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운 채집 테마파크 2
지하 3층 메인터넌스 룸. 이곳은 파크의 심장이자 뇌였다. 수천 대의 서버가 뿜어내는 열기를 식히기 위해 거대한 냉각 팬들이 끊임없이 돌아갔다. 웅웅거리는 기계음은 거대한 짐승의 숨소리 같았다. 박민준은 그 소리가 좋았다. 인간의 감정이나 욕망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기계적 진동. 이곳에는 거짓말이 없었다. 오직 입력과 출력, 그리고 균형만이 존재했다.
민준의 작업대는 세 개의 모니터로 둘러싸여 있었다. 화면 가득 메운 그래프와 수치들은 파크 전체의 '운명 수지 타산'을 보여주었다. 파란색 선은 수집된 불행을, 붉은색 선은 지출된 행운을 나타냈다. 두 선은 언제나 완벽한 대칭을 이루며 0에 수렴해야 했다. 그것이 이 파크의 존재 이유이자, 민준이 지켜야 할 절대적인 법칙이었다. 0은 평화였다. 0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지난주부터 이상한 징후가 포착됐다. 아주 미세한,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균열이 데이터의 흐름 속에 섞여 있었다.
"또 이 계정이군."
민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ID: STARGAZER_77]. 김도윤이라는 남자의 계정이었다.
이 남자는 기이했다. 지난 30년간 단 한 번도 행운을 인출하지 않았다. 오직 불행만을 적립해왔다. 빗물, 진흙, 소음, 악취, 분실. 그는 파크가 제공하는 모든 종류의 불쾌함을 묵묵히 삼켰고, 그것을 거대한 에너지로 압축해두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작은 행운들로 그때그때 소진했을 포인트가, 그의 계정에는 임계점을 넘은 고밀도 에너지로 응축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가 이제 그 모든 에너지를 한 번의 거대한 행운으로 치환하려 한다는 점이었다.
시스템 시뮬레이터가 붉은색 경고등을 깜빡였다.
[예상 엔트로피 역류: 위험 수준]
일반적인 로또 1등 당첨에 필요한 에너지의 수십 배였다. 이 정도의 에너지가 한 지점에, 한 순간에 집중될 경우, 주변 시공간의 확률 분포가 심각하게 왜곡될 수 있었다. 민준은 모니터 속의 붉은 점을 응시했다. 중력 붕괴를 일으키기 직전의 블랙홀처럼, 주변의 모든 평범한 인과율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김도윤이 소원을 이루는 순간, 그 반작용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예측 불가능한 불운이 튀어 나갈 것이다. 누군가는 계단에서 구르고, 누군가는 차에 치이고, 누군가는 소중한 데이터를 날릴 것이다.
민준은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쓴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그는 과거의 기억을 꺼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붉은 경고등은 언제나 그날의 기억을 강제로 소환했다.
5년 전, 민준은 젊고 오만했다. 그는 이 시스템의 초기 설계에 참여한 천재 엔지니어였다. 그는 자신이 운명을 해킹했다고 믿었다.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자신에게 작은 행운들을 연속적으로 부여하는 알고리즘을 짰다. 신호등은 언제나 초록불이었고, 던지는 주사위는 언제나 6이 나왔으며, 연구 결과는 언제나 성공적이었다. 그는 자신이 확률의 신이라도 된 줄 알았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그리고 정확했다.
그가 모아둔 행운의 반동으로 연구실의 가스 밸브가 오작동을 일으켰다. 기계적 결함이 발생할 확률은 0.001%였다. 하지만 그 희박한 확률이, 그가 누린 수만 번의 행운에 대한 청구서가 되어 돌아왔다. 폭발은 없었지만, 유독 가스가 누출되었다.
민준은 그날따라 '운 좋게' 일찍 퇴근했다. 하지만 야근을 하던 그의 동료는 그러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민준이 발견한 것은 바닥에 쓰러진 동료와, 여전히 새어 나오고 있던 가스의 쉭쉭거리는 소리였다. 동료는 목숨을 건졌지만, 폐의 절반을 잃었다. 그는 평생 산소통을 달고 살아야 했다.
민준은 다치지 않았다.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그것이 그를 지옥으로 밀어 넣었다. 그는 자신의 운을 끌어다 쓴 대가로 타인의 미래를 태워버린 것이다. 동료의 거친 숨소리, 산소호흡기의 규칙적인 기계음. 그것은 민준이 평생 갚아도 갚지 못할 부채였다.
"이건 막아야 해."
민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바닥을 긁으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는 이 프로젝트, 코드명 '제니스(ZENITH)'를 승인한 리스크 관리팀을 찾아가야 했다. 숫자가 사람을 덮치기 전에.
한솔은 자신의 직업을 '미화원'이라고 정의했다. 남들이 화려한 파티를 벌이고 난 뒤, 바닥에 떨어진 깨진 유리 조각과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 럭키밸런스 파크에서 '행운'이라는 파티가 끝나면, 반드시 '불운'이라는 쓰레기가 남았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치워야 했다. 그것이 이 도시가 돌아가는 방식이었다.
그는 현장에 있었다. 42번 국도 교차로. 해가 지고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는 시간이었다. 매캐한 타이어 타는 냄새와 으깨진 과일의 단내가 뒤섞여 있었다.
조금 전, 한 고객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10년 동안 연락이 끊긴 첫사랑과 우연히 마주치게 해주세요.'
낭만적인 소원이다. 시스템은 이 소원을 이루기 위해 도시의 확률을 미세하게, 그러나 광범위하게 조작했다. 첫사랑의 퇴근 시간을 5분 늦추고, 신호등의 주기를 0.3초 앞당기고, 택시 배차 알고리즘을 비틀었다. 그 결과 두 사람은 극적으로 카페에서 재회했다. 눈물겨운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나비효과의 끝에서, 42번 국도를 달리던 화물 트럭의 타이어가 터졌다.
신호등 주기가 바뀐 탓에 급브레이크를 밟아야 했기 때문이다. 트럭은 중심을 잃고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적재함에 실려 있던 사과 상자들이 도로 위로 쏟아졌다. 붉은 사과들이 아스팔트 위를 굴렀다.
"팀장님, 이번 건은 꽤 깔끔한데요? 중상자도 없고."
형광 조끼를 입은 팀원이 빗자루질을 하며 말했다. 그는 익숙한 듯 사과들을 도로변으로 밀어냈다.
"운이 좋았지. 원래 계산대로라면 3중 추돌 사고가 났어야 했어."
한솔은 찌그러진 트럭 범퍼를 보며 담배를 물었다. 불은 붙이지 않았다. 이곳은 인화성 물질이 널려 있는 확률의 지뢰밭이었다. 그는 구두 발끝으로 으깨진 사과 하나를 건드렸다. 즙이 배어 나왔다. 누군가의 로맨스는 누군가의 폐차로 완성된다. 이것이 균형이다. 이것이 밴스 박사가 말한 '우주의 정의'였다.
서지혜 카운슬러가 보낸 소원 명세서를 볼 때마다 한솔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삼켰다. 그녀는 소원의 아름다움과 고객의 만족도만 신경 썼다. 그 소원이 현실 세계에 어떤 파열음을 내는지, 얼마나 지저분한 자국을 남기는지 그녀는 모른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녀의 사무실은 깨끗하고 향기롭겠지. 여기 도로 위에서 나는 피 냄새와 기름 냄새는 맡을 일이 없겠지.
무전기가 울렸다.
"팀장님, 본사 복귀하셔야겠습니다. 엔지니어링 팀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솔은 한숨을 내쉬었다. 박민준이다. 그 고지식한 기계주의자. 한솔은 으깨진 사과를 뒤로하고 차에 올랐다.
리스크 관리팀 사무실은 전쟁터 지휘통제실 같았다. 벽면 가득한 스크린에는 파크 각 구역의 CCTV 화면과 사고 발생 현황이 실시간으로 떴다. 민준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한 팀장님."
민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날이 서 있었다.
"바쁩니다. 3번 구역 회전목마 고장 건입니까?"
한솔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겉옷을 벗었다. 옷에서 도로의 먼지 냄새가 났다.
"아니요. 김도윤 씨 건입니다. 이대로 진행하면 위험합니다. 엔트로피 역류가 발생할 수 있어요. 시뮬레이션 결과 보셨습니까?"
한솔이 마침내 고개를 돌려 민준을 보았다. 민준의 눈은 맑았지만, 한솔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수치상으로는 허용 범위 내입니다. 시스템은 견딜 수 있어요."
"평균값일 뿐입니다! 국지적인 확률 왜곡은 계산에 포함되지 않았어요. 누군가 다칠 수 있습니다. 운 나쁜 누군가가 계단에서 구르거나, 멀쩡하던 차가 급발진할 수 있다고요. 오늘 42번 국도 사고처럼 말입니다."
한솔의 눈썹이 꿈틀했다.
"박 엔지니어님."
한솔이 의자를 돌려 민준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우리는 불행을 없애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관리하는 사람들이지. 김도윤 고객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그가 모아온 포인트는 30년 치의 불운에 해당해요. 우리는 계약을 이행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의무 때문에 무고한 사람이 피해를 본다면요? 그게 공정한 거래입니까?"
"그게 시스템입니다. 누군가는 비를 맞아야 누군가가 햇볕을 쬡니다. 당신도 알잖습니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거. 우리는 그저 비가 내릴 때 홍수가 나지 않도록, 빗물을 하수구로 흘려보내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하지만 이번 건은 빗물이 아니라 해일입니다."
민준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테이블 위에 데이터를 띄운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김도윤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순간, 반경 5km 내의 확률 상수가 요동칠 겁니다. 단순한 사고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한솔은 태블릿을 내려다보았다. 붉은색 그래프. 그가 가장 싫어하는 색이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민준이 말하지 않아도, 그의 직감은 경고음을 울리고 있었다. 김도윤의 소원은 도시의 기반 시설을 건드릴 수도 있었다. 상수도관 파열, 전력망 과부하, 통신 장애.
하지만 상부는 이미 승인했다. 파크의 수익과 명성을 위해서였다. 김도윤의 성공 사례는 파크의 전설이 될 테니까.
"이미 상부 결재는 끝났습니다. 내일 저녁 8시, 김도윤의 소원은 집행됩니다. 가서 기계나 점검하세요. 서버가 다운되지 않게."
"당신은 청소부입니까, 아니면 공범입니까?"
민준의 말에 한솔의 표정이 굳었다.
"나가."
민준은 잠시 한솔을 노려보다가, 태블릿을 챙겨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무겁게 울렸다.
한솔은 빈 사무실에 홀로 남았다. 그는 서랍을 열어 낡은 지포 라이터를 꺼냈다.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금속성 소리가 적막한 공간을 채웠다.
팅, 팅, 팅.
그는 알고 있었다. 민준의 말이 옳다는 것을. 하지만 옳음만으로는 세상을 운영할 수 없다. 누군가는 더러운 손으로 배수구를 뚫어야 한다. 그래야 물이 넘치지 않으니까. 그는 자신이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정의가 '최악을 막는 차악'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번 '차악'의 대가는 너무 커 보였다.
민준은 다시 지하로 내려왔다. 하지만 작업대에 앉지 않았다. 그는 서버실의 좁은 통로를 서성였다. 냉각 팬의 소음이 전보다 더 크게 들렸다. 마치 그를 비난하는 아우성 같았다.
공식적인 방법은 막혔다. 리스크 관리팀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시스템의 룰을 깨는 것.
민준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날아다녔다. 그는 보안 프로토콜을 우회하기 시작했다. 그는 해커가 아니었지만, 이 시스템을 설계한 사람 중 하나였다. 어머니의 자궁 안을 들여다보듯, 그는 시스템의 가장 깊고 은밀한 곳으로 들어갔다.
목표는 '소원 성취 센터'의 데이터베이스.
그리고 담당 카운슬러, 서지혜.
민준은 그녀를 직접 본 적이 없었다. 사내 메신저의 프로필 사진으로만 알 뿐이었다. 단정한 인상의 여자. 그녀는 자신이 설계한 소원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숫자가 아니라 서사에 집중하는 사람이니까.
민준은 파일을 하나 생성했다.
[Project_Icarus_Risk_Assessment.pdf].
그 안에는 시뮬레이션 결과와, 과거 가스 누출 사고의 기록, 그리고 김도윤의 소원이 불러올 잠재적 재앙의 시나리오를 담았다.
[수신: 서지혜 카운슬러]
[제목: 프로젝트 제니스의 숨겨진 비용]
[내용: 당신이 설계한 소원은 폭탄입니다. 이 파일을 읽어주십시오. 경고라고 생각지는 말아주세요. 간청입니다. 당신의 고객이 지불한 대가로, 다른 누군가가 빚을 지게 됩니다.]
전송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이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는 회사 규정을 위반하는 것이다. 해고당할 수도 있고, 법적 책임을 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5년 전, 병상에 누워 있던 동료의 눈빛이 떠올랐다. 원망도 분노도 없이, 그저 힘겹게 숨을 쉬던 그 눈빛.
"이번에는... 내가 갚을 차례야."
민준은 엔터키를 눌렀다.
[전송 완료]
화면에 뜬 짧은 메시지를 보며, 그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기계적인 웅웅거림 속에서, 그의 심장 소리만이 불규칙한 박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주사위가 멈출 때 어떤 숫자가 나오느냐였다. 그리고 그 숫자가 6이 아니기를, 민준은 간절히 빌었다.
(3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