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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랑 Sep 26. 2018

<동화로 떠나는 내면 여행 2탄-한국&일본 동화 읽기➀

식탐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            

『마녀의 슈크림』(오카다 준 지음, 양선하 옮김, 국민서관, 2015)



1. 슈크림에 빠진 소년        

  아이스크림, 젤리, 꿀, 케이크, 사탕, 달콤한 떡이나 빵, 다디단 과일 등은 한 입이나 한 숟가락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먹다 보면 한 통이 되고, 한 봉지가 되고, 한 상자가 어느새 바닥 나있다. 오늘 먹었는데, 내일 또 먹고 싶고, 모레나 글피에도 먹고 싶다. 


  일본의 판타지 동화 『마녀의 슈크림』(오카다 준 글‧그림, 양선하 옮김, 국민서관, 2015)에는 슈크림 맛에 빠진 다이스케라는 소년이 등장한다.    

   

2. 누나의 것을 탐하다          

  『마녀의 슈크림』 속 주인공 소년 다이스케는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나온다. 이 연령대 아이들의 특징 중 하나로 한계를 모르는 에너지의 분출을 들 수 있다. 에너지의 분출이 다이스케에게는 슈크림에 대한 욕구로 표출된다. 슈크림을 다이스케의 ‘욕구’나 ‘욕망’으로 대체한다면 다이스케의 욕망은 슈크림처럼 부풀어 올라 있다. 


  장래 꿈이 슈크림 가게를 차려 슈크림을 원 없이 먹어보는 것이 소원인 다이스케는 슈크림을 먹고도 또 먹고 싶어 누나 것까지 탐한다. 이로 인해 엄마에게 혼이 나고, “난 이거보다 백 배나 큰 슈크림이라도 다 먹을 수 있다고요!(p9)”라고 외치며 집을 뛰쳐나온다.    

     

3. 스스로 살아가는 힘을 상실한 존재들         

  마침 이때 백 배나 큰 슈크림을 먹고 싶어 하는 다이스케의 욕망을 주시하는 이들이 있다. 까마귀와 검정고양이이다. 까마귀와 검정고양이는 다이스케에게 백 배나 큰 슈크림을 먹게 해주겠다며, 그 대신에 마녀에게 빼앗긴 자신들의 목숨을 되찾아달라고 말한다. 이들은 욕망의 실체라 할 수 있는 마녀에게 목숨을 빼앗긴 존재로 나온다. 

  까마귀와 검정고양이는 마녀에게 자신의 목숨을 맡기고 불사신이 되지만, 스스로 ‘살아가는 힘’을 잃고 만다.    

     

4. 이들 동물들이 뜻하는 것        

  마녀에게 목숨을 빼앗긴 동물들은 까마귀와 검정고양이 외에 두꺼비와 두더지가 있다. 마녀의 도움으로 새 생명을 얻게 된 동물들은 마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가 된다.  

      

마녀는 곧 죽게 생긴 우리를 도와주었어. 말도 할 수 있게 해 주고, 마법도 부릴 수 있게 해 주었지. 그래서 우리는 마녀가 아주 착한 사람인 줄 알았어. 그런데 나중에 자기를 좀 도와 달라면서 우리 ‘목숨’을 자기한테 맡기라고 했어. 그러면 무슨 일을 당해도 죽지 않는다면서 말이야.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목숨’을 맡기지 않을 수 있겠어?(『마녀의 슈크림』, p36)        

  

  야생 동물들은 자연 속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왔고, 스스로 살아가는 힘을 지닌 존재들이었다. 이들이 말하는 ‘곧 죽게 생긴 우리’라는 표현은 어쩌면 생태계가 파괴된 지금 현재의 야생 동물들이 처한 극한 상황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야생동물들이 살아남기 위해 마녀를 의지하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 이해가 된다. 

  마녀에게 자신들의 목숨을 맡기는 대신 ‘말’과 ‘마법’의 힘을 얻고, 스스로 살아가는 힘을 상실한 그들의 모습은 어쩌면 야생성을 잃고 살아가는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상징하는지도 모른다.  

        

5. 마녀의 집, 허기를  충족시켜주는 곳?        

  자, 이제부터 슈크림을 향한 다이스케의 ‘식탐’ 모험이 시작된다. 백 배나 큰 슈크림은 마녀의 집 지하실에 있다. 엄청나게 큰 슈크림이 있는 마녀의 집은 「헨젤과 그레텔」의 마녀의 집을 연상시킨다. 물론 먹을 것이 없어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헨젤과 그레텔이 처한 극한 상황과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고 싶다는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다이스케의 상황은 다르다. 

  일본의 비교문학 연구자 니시 마사히코는 「아동문학과 기아」(『어린이와 문학』, 2008년 4월호)라는 글에서 “아이들 대상의 문학을 포함해 인간이 언어를 사용해 들려주는 이야기 중에서 기아와 고통, 그에 대한 극복이야말로 일관된 주제(p44)”라며 아래와 같이 말한다.        

  

솔직히 태고 적부터 인간은 기아와 운명을 같이 해 왔습니다.(…) 막 태어난 갓난아이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갓난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이고 공복과 싸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대로 자기를 방치하면 이른 아침 무렵에는 자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리기라도 하듯이 갓난아이는 처절하리만치 큰소리로 울어댑니다.(…)

예컨대 동화 속에서 “넘쳐나는 식욕”이라고 하는 주제가 자주 등장하는 것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순수한 마음을 지닌 존재임과 동시에 인간의 야비한 욕망을 다 드러내 보이는 생물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아동문학은 스스로 그러한 ‘아귀(餓鬼)’들의 욕망에 응답하는 방식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옛이야기 중에 아버지, 어머니가 반드시 부성애나 모성애를 발휘하지 않는 것은 어른들 또한 살아남는 것에 급급해 있음을 의미합니다.(…) 즉 ‘아귀’라는 점에서는 어른도 아이도 없는 것입니다. (「아동문학과 기아」, p44-46)      

  

  다이스케의 욕구를 슈크림으로 생각할 때, 이 욕구를 채우기 위해 까마귀와 검정고양이를 따라 마녀의 집으로 향하는 다이스케의 ‘허기’ 진 모습은 절대빈곤을 벗어난 현대인들의 ‘내면의 허기’를 상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헨젤과 그레텔이 처한 기아 상황과 다이스케가 처한 ‘내면의 기아 상황’은 같은 구조를 띤다.

  결론부터 말하면 다이스케는 마녀의 집 지하실에서 백 배나 큰 슈크림을 먹는다. 하지만 허기를 채운 헨젤과 그레텔이 처한 위기 상황을 떠올려보아도 알다시피, 공짜란 없다.  

          

6. 백 배나 큰 슈크림을 마주하다     

  『마녀의 슈크림』의 다이스케는 ‘먹방계’의 샛별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다이스케가 슈크림을 먹는 모습은 경건하고, 접시에 묻은 크림 한 점까지 깨끗하게 먹는 모습은 아름다움마저 느끼게 한다. 또 한편으론 이 작품에서 다이스케가 슈크림을 탐닉하는 장면은 언뜻 중독자의 모습마저 연상하게 할 정도이다.

  슈크림 생각으로 온통 머릿속이 꽉 찬 상황, 누나의 슈크림까지 탐하는 마음, 뜻대로 되지 않자 충동적으로 집을 뛰쳐나오는 돌발적인 행동, 슈크림을 먹을 수 있다는 이유 하나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까마귀와 검정고양이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따라나서는 행동, 위험한 공간인 마녀의 집으로의 잠입, 폐쇄적인 공간에서의 슈크림과의 대면 상황 등이 그러하다.       

 

슈를 한 입 베어 물고는 그대로 입을 빨대처럼 내밀어 커스터드 크림을 빨아들여 보았다.(…) 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한 번 씹어 보았다. 크림이 입 안에서 출렁인다. 음, 아깝지만 삼켰다.(…) 슈를 먹고 나니 다시 크림이다. 다시 먹어도 맛있다. 와, 이건 뭐라고 말해야 할지 표현할 길이 없다. 그저 맛있다, 맛있다, 맛있다는 말밖에는!(『마녀의 슈크림』, p70-71)    

 

  다이스케는 자세를 바로 하고, 슈크림의 상태 하나하나를 눈으로 음미한 다음 맛을 본다. 그러고 나서 다이스케는 황홀감에 취해 본격적으로 슈크림을 먹기 시작한다.   

     

7. 창을 통해 바라보는 이들        

  까마귀와 검정고양이는 마녀가 마법을 걸어놓은 탓에 백 배나 큰 슈크림이 놓여있는 지하실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까마귀, 검정고양이, 두더지, 두꺼비 등, 마녀에게 목숨을 맡기고 마녀의 심부름꾼으로 살아가는 동물들은 지하실 창문 밖에서 백 배나 되는 슈크림을 두 번이나 먹어치우는 다이스케를 지켜본다.


  이들의 모습은,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먹방계의 진수를 보여주는 이들을 시청하고 있는, 나의 모습으로 겹친다.

         

다이스케는 슈크림을 먹어 나갔다. 코고, 뺨이고, 얼굴이 온통 크림 범벅이었다. 

다들 숨을 죽이고 있는 듯한 기색에 두더지가 물었다.

“꿀떡꿀떡 소리가 요란한데, 어떻게 된 거야?”

두꺼비가 대답했다.

“다이스케 님이 엄청난 기세로 그걸 먹고 있어. 벌써 절반쯤 먹어 치웠어.”(…)

다이스케는 먹고, 먹고, 또 먹었다.(…)

다이스케는 거침이 없었다. 흘러내리는 크림을 들이마시듯 삼켰다.(『마녀의 슈크림』, p71-73)    


  나는 일본에서 공부할 때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 중 먹는 모습을 방송하는 일명 ‘먹방’ 프로그램이 왜 그렇게 많은지 의아했다. 그러하던 것이 지금 우리나라 방송계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을 볼 수 있다. 정말이지 먹는 모습을 방송하는 프로그램이 한 둘이 아니다. 물론 이는 절대빈곤에서 벗어난 상황에서 때때로 엄청나게 먹고 싶지만 각자의 몸 상태나 경제 상태로 그럴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텔레비전 먹방 프로그램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면도 있겠으나, 그 근본적인 이유는 내 안의 내면의 허기를 이들 먹방 프로그램을 통해 대리 체험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8. 마치 푸드파이터 같다        

  먹방 프로나 드라마에서 상금을 내건 먹기 대회나 경기에 출전하여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푸드파이터가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이 대회에 참가하는 이들의 에너지는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마녀의 슈크림』은 슈크림을 먹는 다이스케의 모습을 어느 면에서 푸드파이터와 같이 묘사한다. 푸드파이터는 제한된 시간 안에 최대한 빨리  많이 먹어야 승자가 된다. 대체로 많은 스포츠 경기가 제한된 시간이나 거리 안에서 가장 뛰어난 승부나 기록을 달성하여 새로운 기록을 갱신하고, 마지막 승자로 남는 선수만이 스포츠 영웅이 된다. 어떤 막다른 한계를 설정하고 그 한계를 뛰어넘었을 때 그는 영웅이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푸드파이터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마녀의 슈크림』의 다이스케도 그냥 태평하게 슈크림을 원 없이 며칠이고 두고두고 먹는 것이 아닌 시간 제약이 가해진다.   

    

시계를 보았다.

두 시 이십 분.

“아!”

동물들이 나직하게 외마디 소리를 냈다.

두더지가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온몸에 닭살이 돋은 두꺼비가 나서서 알려 주었다.

“다이스케 님이 포기하지 않고, 다시 그걸 먹기 시작했어.”

“설마 다시 먹을까 싶었는데, 역시 다이스케네. 소리만으로도 그런 줄 알았어. 진짜 용감해.”


흘깃, 시계를 곁눈질로 보았다. 두 시 사십 분.

‘맘껏 즐기며 먹고 싶은데, 서둘러 먹어 치워야 한다…….’

다이스케는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얼굴이고 머리카락이고 크림 범벅이었다. 양손으로 탁자를 짚고 선 채, 덥석 한 입 베어 물고 두세 번 씹어서 꿀꺽 삼킨 다음 또다시 베어 물었다.

“아, 다이스케 님은 우리를 구하려는 영웅 같아!”

두꺼비가 오톨도톨 닭살 돋은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중얼거렸다.(『마녀의 슈크림』, p78-81)      

 

  다이스케는 자신의 몸을 담보로 마치 우리들의 욕망을 대신하여 싸우는 푸드파이터 같다.   

       

9. 왜 슈크림인가        

  『마녀의 슈크림』은 다이스케 안에 가득 차오른 주체하기 힘든 욕망과 허기를 판타지라는 장치를 빌러 채우고 해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의 분석심리학자 가와이 하야오는 『판타지 책을 읽는다 심리학자가 읽어 주는 판타지 문학』(가와이 하야오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비룡소, 2006)에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마법과 꿈을 들고 있다. 다이스케는 판타지라고 하는 자신이 스스로 불러일으킨 내면세계 속 마법을 통해 욕망을 해소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왜 다이스케는 ‘슈크림’에 집착하였는지가 궁금하다. 맛있고 영양가 있는 좋은 음식 섭취를 통해 육신의 피로가 풀리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등 심신이 치유된다는 사실에는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다이스케가 집착한 것은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른 달콤한 슈크림이다. 따라서 떠오르는 것은 백 배나 큰 크기로 부풀어 오른 슈크림은 어쩌면 다이스케의 자아 팽창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부풀어 올랐던 다이스케의 자아 팽창은 백 배나 되는 슈크림을 두 번이나 먹어 치우는 것으로 인해 욕구가 채워지고, 야생 동물들의 목숨을 구해낸 영웅이 되면서 내면의 팽창도 채워진다. 따라서 『마녀의 슈크림』은 욕망을 가진 주체가 모험 속으로 뛰어 들어가, 투쟁을 통해 슈크림을 획득하고, 고통 속에 있는 야생 동물들이라고 하는 타자를 구해내며 영웅이 되는 이야기 구조를 띤다. 물론 이로써 충분하다.

  하지만 이 이야기 이면에 담겨있는 함의는 이렇게 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여기서부터는 내 경험을 덧붙여 가며 조금 더 깊게 파고 들어가 볼까 한다.     

   

10. 나는 무슨 허기에 시달리는가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아이스크림에 탐닉한 때가 있었다. 슈크림을 탐닉하는 다이스케와 거의 같은 상황이었다. 그래도 다이스케는 젊고 건강하기나 하지, 나는 튼튼하지 못한 몸을 가진 중년임에도 불구하고 아이스크림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거의 내리 한 달을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이스크림을 먹어댔다. 자정 직전까지 하루에 세 차례 먹는 날도 있었다. 그런데도 또 먹고 싶었다. 먹어도 먹어도 만족이 되지 않았다. 거의 이런 상황이 한 달간 이어졌고, 몸에 이상 현상이 생겨 먹는 걸 포기해야만 했다.  


  심리 상담가 프레드릭 올버튼은 『어떻게 나쁜 습관을 멈출 수 있을까』(프레드릭 올버튼, 수잔 샤피로, 이자영 옮김, 소울메이트, 2013)에서 “섭식장애를 앓는 사람들을 상담하면서 폭식증이나 거식증은 주체할 수 없는 내적 감정을 통제하기 위한 강박적이고 해로운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폭식증이나 거식증 등의 섭식장애 역시 중독의 하나로 본다.(p53)”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 자신 또한 잠들기 직전에 “우유와 설탕이 잔뜩 들어간 아이스크림(p71)”을 먹어야 했다며 아래와 같이 고백한다.    

    

나 역시 중독 상담을 받아야 할 처지였다. 마치 세상에 혼자 있는 것처럼 외롭고, 그러면서도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중독자의 태도를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자가 상담을 하기로 결심했다. (…) 공허와 불안을 느끼지 않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전에는 결핍된 사랑을 담배에 의존해서 해결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담배를 끊었기 때문에 더 이상 담배에 마음을 기댈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스크림이 함유하고 있는 우유와 설탕에 기대어 마음을 안정시키고 잠자리에 들려고 했다. 나의 행동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스크림을 먹는다는 단순한 행동이 아닌, 그 내면에 숨겨져 있는 것이 문제였다.

(『어떻게 나쁜 습관을 멈출 수 있을까』, p178-181)     

   

  그렇다면 나는 한 달 가까이 왜 그렇게 아이스크림에 집착했을까. 아이스크림은 우선 다 큰 어른보다는 어린이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다. 그런 아이스크림을 나는 주야장천 먹어댔다. 프레드릭 올버튼의 말대로 나는 심리적 허기, 공허감, 허전함, 불안과 걱정을 달래기 위해 ‘우유와 설탕’에 기대었는지도 모른다. 

  프레드릭 올버튼은 “(…) 별로 위험해 보이지 않는 습관이 결국에는 건강상의 문제나 관계 갈등, 경제적 어려움, 불법이나 부도덕한 행동, 배우자 부모 자녀 학대 등 심각한 문제를 유발하는 것을 많이 봤다.”라면서 “공허감은 중독 물질이나 강박적 행동으로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p182)”라고 강조한다.

  결국 아이스크림을 탐한 나는 건강 상태에 문제를 가져왔고, 슈크림을 탐한 다이스케는 누나의 것을 탐하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11. 식탐, 그 이면을 생각한다        

  『마녀의 슈크림』에서는 애초에 다이스케가 왜 슈크림을 탐하는가에 대한 배경이 그려져 있지 않다. 어느 날 갑자기 백 배나 큰 슈크림을 탐하는 소년의 이야기가 나올 뿐이다. 엄청나게 큰 슈크림을 탐하는 만큼, 야생 동물들의 목숨을 구해내며 큰일을 완수해 낸다. 커다랗게 팽창된 욕망의 크기만큼 큰일을 해낸다. 그리고 이러한 내적 모험을 해낸 뒤로는 “요즘 들어 누나의 간식에 손을 대지 않게 되었다. 제일 좋아하는 슈크림이라도 말이다.(p108)”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누나의 것도 탐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되풀이하며 강조하지만 정말이지 이 이야기는 이로써 충분하다.


  하지만 나는 다 큰 어른인데도 불구하고 잠재적 아이스크림 중독 현상이 일어났다. 어느 날 갑자기 난 아이스크림을 탐닉했다. 『마녀의 슈크림』의 다이스케 또한 아무런 이유 없이 슈크림을 탐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자 그렇다면 그 많고 많은 음식 중에서 나는 왜 아이스크림이었고, 다이스케는 왜 슈크림이었을까.


  앞서 심리 상담가 프레드릭 올버튼의 경우에서 내게 ‘아하’가 온 것은 역시 우유와 설탕이다. 우유와 설탕 하면 나는 우선 엄마가 떠오른다. 갓난아기 시절 내게 모유를 주고 내 생명을 연장시켜 준 가장 달콤한 존재 하면 내게는 엄마 말고는 달리 떠오르질 않는다. 슈크림은 어떠한가. 슈크림 속에 들어있는 크림은 달걀, 설탕, 우유가 주재료이지만, 슈크림이란 이름 이전의 역사적 어원을 거슬러 가면 그 봉긋하게 부풀어 오른 모습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유방이란 뜻을 함의한다고 한다. 


  『마녀의 슈크림』에서 다이스케가 주변 사람과 충돌하는 큰 갈등은 나오지 않지만 첫 장면에서 엄마에게 혼이 나 집을 뛰쳐나오는 장면이 유일하다.    


“안 돼! 다이스케, 그건 누나 거잖아!”

열린 창문으로 새어 나온 엄마의 고함 소리가 길 건너 공원까지 울려 퍼졌다.

“좀 먹으면 어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슈크림인데!”

사내아이 말대꾸 소리도 들렸다.

“좋아한다고 누나 것까지 먹으면 어떡하니!”

“칫! 엄마는 내가 슈크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알아! 너 이담에 슈크림 가게 할 거라는 거! 너 슈크림 좋아하는 거 아니까 간식도 슈크림으로 줬지. 그리고 간식은 세시에 먹으랬지! 아직 두 시도 안 됐는데 벌써 다 먹어 치우면 어떡하니? 하여튼 너는!”

“그래도 한 시간이나 참았다고요! 벌주는 것도 아니고 세 시까지 기다리라니 정말 너무해요!”

“심부름도 안 하고, 공부도 안 하고, 네 머릿속은 그저 슈크림 생각뿐이지?”(『마녀의 슈크림』, p6-8)      

      

  이 장면에서 다이스케는 엄마로부터 ‘안 돼!’라는 금지를 당하고, 이에 반발이라도 하듯이 “꽝 소리가 나도록 현관문을 세게 닫고는 길 건너 공원(p9)”으로 뛰쳐나간다.               


12. 우는 아이에겐 그 무엇인가 이유가 있다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알프레드 아들러는 『개인 심리학에 관한 아들러의 생각』(알프레드 아들러 지음,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2017)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의 두드러진 태도는 그 기원을 따지고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어린 시절까지 닿는다. 말하자면, 사람의 미래의 태도는 전부 육아실에서 형성되고 준비된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훗날 사람의 태도에 근본적인 변화를 주려면 엄청난 자기성찰이 반드시 필요하다.(『개인 심리학에 관한 아들러의 생각』, p25-26)    

    

  『마녀의 슈크림』에서 다이스케는 엄마한테 슈크림을 먹는 것을 금지당하자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뛰쳐나간다. 그리고 백 배나 큰 슈크림을 먹는 모험으로 돌입한다. 위에서 아들러가 말한 것처럼 이러한 다이스케의 행동은 어딘가 ‘두드러져’ 보인다.


  나는 간혹 길거리에서 대여섯 살 넘은 아이가 떼를 쓰며 울거나, 한번 울기 시작하면 좀처럼 울음을 멈추질 않는 모습을 목격할 때마다, 저 아이가 저렇게까지 울 정도면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려니, 하고 생각하곤 했다. 아들러의 “육아실에서 형성되고 준비된다”는 말과 함께 앞서 소개한 니시 마사히코의 「아동문학과 기아」에서 막 태어난 갓난아기가 욕망과 포만감을 채우기 위해 처절하리만치 울어대는 것을 통합해 생각할 때 ‘아하’가 온다. 


  떼쓰며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이들 중에는 그들의 타고난 기질이나 욕망의 용량이 남달라 그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한편, 어쩌면 그 아이들이 갓난아기 때에 삶에 대한 강한 욕망으로 처절한 공복감을 느끼고 그 공복감을 채우기 위해 우유를 찾았지만 여러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겪은 근원적인 공포와 좌절 체험이 그 후에 이와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될 때 그러한 현상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13. 심리적 허기를 채우는 방법        

  속담 중에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갓난아기는 자기가 욕망하는 만큼 분유나 젖을 맘껏 먹은 뒤에는 포만감에 차올라 천사 같은 얼굴로 잠이 든다. ‘아귀’의 모습에서 ‘천사’의 모습으로 바뀌는 것도 순식간이다. 


  다시 『마녀의 슈크림』의 다이스케로 돌아가 보자. 다이스케는 엄청난 양의 슈크림을 먹어 치우고 동물들의 목숨을 구해낸다. 그리고 일상생활로 돌아온 다이스케는 고양이, 까마귀, 두더지, 두꺼비와 친구가 된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누나와 엄마는 그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다이스케의 엄마와 누나는 슈크림밖에 몰랐던 다이스케에게 동물 친구가 생긴 건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이스케에게 자기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특별한 능력이 있는 거라고 짐작했다.(『마녀의 슈크림』, p110)


  늘 구박만 받던 다이스케에게도 누나와 엄마가 인정하는 ‘특별한 능력’이 생긴 것이다.

  아들러는 이와 관련해서 “역사를 거꾸로 어린 시절까지 더듬어 올라가면, 아이가 육체적 정신적 발달이 이뤄지는 기간 내내 부모와의 관계와 세상과의 관계에서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접하게 된다. 신체 기관의 미성숙과 불확실성, 독립의 결여 때문에, 그리고 더욱 강한 본성에 의지해야 할 필요성과 다른 사람에게 종속된다는 느낌(P31)”으로 열등감이 생기고 그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우월 목표’를 설정하게 된다며 아래와 같이 말한다.        


아이는 하나의 목표를, 상상 속의 우월의 목표를 설정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 목표만 달성되면, 아이의 결핍은 풍요로 바뀌고, 종속은 지배로 바뀌고, 고통은 행복과 쾌락으로 바뀌고, 무지는 전지(全知)로 바뀌고, 무능은 예술적 창작으로 바뀔 것이다.(『개인 심리학에 관한 아들러의 생각』, p31-32)        


  『마녀의 슈크림』에서 다이스케가 누나와 엄마가 인정하는 ‘특별한 능력’을 획득하여 건강성을 회복한 야생 동물들과 친구가 되어 함께 노는 이 순간이야 말로, 다이스케가 심리적 허기에서 벗어나는 바로 그 순간이 된다. ‘공상’과 ‘허구’와 ‘상상’이라고 하는 판타지의 세계를 자신의 내면 체험의 순간으로 가져와 자신의 삶을 변환시킨 이 방법보다 더 건강한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아이스크림에 기대 몸에 이상 현상을 가져오는 나에게는 그저 부럽기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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