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겁
닥터 첸은 포드의 두꺼운 강화유리를 두드리며 절규했다. 하지만 클라라는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전송 시퀀스가 활성화되는 것을 침착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스캔-삭제 프로토콜 활성화.]
[스캔 개시. 3... 2... 1...]
푸른빛의 스캔 광선이 그녀의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훑기 시작했다. 그녀의 육체는 원자 단위로 분석되고, 그 정보는 양자화되기 시작했다. QET 운영체제는 이 과정을 '데이터 패킷화'로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바로 그 순간, '삭제'되었어야 할 '오류' 하나가 그녀의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 심층부에서 강제로 표출되었다. '스캔'이라는 물리적 자극이, QET가 '격리'해 두었던 가장 강력한 트라우마의 잠금을 해제해 버린 것이다.
[스캔 진행. 3... 2... 1...]
푸른빛의 스캔 광선이 그녀의 뇌를 훑었다. 그 감각적 연결이 QET의 모든 방화벽을 뚫어버렸다.
[파일 강제 실행: EVELYN_PALOMAR_10Y.DAT]
‘... 길을 잃지 않고, 그 흐름을 유지하는 것. 그게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SYSTEM ERROR: 논리적 모순 발생!]
[명령 1: QET(상태)를 '목적지'로 전송하라.]
[명령 2: 인간(흐름)의 '과정'을 지켜내라.]
[QET 운영체제와 원본 기억 데이터(EVELYN_CORE_PHILOSOPHY) 간의 치명적 충돌.]
클라라의 얼굴이 격렬한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것은 전송 과정 중에 겪었던 '영겁의 지연' 과는 달랐다. 기억의, 존재의 통증이었다.
그녀는 '메시지'인가, '클라라'인가. '상태'인가, '흐름'인가.
"안... 돼..."
그녀의 입에서 인간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전송 실행]을 명령하는 QET의 의지와, [길을 잃지 말라]고 절규하는 클라라의 의지가, 그녀의 의식 속에서 서로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11분 뒤. 지구 관제실.
아나톨리 페트로프는 화성과의 통신이 갑작스레 두절되어, 절망 속에서 사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때, 재구성실에서 비상 알람이 울려왔다.
"책임자님! 화성에서... 인가 받지 않은 전송입니다! 샘플 포트가 작동했습니다!"
아나톨리는 재구성실로 달려갔다. 빛의 입자들이 춤을 추며 한 인간의 형상을 빚어내고 있었다. '스캔-삭제' 방식으로 전송된, 인간 형상의 완벽한 사본.
클라라 림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아나톨리는 숨을 죽였다. 그가 마주하게 될 것이 무엇인지 두려웠다. QET에 감염된 완벽한 '기계'인가? 그가 알고 있던 '인간' 클라라인가?
"클라라...?"
클라라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15년 전 '암스트롱 사고' 기록 속의 그 우주비행사처럼, 텅 비어 있었다.
"아..."
아나톨리는 무너져 내렸다. QET와 '클라라'의 마지막 충돌은, 두 개의 운영체제를 모두 파괴했다. 그녀의 뇌는 이론상 완벽하게 재구성되었지만, 그 안에는 어떤 의미 있는 활동도 없었다.
그녀는 '답'을 가져오지 못했다. 그녀는 '흐름'을 지키지도 못했다. 그녀는 '상태'가 되지도, '과정'으로 남지도 못했다.
클라라 림은, 인류 최초로 두 개의 행성 사이에서 자신의 영혼을 완벽하게 '소거'한 존재가 되었다.
아나톨리는 텅 빈 눈의 클라라를 끌어안았다. 화성의 유적이 던졌던 최초의 질문, '당신은 누구인가'는 영원히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되어, 두 행성 사이의 심연을 떠돌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