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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여행가쏭 Apr 15. 2018

나는 왜 결정장애일까?

아, 내가 선택하는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었구나


난 아무거나 상관없어
    
© nate_dumlao, 출처 Unsplash


사람들과 오늘 뭐 먹지? 얘기가 나오면 나는 항상 아무거나라고 답해왔었다. 까탈스럽지 않고 배려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동시에 내가 고른 메뉴가 별로라는 싫은 소리를 듣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다시 보니 배려보다는 남의 눈치를 보는 책임회피적인 행동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런데 습관이란 무서운 법. 어느새,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너무 어려운 사람이 되고 말았다.

아이의 육아용품을 준비하며 그 심각성을 깨달았는데, 아기욕조 하나를 구매하기 위해 하루 종일 검색만 하고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했다. 모두가 좋다고 하는 '국민'자가 붙은 것이 아닌 이상 누군의 동의가 있어야만 결정할 수 있었다. 이런 나를 마주하는 건 놀랍진 않았지만, 스스로 너무 답답했다. 퇴사를 하고, 앞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할 때에는 3개월째 고민만 하고 있는 나를 마주해야만 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다. 나름 인생을 편히 사는 방법이라 생각했던 결정장애가 내 인생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태도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다

고민만으로는 해결되는 게 없다. 
실행하며 생각하자


실행하는 사람이 되자고 스스로 되내었지만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그래, 실행이 중요한 거 나도 알지. 근데 어려운걸...' 처음엔 취향이 없는 게 문제인 줄 알았다. 근데 취향을 알려면 이것저것 시도를 해 봐야 하는데, 시도 자체를 머뭇거리고 있었다. 요즘에는 전공을 바꾸거나 이직을 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창업을 했다 실패한 것도 경험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도전을 할 수 있는지 물었더니, 그들은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나에게 꼭 맞는 옷을 찾으려면 여러 가지 옷을 입어봐야 하듯이. 불안하긴 해도, 어렵게 생각할 이유는 없다고 했다. 

너무나 공감하지만 정작 나는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다. 대학시절 실내디자인 쪽에 새로운 관심이 생겼을 때, 다전공을 해볼까 잠시 고민했으나 금방 접었다. 눈앞의 취업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에 다닐 때에도 다른 부서 업무를 해보고 싶었지만 기회를 만들지는 못했다. 주어진 일들을 묵묵히 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문득문득 내가 좋아하는 일을 만나길 기대했지만, 그것을 위해 했던 노력은 인터넷을 검색하고 책을 찾아 읽는 것뿐이었다. 한 번 선택한 것을 바꾸는 게 어려웠던 경험 때문일까? 나는 좋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듯했다. 나에게 필요한 말은 '실행이 중요해'가 아니라 '실패해도 돼'라는 말이었다.

실패해도 돼, 하다가 그만둬도 돼.
놀이하듯 시작해봐.

여행사진은 다시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된다


개인적으로 패키지여행보다는 자유여행을 좋아한다. 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친구와 함께 미국 여행을 하던 중 친구가 사정이 생겨 반나절 정도 혼자 여행을 했을 때였다. 지하철 역을 한정거장 잘못 내려 길을 찾기 위해 지도를 보며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다가오셨다. 어디를 찾고 있냐는 말에 가려는 음식점을 얘기했더니, 가는 길이라며 친절히 그곳으로 데려다주셨다. 헤어지기 전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맛집을 추천해 주시기도 했다. 


걸어가며 나눈 대화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분위기와 따뜻함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이후 여행을 할 때면 최대한 목적지를 줄이고, 발길 닿는 대로 그곳의 분위기를 느끼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실패해도 얻는 게 있고, 스스로 결정할 때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 내가 여행을 통해 배운 것이다. 문득, 일상이라고 다를까 싶었다.


아, 내가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선택하는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었구나 


결정장애가 모든 선택에 동의를 구하게 만들고, 나를 틀 안에 가두고 있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가장 쉽게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인 선택하는 즐거움을 놓치고 있었다니... 이러다간 내 인생이 패키지여행이 될 것만 같았다.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고 외치면서 가치관, 취향 등을 탐색하는 데에 시간을 보내왔는데 결정장애를 극복하는 것이 더 중요해 보였다. 한 발이라도 떼기 위해서 내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오늘 점심메뉴를 스스로 결정해 보는 일이었다. "결정장애야 이제 그만 안녕하자."






[다음편] 시작 전, 완벽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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