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을 얻고 싶은 거라면 이미 해 본 사람에게 질문을 던져야 했다.
20개월 아이,
어린이집 보내는 게 좋을까?
아이가 20개월이 되던 어느 날, 대기를 걸어두었던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공석이 생겼고 원하면 아이를 보낼 수 있다고 했다. 1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던 터라 당황스러웠다. 한 주 뒤쯤 방문을 드리겠다고 하고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의견을 물었다. 누군가는 이제 보낼 때가 됐다고 했고, 누군가는 아직 이른 거 같다고 했다.
신기한 건 이 시기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친구들은 이제 보낼 때가 됐다고 했고, 좀 더 컸을 때 보낸 친구들은 아직 이른 거 같다고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선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싶은 법이니까. 아직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은 친구의 경우 '보내는 걸 추천해'라고 말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그 레스토랑 나는 안 가봤지만 정말 좋아'는 뭔가 어색하니까.
나는 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을까? 처음엔 그냥 궁금했던 것 같다. 어린이집을 보내면 잘 적응은 할 수 있을지. 집에서 답답해하던 것들은 해소가 되는지가 궁금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아이의 성향과 우리의 상황을 제일 잘 아는 것은 나다. 모든 선택에는 장단점이 있을 것이고, 우위를 비교해 결정해야 하는 건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더 알고 싶은 게 있는 거라면 좀 더 의견을 물어봐도 괜찮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내 생각을 들여다볼 차례였다.
진짜 그게 궁금한 건지
확신을 얻고 싶은 건지
생각해봐야 했다.
내가 해 온 대부분의 질문은 듣고 싶은 답을 듣기 위한 질문이 많았다. 마음은 이미 한 쪽으로 기울었는데, 용기가 나지 않을 때 누군가에게 질문을 했다. '응 그렇게 한 번 해봐'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해보지 않은 사람을 붙잡고 아무리 열심히 설명을 해봤자 그 사람은 긍정의 의견을 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건 그 사람이 나를 미워해서도, 나의 미래를 응원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그저 그 사람도 확신이 없을 뿐이었다.
나는 한때 좋은 회사에 들어가는 것만을 강조하셨던 아버지에게 서운함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좀 더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도록 왜 응원해 주시지 않은 걸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그게 최선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평생 회사원으로 살아오셨던 아버지에겐 그것이 본인이 아는 최선의 모습이었을 테니까. 무엇이 좋을 것 같냐고 묻는다면 본인이 아는 최선을 알려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새로운 도전을 응원해 줄 의견을 듣고 싶었던 내가 질문할 대상은 부모님이 아니었다. 내가 확신이 없을 때, 그것도 좋다는 말을 듣고 싶다면 그것을 해 본 사람을 만나야 했다. 해보지 않은 사람은 긍정의 의견을 주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저 불안해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며 질문을 해댔을 뿐이었다. 스스로 등 떠밀어 줄 용기는 없었으므로.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긍정의 의견을 듣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후에는 새로운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나는 조금 황당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이를테면 5년 뒤쯤 미국에 가서 6개월 살고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려면 신랑은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둬야 하고, 아이도 다니던 유치원을 그만둬야 할 것이다. 집은 어떻게 할 것이며, 돈은 누가 벌 것이며,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냥 꿈같은 일이라고 생각할 만큼.
그러나 조금만 더 주변을 둘러보면 부부가 세계 일주를 하는 사람들, 한 달 살기로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는 사람들과 같은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다음 주면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에 참석할 예정이다. 꿈같은 일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나의 작은 노력인 것이다. 이렇게 그것을 해 본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가능케 할 길이 보이기도 한다.
꼭 얼굴을 마주하고 만날 필요는 없다. 그 사람이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떤 일상을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가 있다. 내가 머릿속에서만 그리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용기가 생겼다. 내가 내 등을 떠밀어 주면 제일 좋겠지만, 그게 잘 되지 않는다면 대신 날 등 떠밀어 줄 사람을 만나야 했다.
확신을 얻고 싶은 거라면
이미 해 본 사람에게 질문을 던져야 했다
[다음편] 모방은 나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