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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여행가쏭 Apr 16. 2018

몸이 반응하는 순간

몸이 반응하는 순간에 안테나를 세우니, 나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너는 좋아하는 계절이 뭐야?

"음.. 나는 추운 걸 별로 안 좋아하니까 여름을 좋아하는 거 같아" 그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계절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여름이라니, 내가 나를 참 몰랐었구나 싶다. 다행인 건 지금은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9월 초의 계절을 좋아한다. 이걸 깨달은 건 5년 전쯤인데, 서늘해진 날씨에 바람이 불어오는 그 순간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설렘을 경험했다. 말로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몸이 반응하는 순간이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그때 느꼈던 감정에 대해 기록을 남겼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가을이 왔음이 느껴졌다. 예전 어학연수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서 일까. 일렁이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글로 남기니 그 감정은 더욱 선명해졌다. 그 이후 매년 같은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좋아하는 계절이 있다는 건 꽤나 행복한 일이었다. '생각'이 아닌 '감정'의 변화에 집중하니 알게 된 나의 취향이었다. 를 알아간다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었다.  

몸이 반응하는 순간에 안테나를 세우니,
나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내 감정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질투의 감정을 느끼거나 나도 모르게 미소 짓고 있는 순간. 좋아서 폴짝폴짝 뛰고 있는 순간. 왠지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 순간들을 들여다보았다. 침대에 누워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마시다가 기분이 너무 좋으면 다이어리를 꺼내 들고 그 순간의 느낌을 가감 없이 적어 내려갔다.

최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영화 라라랜드 음악을 배경으로 눈을 감고 춤을 추는 것이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나면 운동을 마쳤을 때와 같은, 아니 그 이상의 특별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평소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을 매일 반복하게 된 것이다. 내 감정에만 집중하니 일어난 작은 변화였다. 이런 순간들을 기록하다 보니 사람마다 그 포인트가 다르다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 다름 안에 나만의 특별함이 있을 것만 같았다.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들을 기록하니
내가 더 잘 들여다 보였다.


욕심 같아서는 이런 순간들의 공통분모를 찾고 싶었다. 김연아에게 피겨 스케이팅 같은 무언가가 내 안에도 있을 것만 같았다. 인생 전체에 걸쳐 집중할 수 있는 한 가지를 발견하고 싶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인생의 단 하나는 찾지 못했다. 좋아하는 것이 너무 많았다. 자주 바뀌기까지 했다. 그러다 문득 이것이 뭐가 문제일까 싶었다. 계속해서 살아있음을 느낄 수만 있다면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나이가 들면 젊은 시절의 열정과 호기심은 사라진다고 말한다. 나 또한 20대의 설렘은 다시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20대 초반 이후 그런 시기가 한동안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아있음을 느끼며 살고 있는 요즘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몸이 반응하는 순간이 얼마나 있었는지가 중요했다. 

호기심이 생긴 분야에 몰입하는 것. 순간순간 그것에 관한 정보를 흡수하기 위해 안테나를 세우고 정보를 흡수하는 것. 새로운 상황에 나를 노출시키는 것. 그것을 통해 성장하고 짜릿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 중요했다.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배우며 성장하는 사람은 언제나 생기가 있을 것이다. 그런 삶이라면 나이와 상관없이 설레는 삶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반복되는 일상,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
절실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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