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운 채집 테마파크 1
우주는 정밀하다. 하지만 공평하지는 않다.
2077년, 인류가 '행운 총량 보존의 법칙(The Law of Conservation of Fortune)'을 증명해 냈을 때, 세상은 환호 대신 깊은 침묵에 잠겼다. 새로운 찾아낸 법칙은 뉴턴의 운동 법칙이나 열역학 법칙과 같은 위상으로 우리 삶을 옭아매고 있었다. 연구 결과는 명료했다. 닫힌계 안에서 행운의 총량은 일정하다. 생성되지도, 소멸하지도 않는다. 오직 이동하고, 형태를 바꾸며, 치환될 뿐이다.
이 발견은 희망을 앗아갔다. 누군가의 로또 당첨은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실직이거나, 혹은 당첨자 자신이 5년 뒤 겪게 될 희귀병으로 교환되었다. 우리는 그것을 '운명적 등가교환'이라 불렀다. 질량은 보존된다. 에너지도 보존된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운명조차 차가운 수식 아래 보존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전까지 행운은 신의 축복이거나 우연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법칙이 증명된 이후, 행운은 빚이 되었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횡재는 채무 독촉장보다 더 무서운 것이 되었다. 이자율과 만기를 알 수 없는, 언젠가 반드시 가장 소중한 것을 앗아감으로써 상환해야 할 부채. 사람들은 승진 소식에 불안해했고, 우연히 주운 지폐를 보며 전율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기뻐하는 대신, 이 아이가 훗날 겪어야 할 불행의 총량을 계산하며 울었다.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가 문명을 잠식하던 그 무렵, '럭키밸런스 파크'가 문을 열었다.
설립자 엘리엇 밴스는 인간의 공포를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그는 파크를 거대한 정유 공장처럼 설계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안전하게 통제된 불운을 겪는다. 눅눅한 양말, 놓친 버스, 자판기가 먹어버린 동전, 셔츠에 쏟아진 커피. 그렇게 정제되고 규격화된 '음의 운명'을 선불로 지불함으로써, 그들은 미래에 닥쳐올 거대한 재앙을 예방하거나, 혹은 안전하고 깨끗한 행운을 구매할 권리를 얻는다.
이곳은 불행을 팔지 않는다. 그로 인한 안심을 판다. 우연이라는 야수를 길들여, 예측 가능한 수치로 가두는 곳. 그리고 이 거대한 균형의 수레바퀴 아래, 이윤아가 있었다. 그녀는 매일 자신의 하루를 저울 위에 올리며, 삶의 무게를 가늠하고 있었다.
오른발이 젖어 들어가는 감각은 묘하게 불쾌하다. 발가락 사이로 차갑고 미지근한 물이 스며들 때, 섬유 조직이 피부에 달라붙어 마찰을 일으킬 때, 인간의 신경은 곤두서고 기분은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이윤아는 그 미세한 불쾌함을 사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불쾌함이 가져다줄 대가를, 그 숫자를 사랑했다.
"장마철 산책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곳의 비는 차갑고, 바닥은 미끄럽습니다. 부디 조심하지 마십시오."
윤아는 매뉴얼에 적힌 인사말을 건넸다. 그녀의 목소리는 훈련된 톤으로 밝았지만, 눈 밑에는 짙은 피로가 그늘져 있었다. 그녀가 담당하는 '장마철 산책로'는 파크 내 B 구역, 일명 '일상적 짜증' 섹션에서 가장 회전율이 좋은 어트랙션이었다.
구조는 단순하다. 500미터 남짓한 산책로 천장에는 수백 개의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어 있다. 바닥은 배수가 잘 되지 않는 특수 보도블록으로 포장되어, 곳곳에 교묘한 물웅덩이를 형성한다. 이용객은 이곳을 30분간 걸어야 한다. 우산이 지급되지만, 그 우산은 살이 하나 부러져 있거나, 천에 미세한 구멍이 뚫려 있어 빗물을 완전히 막아주지 못한다.
사람들은 돈을 내고 이곳에 들어와 걷는다. 그리고 젖는다. 젖은 옷이 살에 감기는 찝찝함, 신발 속에서 나는 질척이는 소리, 안경에 맺힌 물방울 때문에 흐려지는 시야. 이 모든 감각적 불쾌함은 손목에 찬 '엔트로피 밴드'를 통해 실시간으로 수치화된다.
윤아는 제어실 유리창 너머로 걷고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중년의 샐러리맨, 입시를 앞둔 수험생, 연인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일그러져 있었다. 누군가는 웅덩이를 밟고 욕설을 내뱉었고, 누군가는 젖은 어깨를 털며 한숨을 쉬었다. 윤아는 모니터에 뜨는 수치를 확인했다.
[고객 ID: 89044 / 스트레스 지수: 45 / 적립 엔트로피: 120 P]
그들의 짜증은 곧 화폐였다. 그들은 여기서 120포인트어치의 불운을 겪음으로써, 내일 있을 프레젠테이션에서 마이크가 고장 나지 않을 확률, 혹은 버스가 제시간에 도착할 확률을 샀다. 현대인에게 있어 가장 합리적인 보험이었다.
영업 종료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지막 입장객이 젖은 등을 보이며 출구로 사라졌다. 윤아는 안내 방송을 송출하고 조명을 절반으로 줄였다. 스프링클러가 멈추자, 산책로에는 인공적인 빗소리 대신 고요한 적막만이 남았다. 물 냄새와 소독약 냄새, 그리고 젖은 흙냄새가 뒤섞인 묘한 향기가 공간을 채웠다.
윤아는 퇴근 준비를 하는 대신, 직원용 라커룸에서 자신의 밴드를 꺼내 손목에 찼다. 그녀의 일과는 이제부터가 진짜였다.
[이윤아 (직원) / 현재 누적: 89,450 P]
[목표: 이수현 님의 급성 심근 확장증 수술 성공 확률 보정 (필요: 150,000 P)]
아직 멀었다. 수현의 심장은 시계태엽이 녹슨 장난감처럼 느리고 불규칙하게 뛰었다. 현대 의학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운명이라는 변수 앞에서는 여전히 무력했다. 담당 의사는 수술 성공 확률을 40퍼센트라고 말했다. 동전 던지기보다 못한 확률. 그 나머지 60퍼센트의 여백에는 '운이 나쁘면'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윤아는 그 확률을 90퍼센트까지 끌어올려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불행이, 더 많은 짜증과 억울함과 미세한 고통이 필요했다. 파크 규정상 직원은 업무 외 시간에 시설을 이용하여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었다. 이 회사가 제공하는 유일하고도 최고인 복지였다.
윤아는 우산을 챙기지 않고 산책로로 들어섰다. 제어판을 조작해 강우 강도를 '최대'로 설정했다.
쏴아아아.
차가운 인공비가 정수리를 때렸다. 순식간에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었다. 윤아는 일부러 보폭을 넓혀 걸었다. 웅덩이가 보일 때마다 피해 가지 않고 그 한가운데를 밟았다. 흙탕물이 튀어 유니폼 바지단을 적셨다. 신발 속으로 차가운 물이 스며들었다. 발가락이 젖는 그 끔찍한 감각. 살이 불어 터지는 느낌.
그녀는 오늘 점심에 샌드위치를 먹다가 혀를 깨물었다. 탈의실에서는 사물함 모서리에 정강이를 찧어 시퍼런 멍이 들었다. 출근길에는 눈앞에서 지하철 문이 닫혔다. 그 모든 '재수 없는' 순간들이 그녀의 밴드에 차곡차곡 쌓였다.
"더... 더 필요해."
윤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감기에 걸린다면, 열이 오르고 기침이 난다면, 그것 또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고통은 환전 가능한 자산이다. 그녀는 자신의 면역 체계가 무너지는 것을 오히려 반겼다.
그때, 인기척이 느껴졌다.
윤아는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 출입 금지 띠 너머, 산책로 입구에 누군가 서 있었다. 영업이 끝난 파크에, 그것도 직원이 혼자 비를 맞고 있는 이 기이한 현장에 나타난 불청객.
낡은 트렌치코트를 입은 남자였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어 얼굴은 그늘져 있었다. 그는 우산을 들고 있지 않았다. 빗줄기가 그의 코트 위로 쏟아져 내렸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고 윤아를, 혹은 윤아가 서 있는 웅덩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김도윤이었다.
윤아는 그를 알고 있었다. VIP들이 비싼 요금을 내고 '가상 불운 체험(VR)'을 할 때, 굳이 가장 저렴한 일반 입장권을 끊고 직접 비를 맞으러 오는 사람이었다. 그는 어떤 어트랙션에서도 비명을 지르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견뎠다. 수행을 하는 수도승처럼.
"영업 끝났습니다, 고객님."
윤아가 소리쳤다. 빗소리에 묻혀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그녀는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그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서 본 그는 생각보다 더 지쳐 보였다. 젖은 어깨에서 곰팡내와 비슷한, 오래된 종이 냄새가 났다.
"알고 있습니다."
남자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빗물 섞인 공기를 가르고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는 기묘한 울림이 있었다.
"그냥, 비 냄새를 맡고 싶어서요. 이곳의 비에서는 알루미늄 냄새가 나거든요."
도윤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윤아는 제지하려 했으나, 눈빛을 보고 멈칫했다. 그의 눈은 너무 많은 것이 담겨 있어 혼탁해 보였다. 깊은 우물 바닥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눈. 그 안에는 갈망과 체념이 기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도윤이 윤아 옆에 섰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인공비를 맞았다. 상황은 우스꽝스러웠지만, 분위기는 엄숙했다.
"직원분은 왜 집에 가지 않습니까?"
도윤이 물었다. 시선은 여전히 바닥의 웅덩이에 고정된 채였다.
"돈을 버는 중이에요. 야근수당 대신 운을 챙기거든요."
윤아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자신의 처지를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고객님은요? 왜 이런 짓을 하세요?"
"저도... 빚을 갚는 중입니다. 아주 오래 전의 빚이죠."
"빚이요?"
"우주에게 진 빚입니다."
도윤은 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 가죽 표지는 이미 물을 먹어 쭈글쭈글해져 있었다. 그는 개의치 않고 수첩을 펼쳤다. 빗물에 젖어 잉크가 번지는 종이에는 윤아가 이해할 수 없는 기호들이 가득했다. 복잡한 수식, 좌표, 그리고 별자리 그림들. 항해일지 같았다. 혹은 유서 같기도 했다.
"충분히 모으셨나요?"
윤아가 홀린 듯 물었다.
도윤은 수첩을 덮고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윤아를 보았다.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다.
"거의 다 되었습니다. 30년이 걸렸군요. 내일이면, 이 지루한 수집도 끝납니다."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윤아가 이곳에서 본 수만 명의 손님들이 짓던 표정과 달랐다. 욕망에 번들거리는 눈빛이 아니었다. 긴 순례를 끝내는 자의, 고통마저도 껴안은 자의 눈빛이었다.
"감기 조심하십시오. 아가씨의 불운이... 가치 있는 곳에 쓰이길 바랍니다."
도윤은 짧은 인사를 남기고 뒤돌아섰다. 빗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은 거대해 보이기도 했고,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로워 보이기도 했다. 윤아는 오랫동안 그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빗줄기가 점점 거세졌지만, 그녀는 추위를 잊었다. '가치 있는 곳'. 그 말이 가시처럼 마음에 박혔다.
병원의 공기는 달랐다. 파크의 공기가 축축하고 비릿했다면, 병원의 공기는 건조하고 날카로웠다. 소독약 냄새와 메마른 린넨 냄새. 언젠가 이곳은 생과 사가 교차하는 절박함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확률과 통계가 지배하는 또 다른 종류의 거래소였다.
윤아는 젖은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병실로 들어섰다. 1인실의 적막함. 침대 위에는 동생 수현이 누워 있었다. 창백한 피부 아래로 푸른 혈관이 비쳤다. 산소포화도 측정기가 규칙적인 기계음을 냈다. 삑, 삑, 삑. 언뜻 들으면 생명의 소리보다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을 계산하는 미터기 소리처럼 들렸다.
"누나?"
수현이 눈을 떴다. 몽롱한 눈빛이 윤아의 젖은 머리카락과 흙탕물 튄 바지를 훑었다.
"또 비 맞았어? 냄새 나."
"어, 우산을 잃어버려서. 운이 없네."
윤아는 애써 밝게 웃으며 거짓말을 했다. 익숙한 레퍼토리였다. 그녀는 젖은 외투를 벗어 구석에 놓고, 침대 옆 보조 의자에 앉았다. 밴드의 수치를 확인했다. 91,200 P. 오늘 하루에만 2,000포인트를 모았다. 혀를 깨물고, 정강이를 찧고, 감기 기운을 얻은 대가였다.
"오늘 의사 선생님 만났어?"
윤아가 물었다.
"응. 수술 날짜, 다음 달로 잡을 수 있대."
"그래? 잘됐네. 그때쯤이면 포인트 다 모을 수 있을 거야. 90퍼센트까지 맞출 수 있어. 걱정 마."
윤아는 수현의 손을 잡았다. 앙상한 손가락. 뼈마디가 도드라져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체온을 나누어주려 했지만, 비를 맞은 그녀의 손이 더 차가웠다. 수현이 움찔하며 손을 빼려 했다.
"누나."
"응?"
"그거 하지 마."
수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윤아는 멈칫했다.
"뭐를?"
"내 수술 확률 올리는 거. 누나의 불행을 팔아서 내 목숨 사는 거잖아. 싫어."
윤아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올 것이 왔다. 그녀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수현의 이불을 정리해 주었다.
"무슨 소리야. 이건 그냥... 보험 같은 거야. 남들 다 하는 건데 뭐."
"남들은 로또 당첨되려고 하거나 승진하려고 하지, 가족 목숨 담보로 안 해. 그리고 누나, 그거 알아?"
수현이 상체를 일으키려다 힘에 부쳐 다시 베개에 머리를 묻었다. 그는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나가 밖에서 넘어지고, 다치고, 비 맞고 올 때마다... 내 심장이 더 아파. 죄책감 때문에."
"수현아."
"누나가 불행해질수록 내가 건강해진다면, 난 평생 누나의 불행을 먹고사는 거잖아. 기생충처럼. 누나의 고통이 내 약이 되는 거잖아. 그런 몸으로 살아서 뭐 해? 평생 누나가 어디서 또 다치고 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살라고?"
윤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목구멍에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자신이 숭고한 희생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젖은 양말, 멍든 정강이, 놓친 버스, 사람들의 짜증을 받아내는 감정 노동. 이 모든 것이 사랑의 증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프면 네가 낫는다. 그녀에게 종교와도 같은 믿음이었다.
반면 동생에게 그것은 가장 무거운 저주였다. 타인의 불행을 연료로 태워 돌아가는 생명 유지 장치. 수현은 윤아가 일부러 넘어질 때마다, 마치 자신의 심장이 위로 쓰러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슴을 짓누르는 죄책감은 물리적으로 심장을 조여오고 있었다.
"그럼 어떡해?"
윤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냥 40퍼센트로 해. 반반이잖아. 살면 사는 거고, 죽으면 죽는 거야. 그게 내 운명인 거야. 억지로 바꾸려고 하지 마."
"어떻게 그래! 널 살릴 수 있는데! 내가 조금만 고생하면 되는데!"
"그 '조금'이 누나 인생 전부를 갉아먹고 있잖아!"
수현이 소리쳤다. 그 반동으로 기침이 터져 나왔다. 모니터의 그래프가 요동쳤다. 윤아는 황급히 간호사 호출 버튼을 누르려했지만, 수현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제발... 나를 빚쟁이로 만들지 마."
병실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기계음만이 삑, 삑, 계속되었다. 윤아는 수현의 손을 놓지 못하고, 그렇다고 꽉 잡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잡고 있었다.
그녀는 창밖을 보았다. 병원 창문에 빗방울이 들이치고 있었다. 아까 마주친 김도윤의 말이 떠올랐다.
'빚을 갚는 중입니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갚으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태어난 것 자체가 빚일지도 모른다. 윤아는 자신의 희생이 사랑이 아니라 폭력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동생의 영혼을 담보로 자신의 만족을 채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가능성을 마주했다.
윤아의 젖은 양말이 서서히 말라가고 있었지만, 발끝에 남은 한기는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손목에 채워진 밴드를 내려다보았다. 숫자가 반짝였다.
[91,200 P].
이 숫자는 누구의 고통인가. 그리고 이 숫자로 살 수 있는 행운은 과연 축복인가, 저주인가.
윤아는 답을 알지 못한 채, 지친 동생이 잠들 때까지 그 곁을 지켰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세상의 행운과 불운은 보이지 않는 저울 위에서 끊임없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지하 3층, 파크의 가장 깊은 곳에서는 또 다른 남자가 흔들리는 저울의 눈금을 응시하고 있었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