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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랑 Aug 22. 2018

<동화로 떠나는 내면 여행-일본동화읽기⑤>


             친구의 죽음을 대하는 여러 방식

 『우리들의 시간은 흐른다』(후쿠다 다카히로 지음, 김보경 옮김, 개암나무, 2014)




1. 친구의 죽음을 경험하다 

  나의 경우를 말하면, 고등학교 1학년 때 친한 친구 두 명이 먼저 이 세상을 떠났다. 둘 다 매력적인 여고생이었다. 또래 친구보다 어른스럽고 청결했으며 딱 부러지게 말도 잘했다. 그리고 둘 다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했고 친구도 많았다. 그중 한 친구의 죽음은 내게 큰 영향을 끼쳤다.




  친구가 입원한 병원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기억이 떠오른다. 내 친구는 많은 말을 했다. 앞으로의 꿈에 대한 말도 했다. 친구는 차분했지만 정열적이었다. 말하는 친구 입술이 바삭바삭 말라갔는데도 나는 친구가 죽을 거라는 생각을 못 했다. 다시 함께 학교에 다닐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친구는 세상을 떠났고, 반 친구들은 그 친구에 대한 말을 꺼렸다. 나는 내 친구에 대하여 누군가와 말하고 싶었다. 그녀가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이었는가를 공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내 친구에 대한 애도를 해야 될 그때에 잘 하질 못 했다.      

  



  『우리들의 시간은 흐른다』(후쿠다 다카히로 지음, 김보경 옮김, 개암나무, 2014)에는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때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타구야라는 소년의 죽음을 애도하는 친구들의 다양한 모습이 등장한다.      

 



2. 슬픔보다 공포를 느끼다    

  타쿠야의 바로 뒷자리에 앉았던 노리코에게는 타쿠야의 죽음이 공포로 다가온다.    


(…) 타쿠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슬픔보다 공포를 먼저 느꼈다. 내 바로 앞자리에 소리 없이 다가온 ‘죽음’ 때문에 계속 몸이 떨렸다. 되도록 타쿠야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려 했고 그 애의 소지품에도 손대지 않았다. 인정 없는 짓이라는 건 알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지 못하는 나. 그런 내가 너무 한심했다.(『우리들의 시간은 흐른다』,  p15-17)    


  노리코는 죽음에 대한 무서움과 두려움을 갖게 된 것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였다.(p14)”고 고백한다.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하여 충분한 애도를 하지 못 한 채 타쿠야의 죽음을 맞아 공포로 다가왔을 수도 있는데, 노리코는 타쿠야가 등장하는 꿈을 꾸며 괴로워한다. 

  『애도-상실과 마주하고 상실과 더불어 살아가기』(베레나 카스트, 채기화 옮김, 궁리, 2007)에서 “죽음의 경험은 격렬한 정서적 경험이고 부담(p91)”이라며 아래와 같이 말한다.    


죽음을 새롭게 경험할 때마다 이미 잃은 사람들은 다시 한번 잃은 것처럼 느끼게 되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이미 한 번 애도 작업을 견뎌냈다는 인식이 도움이 된다. 그는 그 과정이 어땠는가에 대해서 기억할 수 있으며 아마도 처음처럼 그렇게 아주 자포자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상실을 딛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시간이 전보다 훨씬 짧아진다. 애도자는 자신이 상실을 이미 극복한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전의 상실에 대한 애도 작업을 억압해온 사람은 새롭게 다가오는 또 다른 상실을 매우 극복하기 어려워하며 대부분 심한 우울증에 빠진다.(『애도-상실과 마주하고 상실과 더불어 살아가기』, p92)    

  

   ‘이전의 상실에 대한 애도 작업을 억압해온 사람은 새롭게 다가오는 또 다른 상실을 매우 극복하기’ 어렵다는 부분이 와 닿는다. 노리코가 악몽을 꾸고 공포를 느끼는 것은 섬세하고 예민한 감수성에서 비롯되었을 터인데 이러한 감수성이 ‘고착 상태’에 빠져 억압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하지만 같은 반 사유리의 경우는 다르다. 

 

같은 반 사유리는 계속해서 큰 소리로 울었다. 어찌나 크고 섧게 우는지 울음소리에 놀란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타쿠야의 죽음을 이토록 슬퍼할 수 있는 사유리가 부러웠다. 나도 타쿠야를 위해 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우리들의 시간은 흐른다』, p15-16)    


  사유리는 슬픈 감정을 숨기지 않고 밖으로 드러내고, 심령술사의 힘을 빌러 타쿠야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사유리는 사유리 방식대로 타쿠야의 죽음을 애도한다. 이와 달리 노리코는 타쿠야의 죽음을 자신의 내면 속에 억압하고 있다.          

   『프로이트&라캉 무의식에로의 초대』(김석, 김영사, 2010)에서 김석은 요제프 브로이어라는 의사가 자신의 환자였던 ‘안나 O’를 치료한 사례를 소개하며 과거의 고착 상태에 빠진 기억들을 재생하고 당시의 감정을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여 그때의 감정과 기억을 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총명하고 활기찬 스물한 살 여성 ‘안나 O’는 어느 날 갑자기 히스테리 증상을 일으키는데 “망각된 기억들을 재생하고 당시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게 하면서 증상들을 제거할 수 있었다.(p40)”고 한다. 


  이 일례를 노리코의 경우로 가져왔을 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앞서『애도-상실과 마주하고 상실과 더불어 살아가기』에서 강조한 ‘격렬한 정서적 경험이고 부담’이 되는 ‘죽음에 대한 감정’을 억압하거나 회피하기보다는 ‘말이나 행동으로 분출할 필요가 있다는 점’ 일 것이다. 

  다행히도 노리코는 할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을 위해 생전에 타쿠야가 보여준 따뜻한 행동에 대해 알게 되고, 이를 계기로 노리코의 꿈속에 나타나던 타쿠야의 모습에도 변화가 생기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너무 슬퍼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째서 타쿠야가 죽게 되었을까. 어째서 하느님은 우리 반에서 타쿠야를 데려간 걸까. 꿈에서 깬 나는 홀로 어두운 방 침대에 앉아 끝없이(25p)”울며 타쿠야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도한다. 

   

3.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친구 관계는 다양하게 존재한다. 둘이서만 붙어 다니는 친구도 있고, 여러 명 그룹으로 어울리는 친구들도 있다. 타쿠야는 테니스 클럽에서는 복식 팀인 무라키라는 소년과 단짝이고, 같은 반에서는 인기 성우 화보집을 같이 사 보거나 “만화 프로그램이나 게임, 아니면 아이돌 가수나 연예인 이야기로 키득(p30)”거리는 유쾌한 ‘3인방’ 친구들과 어울려 지낸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타쿠야의 죽음을 이 소년들은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테니스 클럽에서 또다시 복식 팀을 짜 큰 대회에도 나가자고 약속했던 타쿠야는 어느 날 갑자기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되고, 홀로 남겨진 소년 무라키는 분한 마음에 옆 반 타쿠야의 반으로 가 타쿠야의 책상을 발길질한다.    


대체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농담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테니스를 그만둘 생각에 마음이 들떴나? 지금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 녀석이 사무치게 떠올라 쓸쓸함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못된 장난이라도 치면 슬픔을 조금이라도 지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 행동을 본 타쿠야의 친구 3인방이 곧바로 복수를 해 왔다. (…) 타쿠야를 위해 불같이 화낼 수 있는 그 아이들이 몹시 부러웠다.(『우리들의 시간은 흐른다』, p108)     


  타쿠야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든 무라키가 분노를 일으키고, 잘 하는 테니스도 그만둘 정도로 자포자기 상태가 된 것처럼, 학교에서 언제나 함께 몰려다니던  ‘3인방’ 소년들에게도 타쿠야의 죽음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인정하기 힘든 현실에 3인방 소년들은 타쿠야의 장례식장에서 몰래 빠져나가기도 하고, 테니스 클럽에 다니는 다른 반 소년 무라키와 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타쿠야는 죽지 않았어!(39p)”라며 상실을 대면하고 직시하기 힘들어 타쿠야의 죽음을 부정한다. 

  그러다 소년들은 타쿠야가 숨겨놓은 인기 아이돌 성우의 화보집을 찾아내, 그들만의 장례식을 치른다. 

  

우리는 뒷산 언덕 그늘진 땅에 구멍을 파고, 화보집에 불붙일 준비를 마쳤다. (…) 불은 곧 활활 타올랐다. 우리는 화보집을 한 장 한 장 찢어서 차례차례 불 속으로 넣었다. 엷은 연기가 가늘게 피어올라 점점 희미하게 사라졌다. 우리는 연기가 움직이는 대로 천천히 눈길을 옮겼다.(『우리들의 시간은 흐른다』, p53-54)    


  그리고 3인방 친구 중에 한 명인 카즈마는 테니스 소년 무라키 덕분에 테니스를 새롭게 시작한다.

  또한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있던 무라키는 타쿠야의 3인방 친구 중 한 명인 카즈마 덕분에 테니스에 대한 열정을 다시 회복한다. 


바로 그때, 강한 바람이 소용돌이치듯이 불어와 코트를 휩쓸고 지나갔다. 가랑눈과 코트에 있던 모래가 뺨을 세차게 때려서 엉겁결에 눈을 질끈 감았다. 왜일까. 갑자기 몸속에서 희한한 웃음이 솟아올랐다.

“바보같이. 난 절대 혼자가 아니었어.”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타쿠야는 곁에 없지만, 녀석이 남긴 것이 있잖아. 언제나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고.”

공을 주우면서 돌아보았다. (…) 

하지만 나는 코트 중앙에 그대로 서 있었다. 바보같이 눈물이 나려고 했다. 문득 정신을 차리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고 보니 카즈마가 박수를 치고 있었다.

‘저 억지스런 박수는 뭐야.’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살짝 눈물을 닦았다.

“그래. 눈물이나 흘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우리들의 시간은 흐른다』, p123-125) 

   

  타쿠야는 떠났지만 남겨진 친구들은 자신들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타쿠야로 엮어진 친구들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며, 타쿠야를 잃은 상실을 직시하고 대면하고자 한다.   

  살면서 가끔 친구들의 죽음이나 형제의 죽음을 미화하거나, 자신이 지금 불안정한 원인을 그 친구들의 죽음 탓으로 돌리며 회피하는 상황을 목격할 때가 있다. 이들은 어쩌면 제 때에 해야만 했을 충분한 애도 과정을 놓쳐 그러한 감정이 그림자로 쌓여 내면화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4. 정신이 계승되다

  본명보다는 ‘마루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사노는 반장이고 “공부 말고는 특별히 잘하는 게 없는(p79)” 평범한 소년이다. 타쿠야가 세상을 떠난 지 4개월이 지난 어느 날 담임인 모리 선생님은 타쿠야가 앉았던 자리에 예전처럼 그대로 놓여있는 책걸상을 다른 데로 옮기자고 제안한다. 아이들이 반대하자 담임은 반장인 사노의 의견을 묻는다. 그러자 반 친구들은 일제히 반대하며 아래와 같이 말한다.   


“마루오는 이 일과 상관없어요.”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이상한 별명은 부르지 마라!”

모리 선생님이 주의를 주었지만 소용없었다. 늘 그랬다.

“마루오는 타쿠야와 별로 친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마루오의 의견은 별 의미 없단 말이에요.”

“맞아요. 마루오는 학원에 가느라 타쿠야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다고요.”

훅 가슴을 찌르는 말이었다. 나는 계속 앉은 채로 있었다.(『우리들의 시간은 흐른다』, p86)   

 

  타쿠야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고, 타쿠야와 별로 친하지도 않았다는데, 그렇다면 타쿠야와 사노 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을까. 공부에만 매달리고 재미라고는 하나 없는 소년 사노, 그래서 친하게 어울리는 친구가 하나도 없는 사노에게도 타쿠야는 흔적을 남겼다.

  타쿠야와 사노는 학원 친구였던 것이다. 사노는 열심히 공부해서 부모님이 원하는 좋은 중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이다. 따라서 시험 성적이 전부였다. 사노의 시야와 머릿속에는 오로지 공부뿐이었다. 따라서 타쿠야가 “학원에 들어오자마자 월말 국어 시험에서 매우 좋은 점수를 받아 성적 우수 학생으로 벽보에 이름을 올렸(p90)”을 때는 불안감에 위기의식과 라이벌 의식을 가질 정도였다. 이런 사노에게 학원 친구 타쿠야는 ‘지금 관심 갖는 즐거움에 대해서’, ‘꿈에 대해서’, ‘아름다운 밤하늘에 대해서’ 말하고, 너무 쉽게 긴장하여 시험 문제 풀 때 실수하는 사노를 위해 ‘긴장하지 않게 해 주는 부적’을 남긴다.

  그렇게 하여 사노의 기억 속에는 타쿠야와 이야기를 나눈 “별이 총총했던 그때의 밤하늘(p96)”이 생생하게 남아있고, 타쿠야가 준 비밀이 담긴 부적 덕분에 긴장하지 않고 수험장에 임하게 된다.

  타쿠야의 책걸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사노는 대답한다.  

 

“조금만 더 이대로 지내게 해 주세요. 조금만 더 타쿠야 책상을 교실에 두게 해 주세요. 조금만 더요…….” (…)

나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보잘것없는 시시한 마루오다. 하지만 꼭 말하고 싶었다.

“아직 타쿠야의 친구로 지내고 싶습니다…….”(『우리들의 시간은 흐른다』, p99)     

        

  이로써 우리들의 소년 사노가 공부도 물론 잘 하면서,  예전의 시시하거나 재미없는 아이가 아니라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알며, 꿈을 간직하고 관용과 배려심을 지닌 사람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

   

5. 친구를 애도하다

  일본의 분석심리학자 가와이 하야오는 『우정의 재발견』(가와이 하야오 지음, 박지현 옮김, 동아시아, 2006)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로 갑자기 친구를 잃은 사람이 “친구가 얼마나 똑똑했는지, 얼마나 다정다감한 사람인지 이야기하면서 그런 친구의 목숨을 빼앗은 운명의 잔혹함에 분노하고 한탄하며(p144)”, 의욕을 상실한 채 죄책감에 시달리고, 망상에 사로잡힌 상담 사례를 소개하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이 죽고 나면 죽음에 대한 ‘의례’가 필요하다. 그런데 현대는 그것을 제대로 치르기 어려운 환경이다. (…) 그렇게 필요한 ‘상喪’을 치르기 위해 그 사람은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나를 찾아온 것이고,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쏟아냄으로써 ‘상’을 체험하고 기운을 되찾아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원인’에 대한 논쟁은 전혀 할 필요가 없었다. ‘상’을 치르는 것이 바로 그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었던 것이다.(『우정의 재발견』, p145)   



  가와이 하야오는 계속해서 “친구를 잃은 슬픔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하며 고락을 함께 나누던 사람이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다시 반복할 수 없는 일이 된다. 먼저 가버린 친구를 애도하는 마음은 추도문에 담겨 있다.(p145)”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의 시간은 흐른다』는 남겨진 아이들이 쓴 추도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타쿠야와 함께 한 추억과 타쿠야가 생전 친구들에게 보여준 말과 행동에 대해 온 마음과 온 정신을 다해 추모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들 자신 또한 위로를 받는다. 

  


   김애령은「아름다운 삶을 비추는 영혼, 친구」(『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21세기북스, 2015)라는 글에서 철학자 폴 리쾨르와 한나 아렌트 등의 말을 소개하며 아래와 같이 말한다.


 ‘누구’의 정체성은 따라서 ‘이야기’의 정체성입니다. 오디세우스의 이야기가 오디세우스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것처럼, 이야기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 (…) 오디세우스는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함으로써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우리가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영웅이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를 통해 그는 불멸의 존재가 됩니다. (…) 

내 삶을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내 삶의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그것이 골방에 앉아 혼자 쓰는 이야기일지라도 우리는 누군가 그 이야기를 읽어주거나 들어주기를 기대합니다. (…) ‘아름다운 삶을 비추는 영혼’은 바로 이와 같은 타인입니다. 즉 구체적인 한 개인의 삶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들어줄 수 있는 구체적인 타인을 말합니다. 그것이 곧 우정의 관계일 것입니다.(『나는 어떻게 죽은 것인가』, p91-97)   


   『우리들의 시간은 흐른다』에서 타쿠야는 여름 방학이 시작되던 7월의 어느 날 방파제에서 혼자 낚시를 하다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고 만다. 초등학교 6학년 타쿠야는 불의의 사고로 갑자기 떠나고 말았지만 타쿠야의 짧았던 삶은 남겨진 친구들의 입을 통해 말해지고 이야기되며, 그냥 우리가 모르는 ‘누구’가 아닌,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소년 ‘타쿠야’가 된다. 

  타쿠야가 영웅이 되고 불멸의 존재가 되는 것은 남겨진 친구들이 적절한 바로 그때에, 각자의 여러 방식으로 타쿠야를 말하고 이야기하며 추모하고 애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6. 그리고 찾는 나의 방식   

   나도 고등학교 때 죽은 내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같은 반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 아이들이 얼마나 섬세하고 감수성이 뛰어났으며, 잘 다듬어진 손톱이나 까만 윤기 나는 머리카락이 얼마나 멋졌으며, 그리고 얼마나 똑똑하고 공부를 잘했으며, 내가 그들과 얼마나 친구가 되고 싶었는지 말하고 또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충분한 말도, 어떤 의례도, 애도도 하질 못하고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상실의 감정만 오롯이 남아 내가 직시하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새 내 내면에 그림자로 쌓였다. 『우리들의 시간은 흐른다』에 등장하는 남겨진 친구들은 타쿠야에 대한 의례와 애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 덕분에 이제라도 나는 먼저 간 내 친구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 아이들의 특징과 생김새와 목소리와 이름이 내 몸속에 생생히 각인되어 있음을 안다. 내가 아직도 그들을 기억하고 있음을 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러한 사실이 내게 안도감을 준다. 더불어 나는 혹여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갖고 있을 나 자신의 우울이나 어두운 감성을 그 아이들의 죽음과 결부시켜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증폭시키거나 원인이나 핑계 삼지 않았나 돌이켜 본다. 그 무엇보다 내 친구들은 내가 자신들을 나의 어두운 그림자로 만드는 것을 반기지 않을 것임을 직시한다.    


  나는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 나의 애도 방식을 모색한다. 그리하여 나는 편지를 쓴다. 나는 죽은 내 친구들이 생각날 때마다, 그 애의 이름을 적고, 적고, 또 적으며 편지를 쓴다. 자연스럽게 그 시절로 돌아가는 내가 있다. 그런 나를 객관적으로 직시하는 내가 있다.  많이 늦어졌지만 『우리들의 시간은 흐른다』를 통해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나마 애도를 하려 하니, 『우리들의 시간은 흐른다』의 일본어판 원제목인 “굿바이 마이 프렌드(グッバイマイフレンド)”가 내 내면세계로 들어와 언어화된다. “굿바이 마이 프렌드, 밤마다 병실에서 혼자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니. 네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미안해. 짧은 학우 생활이었지만 좋은 책도 함께 보고, 수다 떨고 같이 놀아 줘서 고마워. 그리고 다시 만나도 우리 또 친구 하자.” 나는 내 친구를 한번 떠나보내고, 다시 만나려 한다.      


  어느 날 갑자기 타쿠야를 잃어버린 친구들은 각자의 애도 방식을 통해 타쿠야를 추모하고, 상실을 극복한다. 이로써 타쿠야는 그들 속에서 없는 존재가 아닌 여기 존재하는 빛으로써 각자의 친구들 삶 속에 건강한 힘을 드리운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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