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없는 걸까? 우선순위 문제일까?
너 왜 이렇게 바빠?
카톡 답장이 너무 늦다며 친구가 했던 말이었다. "그러게, 나 하는 것도 없이 왜 이렇게 바쁘지"라고 답장을 보내며 생각했다. 어제 뭘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왜 바쁘기만 한 걸까. 20개월 아이의 엄마로 산다는 것이 그랬다. 아이가 눈을 뜨면 출근, 잠이 들면 퇴근이었다. 육아를 하는 친구들의 단톡 방에는 저녁 9시쯤 되면 "나 오늘, 육퇴(육아퇴근)"라는 카톡이 올라왔다. 7시쯤 퇴근하는 친구도 있는 반면 새벽이 되어도 퇴근하지 못하는 친구도 있었다.
회사 다닐 때만 해도 퇴근 후의 삶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던 나였다. 바쁜 일만 없다면 칼퇴를 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기도 했다. 회사보다 가족이 우선순위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중요한 게 뭘까?'를 생각하며 우선순위 신념에 따라 행동하던 나였는데, 엄마가 되자 이 우선순위 법칙을 망각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나한테 중요한 게 무엇인지 물을 여유가 없었다.
남편이 퇴근하는 시간만 바라보며 시간이 빨리 가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 시간을 쓴 다기보다는 그저 흘려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을 허투루 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겉으로 보기엔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더 문제였다. TV를 보는 것도, 스마트폰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해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제야 '나는 왜 바쁜 걸까? 그게 정말 중요한 걸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보았다.
그래서 나에게 중요한 게 뭘까?
우선 가장 많은 시간을 쓰고 있는 것은 육아였다. 삼시 세끼 밥을 만들어 먹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지나가는 듯했다. 그러나 이건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내가 퇴사를 한 이유이기도 했으니까. 다만 '아이 키운다고 퇴사까지 했는데'라는 생각 때문에, 스스로에게 과한 잣대를 강요하고 있는 부분은 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좋은 엄마 타이틀을 갖고 싶어서 무리하게 했던 일들은 간소화하기로 한 것이다.
가장 큰 조정이 필요했던 것은 가사노동의 시간이었다. 티도 나지 않는데 끝도 없는 것이 집안일이라고 했던가? 그 말이 정답이었다. 집에 있으면 해야 할 일들이 계속 보였고, 손을 대기 시작하면 끝이 없었다. 집안일을 하느라 아이에게 휴대폰을 쥐여준 적도 많았다. '이게 그렇게 중요한 걸까?' 스스로에게 물어보니, 대답은 '아니요'였다. 평일에는 청소기, 설거지, 빨래만 하루 한 번 하기로 했다. 나머지는 주말에 몰아서 해도 충분했다.
집안일을 줄이니 여유가 조금 생겼다. 아이가 깨어 있을 때는 아이와 더 놀아주고, 낮잠을 잘 때는 온전히 나를 위해 쓰기로 했다. 일상이 무료하고 결핍이 느껴졌는데, 나를 위한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집안일 한두 개를 하며 흘려보냈던 시간을 철저히 나를 위해 쓰기 시작했다. 그냥 침대에 누워 영화를 볼 때도 있었지만 예전과는 달랐다.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시간의 주인이 된 느낌이었다.
뭐가 중요한지 먼저 생각한 후
시간을 쓰기로 했다
나를 위한 시간을 가졌고, 출산과 육아로 급격하게 변한 일상에 그제야 적응을 할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어?' '삶에서 어떤 게 중요해?' '무엇부터 하고 싶어?'와 같은 질문에 답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퇴사를 하고 육아를 하며 상황이 많이 변했다. 그런 만큼 지금 뭐가 중요한지 스스로에게 묻고 답을 했어야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그 질문을 회피해 왔던 것이다.
바쁘게 산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쉬운 일들을 찾아 하며 시간을 흘려보내면 그만이었다. 정작 중요한 일들은 '나 바빠서 그거 못해, 그럴 시간 없어'라는 이유로 스스로에게 핑계를 대고 미뤄 두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했으니까. 근데 뭐가 중요한지 스스로 묻고 답하고 나면 나에겐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걸 할 시간은 분명히 있었다. 없으면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일상이 바쁘기만 하고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면 무언가 놓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상황은 자주 바뀌고, 사람은 계속 성장하므로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게 뭘까?' 이 질문을 틈틈이 던지는 것이 중요했다.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우선순위의 조정이 잘못된 것뿐이었다
[다음편] 스무 살, 안경을 벗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