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놀쓴 Jul 02. 2020

살아있으니 살고 있을 뿐이었던 나날들

  요새 뭐하고 지내냐는 지인들의 질문에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심. 심. 해. 나 그냥 너무 심심해.’ 항상 바쁘게 지내는 것에만 익숙했던 내가 심심하다니..? 별 탈 없이 회사를 잘 다니고 있고 퇴근하고서는 매일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고, 주말에는 지인들을 만나거나 모임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는 서점에 가서 책을 읽거나 공원 같은 델 산책하는 것이 요즘 내 일상이었다. 심심하다고 하기엔 뭔가 이상했다. 점점 무더워지는 날씨에도 답답한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는 것만큼이나 마음이 답답해져 왔다.


나는 그저 재밌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열심히 사는구나, 자기 관리 철저히 하네, 대단하다.' 오랫동안 이런 말들을 참 많이 듣고 살았다. 하지만 나는 열심히 살기도 싫고, 자기 관리하기도 싫다. 대단한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그저 재밌게 살고 싶을 뿐이었다. 재밌게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버둥 치는 내 모습이 주변 사람들에게는 열심히 사는 것, 자기 관리하는 것으로 보였을 뿐이다. 겉으로는 바쁘게 보였지만, 사실 근 몇 달 동안 내 마음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살아있으니 살고 있을 뿐인 나날들이 몇 달 동안 이어졌다.


  주말마다 꽉 차있는 약속들로도, 숨넘어갈 정도로 격하게 하는 운동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답답한 공허함만 가득한 시간들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할 수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근 몇 달간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놓고 살았으니까. 글을 어떻게든 써보려고 몇 번 카페에 가서 끄적여보긴 했지만 도저히 마음에 드는 글이 나오지가 않았다. 체육관이 휴관해서 몇 주간 운동을 못하기도 했고, 도서관이 휴관하니 책을 빌릴 데가 없어 책을 읽지도, 조용하게 집중해서 글을 쓸 공간도 없어졌다. 가끔 혼자 갔던 코인 노래방까지 문을 닫았다. 나에게 꼭 필요한 '혼자만의 충전시간들'이 사라졌다. 한창 코로나 때문에 온통 들썩일 때 직격탄을 받은 프리랜서나 자영업자들의 소식, 지인들의 소식을 많이 들었다. 당장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사람들 앞에서 안정적으로 돈을 벌고 있는 나는 아무런 푸념을 할 수 없었다. 마음속에만 꾹꾹 누르고 누르니 무기력과 공허함이란 것이 스멀스멀 피어나 온몸을 감쌌다.


  감동도 행복도 우울함도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 생각도 없었고, 슬플 일도 기쁠 일도 없었다. 웃음도 눈물도 잘 나지 않았다. 겉으로만 바쁘고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사람들은 늘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판단을 하니까.

 

  자주 고민을 나누는 친구가 말했다. 20대 때는 어떤 30대가 되고 싶다고 머릿속에 그리곤 했었다고. 근데 이제는 어떤 40대가 되고 싶은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고. 길을 잃은 것 같다고. 나도 그런 것 같다. 현실의 무서운 벽에 여기저기 부딪쳐봐서이기 하고, 더 이상 안 되는 걸 억지로 애쓰는 것에 지쳐서 이기도 할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선택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고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의 시간낭비가 더욱 크게 느껴지기에, 선뜻 어떤 선택을 할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이제는 내 마음이 진심으로 원하는 목표만 세우고 싶다.


  긴 학업, 취업, 수험기간을 거쳐 노무사 합격 후에 나의 목표는 노무사로서 커리어를 쌓고 돈을 많이 버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나의 목표는 ‘목표를 세우지 말자.’는 것이었다. 매일 새벽같이 연구실에 도착해서 공부했던 대학원 시절도, 길에 서서 끼니를 때우고 뛰어다니며 과외를 했던 시절도, 매일 도서관에서 하루 14시간씩 있다가 집에 가서 기절해서 잠들었던 수험생 시절도, 이제는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그땐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고 싶어서 열심히 했을 뿐이고, 그냥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을 뿐이다.


  몇 살까지 얼마를 모아야 한다느니, 더 좋은 학위를 따야 한다느니 등의 보여주기 위한 목표는 더 이상 세우고 싶지 않다.  왜 하는지도 모르고, 정말 해야 하는지 아닌지도 모르고, 내가 하고 싶은 건지 아닌지도 모르고 그저 남들이 해야 한다고 하니까 하는 것들. 남들이 하는 게 좋다고 하니까 하는 것들. 나는 이런 방식으로 사는 것에 지쳤다. 이제는 내 마음이 진심으로 원하는 목표만 세우고 싶다.






거의 세 달 넘게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못했네요.

도서관이 휴관해서 항상 글 쓰던 장소가 없어졌다는 건 핑계인 것 같고, 위에서 쓴 것처럼 마음은 공허하고 똑같은 일상에 글감이 떠오르지 않았던 게 글을 쓰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네요.

이젠 너무 장기화돼버린 코로나와 상황들에 익숙해져서 인지 슬슬 쓰고 싶은 글들도 떠오르는 것 같아요.

글을 올리지 않는 동안에도 예전 글들을 좋게 봐주시고 구독해 주신 분들, 구독 취소하지 않고 제 글을 기다려주신 분들 다들 감사합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왜 자꾸 나한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