간이 멈춰있는 듯 느껴질 때가 있다.
나만의 공간을 갖게 되고 나서야 여러 방면으로 생각이 더 많고 깊어졌고, 하고 싶은 일도, 하고 있는 일들도 훨씬 더 많아졌다. 무채색이었던 일상이 알록달록 톡톡 튀는 색으로 칠해지고 있는 중이다. 내 공간 안에서만큼은 내 마음을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고, 함께 살 때는 몰랐던 내 모습들을 알 수 있게 되고,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이 뭔지 더 명확히 알게 된다. 그리고 남들이 정해준 답이 나에게 답이 아님을 확실하게 알게 된다. 나와 똑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듯이, 나와 똑같은 답을 가진 사람 또한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을.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서 글을 쓰려면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시를 쓰든 소설을 쓰든 에세이를 쓰든 어떤 형태든 글을 쓰려면 자기만의 방에서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일은 사유가 필요한 일이다. 사유는 누가 대신해주지 않는다. 혼자서 해야 한다. 그래서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공간에 혼자 있을 때, 비로소 본인만의 답을 찾아가는 첫걸음이 시작된다. (그래서인지 요새 글감도 마구 떠오르고 글감 메모가 넘쳐난다. 다만, 글을 자주 올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나의 게으름 때문..)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자기만의 답을 얻을 수 있다. 자기만의 방이 생긴 지금은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고민하면서 나만의 답을 찾아가고 있다. 무얼 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던 아이 같던 내가 이제 조금은 어른스러워진 것 같다. 가끔씩 '내가 잘 살고 있는 건지'같은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마다, 나는 다시 고요한 자기만의 방으로 들어가 내 마음속 소리를 듣는 연습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