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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랑 Jul 25. 2018

<동화로 떠나는 내면 여행-일본동화읽기➀>

 



타인과의 관계로 아는 나의 불균형, 타인과의 관계로 회복하는 나의 균형

『불균형』(우오즈미 나오코 지음, 이경옥 옮김, 우리교육, 2004)



1. 균열의 조짐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하루하루가 알찬 일상 속에도 언제든지 균열의 조짐은 내재하고 있다.  일본 동화 『불균형』(우오즈미 나오코 지음, 이경옥 옮김, 최현묵 표지그림, 2004)에서의 주인공 소녀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이러한 균열 속에 내몰린다. 그때의 기분에 대해 소녀는 “정말이지 그 시절은 내 십사 년 팔 개월의 인생에서 가장 비참한 시간이었다. 두 번 다시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p15)”고 고백한다.




   『불균형』은 초등학교 5, 6학년 때 친구들 간의 틀어진 관계로 상처를 입은 소녀가 중학생이 되어 만난 직장인 젊은 여성과 또래 친구와의 관계를 통해 균형을 회복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2. 갑자기 찾아온 재난, 불균형의 시작
   5학년이 되어 친했던 친구들과 반이 달라지면서 외톨이가 된 주인공 소녀 ‘나’는 “한시라도 빨리 ‘친한 친구’를 만들고 싶(p16)”은 마음에 뒷자리에 앉은 “마르고 피부가 하얀 아이(p15)” 사토 유카리에게 살갑게 다가간다. 소녀에게는 “유카리가 얌전해 보였고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줄 것 같아 친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p16)”할 정도로 호감을 갖게 한 아이였다. 하지만 얌전하고 착하게만 보았던 유카리는 주인공 소녀를 공포 속으로 몰아간다. 이때『불균형』에서 주인공 소녀가 겪는 일은 ‘재난’이나 마찬가지다.
   갑자기 재난이 닥쳤을 때 사람은 이성을 잃고 속수무책이 된다.


따돌림을 당하는 건 아주 비참하다. 이 사실을 절대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이 상태로 그 애들이 싫증 낼 때까지 어떻게든 내버려 두려고 했다.
하지만 그 애들은 싫증 내지 않았다, 당연히.
상황이 점점 심각해졌다.
내가 혼자서 가만히 참고 있는 동안에, 유카리 일당뿐 아니라 반 여학생 전체가 나를 무시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불균형』, p20)


  이러한 상황은 6학년까지 이어진다. 소녀를 재난에서 구한 것은 ‘이사’이다. 소녀는 중학생이 되자 “이제 친구를 사귀지 않는 거다.(p23)”를 철칙으로 삼는다.
  초등학교 5, 6학년이라면 부모라고 하는 절대적인 울타리에서 벗어나 친구라고 하는 유대관계를 기반으로 주변에 대한, 학급에 대한, 학교에 대한, 이 세상에 대한 사고가 우주적인 범위로 비약적으로 확대되어 가는 시기이다. 같은 나이, 같은 학년, 같은 반 여러 친구들과의 관계망 속에 얽혀있는 소녀는 더 이상 친구를 거부하는 것을 통해 상처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소녀는 중학교에서 ‘입 없는 애’가 되어 하루하루를 이어가지만 저 깊숙한 내면에서는 균형을 상실하고 만다.
     
3. 불균형의 징후 현상들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도 소녀는 초등학교 때 겪은 따돌림으로 악몽에 시달리는데, 이를 통해 해소되지 못한 현실의 상처가 저 무의식 깊숙이 침잠하여 켜켜이 쌓여있음을 알 수 있다.


점심시간이 끝나 도서실에서 교실로 돌아왔는데, 내 책상만 뒤쪽으로 돌려놓아져 있다.
나는 의자에 앉으면서도 눈치 채지 못한다.
(…)
그 순간 뒤에서 고음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나는 몸이 뻣뻣해진다.
웃음소리가 나는 쪽은 절대로 보지 않는다.
누가 웃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는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유카리 일당이다.  
(…)
최대한 용기를 내서 뒤를 돌아다본다.
그 순간, 물에 젖은 휴지가 날아온다.
철퍽 철퍽.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내 얼굴과 책상에 떨어진다. (『불균형』, p31-33)


  꿈속에서는 여전히 ‘유카리 일당’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하며 시달리는 소녀 ‘나’는 유카리에게 장난 전화 걸기를 반복한다. 주인공 소녀의 불균형은 소녀를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이끌고 간다. 게다가 소녀의 마음속에 생긴 균열은 점점 커지며 소녀는 물건을 훔치기까지 한다. “훔치는 건 두 번째다.(…) 이상하게 죄의식은 없었다. 그보다는 후련한 기분이 들었고 그런 기분이 들었다는 사실에 놀랐다.(p36)”를 통해 주인공 소녀가 내면에 심각하게 균형을 상실했음을 알 수 있다. 소녀의 이러한 자각되지 못한 불균형은 스스로를 또 다른 재난, 중년 남성의 유혹에 넘어가 위험에 빠지게 만든다.


4. 친구 사이에 나이는 상관없다

  이러한 난국에서 소녀를 도와주는 존재로 직장 생활을 하는 20대 여성 사라가 등장한다. 주인공 소녀와 사라의 만남은 소녀의 착각에서 비롯된다. 소녀가 다니는 중학교에는 “머리카락을 초록색으로 물들이고 온몸에 초록색 옷을 걸친 중년 여자가 출몰한다는 이야기.(p12)”가 나돈다. 그리고 “초록아줌마의 초록색 부분, 말하자면 머리와 옷을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p13)”가 전해진다.
  『불균형』의 첫 부분은 주인공 소녀가 사라와 만나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는, 다리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
밤 아홉 시가 넘은 시각. 부슬부슬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다.
(…)
다리 한가운데 난간에 몸을 딱 붙이고 서서 강을 바라보는 사람의 윤곽이 드러났다.
초록색 원피스에 초록색 머리.
(초록아줌마!)
나는 멈춰 서서 숨을 죽였다. 그리고 곧장 그 사람 뒤로 다가갔다.
(…)
“도와줘!”
(…)
초록아줌마가 아니다. 젊은 여자다. 이십대 후반 정도 되었을까? (『불균형』, p9-11)


  주인공 소녀가 다리 난간에 서 있는 여성을 ‘초록아줌마’로 잘못 보아 시작되었지만 ‘젊은 여자’는 소녀의 ‘도와줘!’라는 말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는다. 사라는 소녀가 물건을 훔치다 잡혔을 때 도움을 주고 중년 남자로 인해 위험에 처했을 때 겪은 심적 불안을 해소시켜 준다. 주인공 소녀와 사라는 같이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하고 바닷가로 드라이브를 가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소녀와 사라는 15살 나이 차가 나지만 둘은 친구가 된다. 친구가 되는 것에 나이는 상관없다. 하지만 저 내면 깊숙이 깊게 파고 들어가 보면 이 두 사람 다 내면의 균형이 심각하게 흐트러져 있다는 점에서 서로 같다.
  사라는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것과 그러지 못한 현실에서 고뇌하며 남몰래 어긋난 행동을 되풀이하고, 주인공 소녀는 유카리에게 장난 전화를 거는 행동을 되풀이한다. 소녀는 용기를 내어 자신이 행한 옳지 못한 행동에 대해 털어놓는다.


그래, 사라라면 꼭 이해해 줄 거다. 그건 믿을 수 있다.
“나……, 쭉 말없이 끊는 장난 전화를 걸었어.”
용기를 내어 말을 했다.
 (…)
사라를 보니 생각에 빠진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혹시 날 경멸하는 걸까?
잠시 후, 사라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빨갛다. 깜짝 놀랐다. 사라가 울고 있다.
“……네가 나쁜 게 아냐. 방법이 틀렸을 뿐이지.”
나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불균형』, p107-108)

 
  사라는 그러면서 “어디선가 매듭을 지어야만 해. 미루면 안 돼. 두려워하기만 해선 안 되는 거야.(p109)”라고 조언한다. 내면의 불균형을 포함해 나이차에서 외면적인 불균형을 가진 두 사람이지만 아픔을 공유한 주인공 소녀의 고통은 사라를 변화시킨다. 사라 또한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불균형과 열등감으로 인해 자신이 가해자가 되어 타인에게 피해를 끼쳤던 비겁한 행동을 주인공 소녀에게 털어놓는다.  


사라는 고개를 숙였다.
“……한심하게도 이대로 숨기고 넘어가자고 몇 번이나 생각했어. 일을 쉬고 집에 틀어박혀 골똘히 생각했지. 드디어 결심이 섰어. 내일 회사에 말할 거야. 그럼 당연히 회사는 그만둬야 할 테니까 여기서 더 지낼 수 없을 거라 생각해. 너도 이제 만날 수 없을 거야. 하지만 그 전에 네게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싶었어.”
 (…)
“잠깐, 사라 언니! 맨 처음 만난 날 밤, 내가 다리에서 사라 언니에게 도와 달라고 말했지. 그래서 정말로 언니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어. 언니랑 만나서 난 큰 도움을 받았어.”
말을 시작하자 불쑥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사라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졌다.
사라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날 밤 도움을 바란 건 너뿐만이 아니었어. 나도 마찬가지였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거든. 그런 기분으로 정처 없이 빗속을 걸었던 거야.”
사라는 빙긋 웃었다.
“그러니까 나도 도움을 받았어. 널 만나서. 정말로 고마워.” (『불균형』, p165-167)


  당연하지만 모든 관계에는 이별이 존재하듯 모든 친구 관계에도 헤어짐이 존재한다. 주인공 소녀와 사라의 관계는 보통 말하는 정상적인 친구 관계와는 거리가 있고 일시적이기는 했지만, 두 사람이 아무나 나누기 힘든 친구 관계를 유지했음을 알 수 있었다. 서로의 아픔을 고백하고, 공유하고, 격려하며 도움을 주고받았다. 여기에 더해 주목할 것은 이 둘이 멋지게 헤어졌다는 점일 것이다. 이 세상을 살다 보면 멋진 만남도 드물지만 멋진 헤어짐은 더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5. 새로운 또래 친구를 통해 회복하는 균형 
  그림책 『100만 번 산 고양이』의 작가인 사노 요코 수필집 중에『친구는 쓸 데 없다(友だちは無駄である)』(佐野洋子, 筑摩書房, 1988)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사노 요코가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와 대담 형식을 취한 수필집으로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사노 요코는 이 수필집에서 결론적으로는 ‘친구는 쓸 데 없다’라든가, ‘친구는 필요 없다’가 아닌 ‘친구는 소용 있다’, ‘친구는 필요하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불균형』에서 주인공 소녀가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친구가 필요했다.
  사라와의 관계가 여행지에서 만난 친구 같은 조금은 특별한 친구 관계였다면, 같은 반 친구인 마스무라 미즈에는 지금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여기 일상 속에서의 친구 관계이다.
  그렇다고 마스무라 미즈에가 그냥 평범한 소녀인 것은 아니다.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 된 마스무라 미즈에는 갈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삼인조 중 한 명이다.


삼인조는 우리 반 여학생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무리다. 한눈에 팍 띈다. 그런 삼인조 가운데 하나가 어째서 내게 말을 건 것일까?
특히 마스무라 미즈에는 소프라노 같은 고음으로 떠드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나와는 거리가 먼 유형이다. (『불균형』, p27)


  주인공 소녀와 달리 마스무라 미즈에는 ‘눈에 띄는’ 삼인조 무리 속에 들어있다. 그리고 이 삼인조는 복장이나 머리에 대한 지적을 받아도 “선생님, 원래 제 머리색이에요. 천연색이라고요.(p28)”라고 시치미를 뗄 정도로 호락호락한 아이들이 아니다.
  하지만 사건은 발생한다. 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되어 마스무라 미즈에가 3층 교실 창으로 투신을 한다. 마스무라 미즈에는 한쪽 다리에 골절상을 입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하지만 투신을 한 이유를 함구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잘 어울려 지내던 삼인조 두 명의 문병도 거부한다. 이로써 삼인조라고 하는 그룹 속에 우리들이 상상할 수 없는 어떤 내막이 존재함을 추측할 수 있다. 앞서 주인공 소녀가 비 오는 날 다리 난간에 기대어 있는 사라를 발견한 것처럼, 마스무라 미즈에는 교실 안에서 주인공 소녀를 발견한다. 하지만 2학년 1학기에 마스무라 미즈에가 말을 걸어왔을 때 주인공 소녀는 그 신호에 반응할 여력이 내면에 존재하지 않았다. 마스무라 미즈에가 입원한 병원에 병문안으로 다녀온 담임은 주인공 소녀에게 말한다.


“마스무라에게 왜 그랬냐고 물었지만 말을 일절 하지 않는구나. (…)하지만 다시 학교에 나와야 하니까 나도 사정을 알고 싶단다. 마스무라와 친하게 지낸 미나모토와 스나하라를 병원에 데려갈까 하고 물었더니 그 둘하고는 절대로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더구나.”
 (…)
“……아무래도 그 부분에서 뛰어내린 까닭을 알 것도 같은데…….”
“그런데 어제 갔더니 와 주었으면 하는 사람이 한 명 있다고 하더구나. 그게 바로 너야.”
알 수가 없었다. 어째서 마스무라 미즈에가 날 만나고 싶어 할까? (『불균형』, p124)


  주인공 소녀만큼이나 독자인 나 또한 마스무라 미즈에가 왜 소녀를 만나고 싶어 하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여기서는 두 소녀가 친구 관계로 발전하는 상황을 중심으로 들여다볼까 한다.

  소녀는 미즈에에게 건네줄 꽃다발까지 사들고 병문안을 간다. 미즈에는 “안 오는 게 너다운데.(p125)”라며 주인공 소녀를 떠보고, 소녀는 “분명 담임이 가라고 해서 왔어. 하지만 뛰어내린 까닭 같은 건 묻고 싶지도 않고 돌아가는 게 좋겠다면 그만 갈게.(p126)”라고 응수한다. 그러자 미즈에는 “역시 넌 아주 솔직해.(p126)”라고 말한다. 이로써 이들은 아주 대등한 관계가 되었다. 눈치 보거나 봐주는 것 없이 서로 팽팽하게 맞선 것이다. 물론 둘 다 착한 아이인 척하지도 않는다. 이로써 둘 사이에 친구 관계 성립이다.
  친구가 되려면 서로가 서로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그리고 심리적인 면에서 대등해져야 된다. 성경 구절 중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바라는 것을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마태복음 7장 12절)”라는 말이 있다. 내가 바라고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먼저 타인에게 행하고, 내가 증오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나 스스로가 타인에게 행하지 말라는 가르침인데, 『불균형』의 주인공 소녀와 미즈에는 상대에게 서로 솔직할지언정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언행은 하지 않을 것 같다는 믿음을 준다. 이보다 더 좋은 친구가 어디 있겠는가. 이 두 소녀의 우정은 당분간은 따 놓은 당상이다.
 
6. 주인공 소녀는 이름을 찾을까

  『불균형』은 주인공 소녀 ‘나’가 이야기를 끌고 간다. 하지만 주인공 소녀의 이름은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사라나 미즈에가 주인공 소녀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소녀는 이름을 노출시키지 않는다.



  『고독이 필요한 시간』(모리 히로시 지음, 오민혜 옮김, 카시오페아, 2015)이란 책에서 “즐거웠다가 외로웠다가 하는 것이 건전한 상태다. 뭐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어느 한쪽이 없으면 나머지 한쪽도 사라져서 평탄한 세계가 된다. 이는 심장이 멈춘 것과 같아서 죽음의 세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p127)”라며 파도의 파동이나 그네의 흔들림과 같은 ‘요동’이 “같은 폭으로 양쪽을 오가(p128)”는 것처럼 인생에는 즐거움과 고독이 함께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불균형』의 주인공 소녀 ‘나’는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쓰나미’ 같은 재난으로 인해 내면세계의 균형 상실을 초래하며 ‘즐거웠다가 외로웠다가’하는 일상의 ‘건전한 상태’를 잃고 ‘심장이 멈춘 것 같은 죽음의 세계’ 속에 갇히고 만다.
  『불균형』에서 단 한번도 주인공 소녀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다는 것은 소녀가 여전히 재난 속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로 인해 정체성을 상실하여 불균형 상태에 있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소녀는 사라나 미즈에와의 관계를 통해 서서히 재난에서 벗어나 자신의 일상을 되찾아간다.
 
날마다 병원에 다니다 보니 나와 미즈에는 점차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미즈에는 수다쟁이에다 농담도 잘하는 재미있는 아이였다.
“아, 또 나 신나게 떠들었어. 이런 짓 안 하려고 했는데. 저축해야지 저축.”
미즈에는 때때로, 이렇게 말하며 수다를 딱 멈춘다.
“그럼 열심히 저축해.”
내가 웃으면서 말하면 결국 미즈에도 깔깔대며 웃고 다시 수다를 떤다. 미즈에는 나보다 훨씬 더 밝았다.
미즈에와 이야기하는 건 사라와 이야기하는 것과는 또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어느 쪽이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서로 수다를 떨었다. (『불균형』, p136)


  이를 보면 소녀는 더 이상 재난이 또 다른 재난을 불러오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과거의 재난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이름을 되찾거나 예전과는 다른 새로운 이름을 찾을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한다. 『타인의 영향력-그들의 생각과 행동은 어떻게 나에게 스며드는가』(마이클 볼드 지음, 문희경 옮김, 어크로스, 2015)란 책을 보면 “인간이 분노와 불안 같은 심정과 기분, 또는 만족감이나 슬픔처럼 더욱 지속적인 심리 상태를 전염시킨다는 개념은 과학적으로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p33)”라고 하면서 “타인의 존재가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끌기도 하지만, 타인의 부재는 우리를 훨씬 더 험한 길로 몰아넣을 수 있다.(p13)”라고 말한다.
  『불균형』에서의 주인공 소녀 ‘나’는 사라와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 안에 내재한 분노와 불안에 직면하고 자신을 그러한 분노와 불안, 슬픔이라는 상태로 몰아간 상대와 정면승부를 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그리고 ‘삼인조’와의 관계로 마이너스 감정 전염이라고 하는 심리 상태에 있다가 가까스로 빠져나온 미즈에와의 관계를 통해 앞으로 이 두 소녀가 불균형 상태에서 벗어나 즐거운 교우 관계를 이어갈 것이라는 걸 예상하게 한다.
  그동안 이 책을 읽으며 두 소녀가 얼마나 외롭고 힘든 상태 속에 있었는지 알기에 독자인 나는 이들의 즐거운 교우 관계가 한동안 쭉 이어지길 바라마지 않는다. 그리고『불균형』의 주인공 소녀와 사라, 미즈에, 그리고 도처에 존재하는 이와 같은 우리들 소녀와 사라와 미즈에에게 ‘힘내’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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