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직업이 아니다.
너는 꿈이 뭐야?
어렸을 적 내 꿈은 건축가였다. 자주 받던 그 질문에 당당하게 얘기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좋았다. 뭔가 멋져 보이는 거 같기도 했고, 질문을 한 어른들이 다 끄덕끄덕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뿌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꿈이 있었기에 열심히 공부했고, 자연스레 건축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혹시 다른 과는 생각이 없냐는 질문을 하시던 선생님도 계셨는데, 너무나 당연하게 '전 무조건 건축과요'라고 답하곤 했다. 학창 시절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 즉, 진로에 관한 고민을 깊이 해 보진 않았다. 너무나 굳게 믿고 있었다. 건축가가 되는 것이 나의 꿈일 거라고.
대학에 진학하고 보니, 건축가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가지고 온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물론, 일부는 그냥 점수에 맞춰 온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의심할 것 없이 전자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오래가진 못했다. '르꼬르뷔지에? 안도 다다오? 넌 누구를 좋아해?' '어? Space 잡지네 나 이거 좋아하는데' 대화를 하다 보니 내가 정말 이 분야에 관심이 있었나 싶었다.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친구들은, 좋아하는 분야이기에 관련 책이나 잡지를 읽어왔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건축가도 있다고 했다. 그동안 나는 말로만 건축가가 되고 싶다고 했을 뿐 그 분야를 깊게 탐구해 본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제야 건축가가 되는 것이 내 꿈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가 꿈이라는 틀로 나를 한계 짓고 있었던 것일까?
시간이 흘러 육아를 하며 다시 진로 고민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았다. '왜 건축가가 되고 싶었을까?' 중학교 시절 방송에 나왔던 신동엽의 러브하우스라는 프로그램이 시작이었던 듯했다. 저소득층 가정의 집을 수리해 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마지막에 완성된 집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좋았다. 특히나 자신의 방이 생겼다며 기뻐하던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면, 그것을 이뤄낸 건축가 아저씨가 무척이나 멋져 보였다. 이렇게 단순한 이유였다. 내가 건축가라는 직업을 꿈으로 갖게 된 것은.
누군가가 '꿈을 직업으로 한정 짓지 않는다면,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라고 물어봐 주었다면 '꿈을 심어 줄 수 있는 사람이요.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요.'라고 답했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울림을 주었던 건 [집을 고칠 수 있는] 건축가의 모습이 아닌 [누군가에게 꿈을 심어 줄 수 있는] 건축가의 모습이었으므로. 무엇이 되고 싶다고 느낄 때 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는 이유였다.
꿈=직업이 아니라는 틀을 깨고 나니
좀 더 넓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럼 누군가에게 꿈을 심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나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까?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 걸까? 무엇부터 해야 하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다 보니, 꿈이라는 목표를 섣부르게 단정 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가슴 뛰는 순간에 안테나를 세우고, 탐구하고 싶은 무언가를 만났을 때 흠뻑 빠져들어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꼭 한 가지일 필요는 없으며, 계속 바뀔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했다. 꿈이 없는 지금이 오히려 자유롭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조금씩 새로운 일을 가볍게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가능성은 열어둔 채로.
[다음편] 글을 쓰면 달라 보이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