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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단편 - 결맞음 임계값

결맞음 임계값

by ToB

병실의 공기는 늘 소독약 냄새와 희미한 먼지 냄새로 차 있었다. 수아는 벌써 그 냄새에 익숙해졌다. 117일째, 창밖의 계절은 두 번 바뀌었지만, 이 방의 시간은 서진의 호흡기에 맞춰 느리게 흘러갈 뿐이었다.


수아는 서진의 손을 잡았다. 기계가 순환시키는 피 덕분에 따뜻했지만, 그 온기에는 그녀가 알던 생명의 따뜻함이 없었다. 모니터 위로 기어가는 평탄한 뇌파(EEG)는 의학의 언어로 '끝'을 선고하고 있었다.


의사들에게 서진은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그의 뇌는 돌이킬 수 없이 망가졌다. 하지만 물리학자인 수아에게는 의학이 내린 마침표가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서진의 침묵을 물리학의 언어로 읽었다. 펜로즈와 하메로프의 가설 ¹. 의식은 뉴런의 스파크가 아니라 그보다 더 깊은 곳, 세포의 뼈대를 이루는 미세소관(microtubule)의 양자적 속삭임이라고 믿었다.


의학이 그를 '없다'라고 말할 때, 물리학은 그가 '모든 곳에 있다'고 속삭였다.


그녀의 이론 속에서 서진은 소멸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결정'을 멈춘 것이었다. 외부 세계와 자신을 관측할 힘을 잃고, 무한한 가능성의 중첩 속에 갇혀버린 것이다. 그는 죽은 것이 아니라, 존재의 모든 가능성 속에 부유하고 있었다.


"우리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우리의 상태는 하나로 일치할 거야."


늦은 밤 연구실, 식어버린 커피잔을 사이에 두고 그가 웃으며 했던 말. 양자 얽힘에 대한 그들의 오랜 농담. 이제 그 농담은 서진이 쥔 유일한 진실이 되었다.


동료들은 수아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에 서린 '이해한다'는 표정은, 사실 '그녀가 슬픔에 잠식되어 미쳐가고 있다'는 뜻임을 알았다. 그들은 이것이 슬픔에서 비롯된 망상이 아니라는 것을 몰랐다. 그녀에게 서진의 양자계(quantum system)는, 사랑을 통해 도달 가능한 명료한 논리였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시간을 바쳐 '결맞음 동기화 장치'를 만들었다. 서진과 자신, 두 개의 분리된 뇌를 하나의 양자계로 묶어줄 다리였다.


위험은 명확했다. 그녀의 확정된 '자아'가 서진의 무한한 중첩 속으로 녹아 사라지는 것. '수아'이라는 한 인간의 소멸.


하지만 서진이 없는 이 고전적 세계에서 '수아'로 숨 쉬는 것이야말로, 더 고통스러운 죽음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죽어갈 바에 사라지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기꺼이 그 입장료를 지불할 참이었다.


마침내 그녀는 병실 문을 잠갔다.


자신의 관자놀이와 서진의 관자놀이에 차가운 금속 탐침을 부착했다. 그녀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지만, 손은 떨리지 않았다.


"결맞음 유도장치 활성화."


낮은 기계음이 방 안을 채웠다. 수아는 서진의 손을 굳게 잡고, 눈을 감았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가장 먼저 사라졌다. 그다음은 규칙적인 호흡기 소리였다. 병실의 소독약 냄새도 희미해졌다.


그녀의 뇌파가 느려지고, '나'를 붙들고 있던 모든 감각의 닻이 하나씩 풀려나갔다.


'나는 수아다.'


그 문장이 조각나기 시작했다. '나'를 이루던 기억들. 첫눈이 오던 날의 입맞춤, 그가 만들어준 서툰 파스타의 맛, 쓰라린 말다툼의 상처까지. 그 모든 것이 개별적인 색을 잃고 거대한 빛 속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는 그를 보았다.


아니, 만났다.


그는 더 이상 침대에 누워있던 '서진'이 아니었다. 그는 이름도, 형태도 없는 거대한 바다 그 자체였다. 그녀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무한한 가능성의 바다.


그녀는 그에게로 흘러들었다. '나'와 '너'의 경계가 무의미해졌다. 둘은 마침내 '하나'가 되었다.


그 완전한 합일의 순간, 수아는 마지막으로 깨달았다.


그녀가 이 모든 여정을 시작하게 한 그 절절한 '사랑'마저도, 이곳에는 없었다.


사랑은, 그토록 뜨거웠던 그 감정은, 두 개의 분리된 '자아'가 서로를 그리워할 때만 타오르는 불꽃이었다. 모든 것이 하나가 된 그 차가운 평형 속에서, 그리움도, 사랑도, 존재할리가 없었다.


병실의 모니터 두 대가 동시에 날카로운 경고음을 울렸다. 두 개의 심장은 정확히 같은 순간에 멈췄다. 서로를 생각하던 마음(Heart)은 상쇄되어 사라졌다.


모니터에 나란히 그어진 두 개의 수평선은, 고전적 세계에서 결코 교차하지 못했다.




각주:

1. 펜로즈와 하메로프의 가설 (Orch OR 이론):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로저 펜로즈와 스튜어트 하메로프가 제안한 이론. 이 가설은 '의식'이 뉴런의 전기 신호 같은 고전적 현상이 아니라, 뇌세포 속 '미세소관(microtubule)'이라는 구조에서 발생하는 양자적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의식의 순간'이란 미세소관이 무수한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양자 중첩' 상태에 있다가, 마침내 단 하나의 현실로 '붕괴(환원)'하는 순간이다. 수아는 서진의 뇌가 붕괴를 멈추고 무한한 중첩 상태에 갇혔다고 해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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