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운 채집 테마파크 3
상담실의 조명은 언제나 따뜻한 호박색이었다. 벽에는 모네의 수련 복제품이 걸려 있고, 공기 중에는 은은한 라벤더 향이 감돌았다. 모든 것이 고객의 경계심을 허물기 위한 장치였다. 하지만 오늘 서지혜에게 그 조명은 취조실의 백열등처럼 날카롭게 느껴졌다. 인공적인 라벤더 향은 역겨웠다.
그녀의 모니터에는 세 개의 창이 떠 있었다. 김도윤의 소원 설계도, 박민준이 보낸 경고 파일, 그리고 한솔의 수정 제안.
지혜는 김도윤을 기억했다. 아니, 잊을 수 없었다. 그는 이곳을 찾는 수만 명의 고객들과 달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과'를 원했다. 돈, 사랑, 합격, 복수. 그들의 욕망은 구체적이고 세속적이었으며,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 우월감을 갈망했다. 하지만 도윤은 '증명'을 원했다.
그는 전직 천체물리학자였다. 젊은 시절, 그는 외계 지성체의 신호를 찾는 SETI 프로젝트의 유망주였다. 하지만 예산 삭감과 대중의 무관심, 그리고 결정적인 관측 순간마다 발생한 원인 모를 장비 고장들이 겹치며 그의 연구는 좌초되었다. 그는 자신이 운이 없어서 실패했다고 믿었다. 아니, 우주가 자신을 침묵시키려 한다고 믿었다.
"제가 원하는 건 로또가 아닙니다."
첫 상담 때 그가 했던 말이다. 그의 눈은 깊고 고요했다. 욕망보다는 신앙에 가까운 눈빛이었다.
"증명입니다. 우주 어딘가에 누군가 있다는 증명. 그것을 듣기 위해 저는 제 모든 운을 바꿀 겁니다. 제 인생의 모든 불운을 연료로 태워서, 단 한 순간의 완벽한 수신 감도를 만들고 싶습니다."
지혜는 그 절박함에 매료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동원해 소원을 설계했다. 전 세계 전파 망원경의 가동 스케줄, 대기권의 전리층 상태, 우주 배경 복사의 미세한 떨림까지 고려한 완벽한 알고리즘이었다. 그것은 소원이라기보다 하나의 예술 작품에 가까웠다. 그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단순히 불행을 처리하는 상담사가 아니라, 누군가의 운명을 건축하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민준의 데이터는 말하고 있었다. 그 완벽함이 폭탄이라고. 그녀의 예술이 누군가를 해칠 것이라고.
똑똑.
노크 소리가 정적을 깼다. 문이 열리고 김도윤이 들어왔다. 그는 여전히 낡은 트렌치코트 차림이었다. 어깨가 젖어 있었다. 그에게서 비 냄새와 젖은 흙 냄새가 났다.
"준비는 다 되었습니까, 카운슬러님?"
지혜는 마른침을 삼켰다. 목구멍이 까끌거렸다. 그녀는 진실을 말해야 했다.
"고객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녀는 모니터를 돌려 민준의 시뮬레이션을 보여주었다. 붉게 물든 확률 분포도. 지도 위에 퍼져나가는 검은 얼룩들.
"고객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순간, 그 반작용으로 인해 파크 주변의 전력망이 붕괴될 수 있습니다. 병원의 인공호흡기가 멈출 수도 있고, 교차로의 신호등이 오작동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도윤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화면을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에 붉은 그래프가 비쳤다. 30년을 기다려온 순간이 눈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서, 취소하라는 겁니까? 제 30년은 없던 일이 되는 겁니까?"
"아니요. 수정을 제안합니다."
지혜는 떨리는 손으로 키보드를 눌러 한솔의 제안을 바탕으로 재설계한 차트를 띄웠다.
"성공 확률을 99.9%에서 51%로 낮추는 겁니다."
도윤의 눈썹이 꿈틀했다.
"대신 남는 에너지를 이용해 반작용을 아주 얇고 넓게 퍼뜨릴 수 있습니다. 거대한 폭발 대신, 도시 전체의 사람들이 잠시 휴대폰 신호가 끊기거나, 컵을 깨뜨리는 정도의 불운으로 막을 수 있습니다. 아무도 죽지 않습니다. 아무도 다치지 않습니다."
"51퍼센트..."
도윤이 낮게 읊조렸다. 그는 수십 년을 기다렸다. 확실한 성공을 위해 비를 맞고, 진흙탕을 구르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동전 던지기를 하라니.
"제 평생의 노력이, 고작 반반의 확률밖에 안 된다는 겁니까?"
도윤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균열이 일었다. 깊은 슬픔이었다. 벼랑 끝에 선 사람의 간절한 목소리였다.
지혜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더 이상 시스템의 대변인이 아니었다. 한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를 설득해야 했다.
"고객님. 고객님이 찾고자 하는 건 외계의 지성체, 즉 '타인의 존재'잖아요. 이 우주에 우리만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하셨죠."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증명을 위해, 지금 여기 지구에 있는 이웃들을 위험에 빠뜨린다면... 그 발견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연결을 끊어버리는 꼴이 됩니다. 그건 모순이지 않을까요...?"
도윤은 침묵했다. 긴 침묵이었다. 상담실 안의 공기청정기 돌아가는 소리만이 들렸다.
웅, 웅, 웅.
그는 주머니에서 그 낡은 수첩을 꺼냈다. 별자리와 수식이 적힌 종이를, 너덜너덜해진 가장자리를 어루만졌다. 그 수첩 속에 갇혀 있던 지난 시간들과 작별 인사를 하는 듯했다. 눅눅한 양말의 감촉, 사람들의 비웃음, 외로움. 그 모든 것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51퍼센트라..."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서 광기가 사라지고, 대신 기이한 평온함이 들어찼다.
"사실, 과학에서 50퍼센트 이상의 확률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합니다."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렇게 합시다. 어차피 우주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요. 완벽한 건 없습니다. 신도 주사위 놀이를 한다지요."
지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리가 풀릴 것 같았다. 그녀는 빠르게 코드를 수정했다. '집중'에서 '분산'으로. '확정'에서 '가능성'으로. 바뀐 결과물은 이전보다 덜 완벽했지만, 훨씬 더 인간적인 설계였다. 그녀는 엔터키를 눌렀다. 수정된 소원이 시스템에 입력되었다.
[Project Zenith: Modified. Probability 51%]
파크에서 차로 3시간 떨어진 산 정상의 개인 관측소. 도윤은 혼자였다. 도시의 불빛이 닿지 않는 곳. 어둠이 짙을수록 별은 더 선명해진다. 녹슨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돔 천장이 열렸다. 그가 평생을 닦고 조여온 낡은 전파 망원경이, 거대한 귀가 되어 밤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오후 8시. 약속된 시간이다.
도윤은 헤드폰을 썼다. 치이익, 하는 잡음이 고막을 채웠다. 우주의 숨소리. 태초의 폭발이 남긴 잔향. 그는 눈을 감았다.
'시작됐군.'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웅장한 진동이나 빛은 없었다. 다만 공기의 질감이 미묘하게 변했다. 확률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그를 감쌌다.
그 시각, 도시에서는 기묘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퇴근하던 직장인의 구두 굽이 툭 부러졌다. 카페의 와이파이가 동시에 먹통이 되어 손님들이 웅성거렸다. 뉴스 앵커가 생방송 중에 혀를 씹어 발음이 샜다. 엘리베이터가 1층이 아닌 2층에 멈췄다. 캔 음료의 고리가 따기도 전에 떨어져 나갔다.
한솔은 사무실에서 수백 개의 스크린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려했던 대정전은 없었다. 수도관 파열도 없었다. 다만 도시 전체의 불쾌지수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었다.
"성공이군."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넥타이를 풀었다. 완벽한 방어는 아니었지만, 훌륭한 타협이었다.
지하의 민준 역시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래프의 붉은 선이 임계점을 넘지 않고 완만하게 퍼져나가는 것을 보았다. 윤리적이고 얇은 불운이 도시를 부드럽게 감쌌다. 세상 전체가 잠시 재채기를 하는 것 같았다. 약간의 불쾌감. 간지러움.
산 정상의 도윤은 집중했다.
51퍼센트. 그것은 그가 가진 모든 불행을 태워 만든 기회의 창이었다. 아주 좁고, 위태로운 창.
치이익... 치익...
잡음 속에 무언가 있는가? 아니, 저것은 그저 무작위적인 전파인가?
그는 주파수 다이얼을 미세하게 돌렸다. 손끝이 떨렸다. 심장이 갈비뼈를 때렸다. 30년의 기다림이 이 손끝에 달려 있었다.
뚜.
숨이 멈췄다.
단 한 번의 비프음. 자연적인 전파와는 달랐다. 펄사의 규칙적인 회전음도 아니었다. 그것은 의도를 가진 소리였다. 인공적인 날카로움.
뚜. 뚜.
신호는 미약했다. 그것은 100광년 너머에서 누군가 보낸 안부 인사일 수도 있고, 그저 죽어가는 위성의 마지막 비명일 수도 있었다. 명확한 메시지는 아니었다. "우리가 여기 있다"는 선명한 문장도 아니었다. 수학적 패턴도, 그림도 아니었다. 그저 짧고 희미한 박동.
하지만 도윤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는 그 짧은 신호 속에서 광대한 우주의 고독을 보았다. 그리고 그 고독을 건너오려는 누군가의, 자신과 똑같은 처지의 존재가 보내는 의지를 느꼈다. 저 너머에도 누군가 귀를 기울이고 있다. 누군가 소리치고 있다.
신호는 3초 만에 사라졌다. 다시 영원한 잡음이 돌아왔다.
도윤은 헤드폰을 벗지 못했다. 망원경을 건드릴 수도 없없었다. 그는 그 자리에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뺨을 타고 턱으로 떨어졌다. 슬퍼서가 아니었다. 벅차올라서도 아니었다. 그저 확인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미치지 않았음을. 자신의 평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빗물에 젖은 수천 번의 날들이, 이 3초를 위해 존재했음을.
그는 51퍼센트의 확률 싸움에서 이겼다. 아니, 어쩌면 진 것일 수도 있다. 저 신호가 진짜인지 착각인지, 기계적 오류인지 아무도 증명해줄 수 없으니까. 하지만 상관없었다. 관측자는 관측하는 순간 존재한다. 그는 들었다. 그것이면 되었다. 그는 우주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 에필로그
사건이 있고 일주일이 지났다. 럭키밸런스 파크는 여전히 성업 중이다. 회전목마는 돌아가고, 사람들은 여전히 비를 맞으며 웃는다.
이윤아는 병실에 있었다. 수현의 수술은 끝났다. 기적 같은 완치는 아니었다. 드라마틱한 회복도 없었다. 의사는 차트를 보며 말했다.
"경과가 생각보다 좋습니다. 관리를 잘하면 일상생활이 가능할 겁니다. 물론 평생 약을 먹어야겠지만요."
90퍼센트의 성공은 아니었지만, 0퍼센트의 절망도 아니었다. 윤아는 그것이 자신의 불행 덕분이 아니라, 의사의 실력과 동생의 의지 때문이라고 믿기로 했다. 아니, 믿고 싶었다. 그녀는 더 이상 파크의 비를 맞지 않는다. 대신 정시에 퇴근하여 동생에게 줄 과일을 산다.
그녀는 병원 로비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았다.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눌렀다. 덜컹. 종이컵이 나오고 뜨거운 커피가 담겼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때, 급하게 뛰어가던 누군가가 윤아의 팔을 툭 쳤다.
"앗!"
커피가 출렁이며 흰 셔츠에 쏟아졌다. 뜨거움과 함께 갈색 얼룩이 흉하게 번졌다.
"죄송합니다! 제가 급해서..."
남자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고 멀어졌다.
윤아는 젖은 셔츠를 내려다보았다. 화끈거리는 피부. 축축한 옷감. 예전 같았으면 '아, 포인트가 쌓였네.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커피 얼룩을 보며 동생의 심장 박동수를 계산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뜨겁네. 빨래하기 귀찮겠네. 아깝다.'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피식 웃었다. 불행은 그저 불행일 뿐이다. 교환권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비용이지, 삶의 목적이 아니다. 얼룩은 지우면 된다. 자국은 남겠지만, 그것 또한 삶의 무늬다.
그녀는 병원 밖으로 나왔다. 밤공기가 시원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도시의 불빛 때문에 별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저 너머 어딘가에 김도윤이 찾던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그 희미한 박동이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그날 밤, 도시는 평온했다.
박민준은 야근을 마치고 편의점 앞 벤치에서 맥주 한 캔을 땄다. 그는 이제 시스템 로그를 보지 않았다. 대신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구경했다. 그들의 얼굴에 스치는 작은 기쁨과 슬픔이, 어떤 수식보다 복잡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한솔은 도로 통제 해제 명령을 내리고, 팀원들과 함께 국밥을 먹으러 갔다. 그는 깍두기 국물을 식탁에 흘렸지만, 화내지 않고 휴지로 닦아냈다. "오늘은 운수가 나쁘네."라고 웃으며 말했다.
서지혜는 새로운 고객의 상담 일지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녀의 모니터 옆에는 '51%'라고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그녀는 이제 완벽한 소원을 설계하지 않는다. 대신, 감당할 수 있는 소원을 설계한다.
그리고 산 정상의 관측소에서는 한 남자가 텅 빈 우주를 향해 조용히 미소 짓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비를 맞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제 맑은 날을 즐길 것이다.
별똥별 하나가 길게 꼬리를 그리며 떨어졌다.
누군가는 그것을 보며 소원을 빌었고, 누군가는 보지 못했고, 누군가는 그것이 인공위성의 잔해라고 생각했다. 행운과 불운은 그렇게, 예고 없이, 공평하게 엇갈리며 우리 머리 위를 지나갔다.
우주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제 그 침묵 속에 서로가 있음을 안다. 커피 얼룩처럼 사소하고, 별똥별처럼 찰나인 삶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불운을 나누어 짊어지고, 서로의 행운을 기뻐하며, 그렇게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걸어간다. 51퍼센트의 확신을 안고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