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달의 『눈아이』를 보고 있으면 불현듯 눈 오는 날이 기다려진다. ‘나도 눈사람을 만들어야겠다’라는 생각이 샘솟는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온 세상이 눈 세상이 된 날 아침 학교를 가던 소년은 자신의 키만한 눈사람이 “뽀득 뽀득” 움직이는 걸 본다. 학교에 도착해서도 그 모습이 잊히지 않던 소년은 하교 종이 울리자마자 가방에 교과서를 챙겨 넣고 눈사람을 향해 달려 나간다.
소년은 눈을 모아 눈사람에게 손을 만들어주고, 발을 만들어준다. 그러자 눈사람이 ‘나 잡아봐라’하듯 저만치 달려간다. 소년은 장갑을 벗고 눈사람에게 눈과 입을 그려준다. 눈사람은 눈아이로 태어나, 감격에 겨워 옹알이를 하듯이 ‘우아’, ‘우아’를 폭폭수처럼 쏟아낸다.
눈사람이 눈아이로 태어나는 순간이다. 소년과 눈아이가 친구가 되는 순간이다.
소년과 같은 체격, 같은 키의 눈아이는 소년이 만든 눈 빵을 먹고 점점 몸이 커진다.
둘이 토끼를 쫓아 산 언덕을 오르자 “눈아이는 어느새 손이 닿지 않을 만큼 커다래”진다.
아무래도 눈아이의 성장이 심상치 않다.
눈아이가 아닌 눈 거인 같다. 눈 빵을 먹었다고 눈아이가 이렇게 갑자기 커지진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눈 빵만이 아닌 소년의 관심과 사랑의 힘인 것만 같다.
작은 눈을 뭉쳐 굴리고 굴리면 눈덩이가 점점 커지 듯 눈아이는 소년의 관심과 사랑으로 눈덩이처럼 커진다.
소년의 가방 썰매를 타고 내려오다가 뒤쪽에 올라탄 눈아이가 튕겨져나간다. 눈 위에 엎드려 꼼짝을 못 하는 눈아이에게 소년은 “괜찮아?”란 말을 건네고, 눈아이는 “응”하고 대답하며, 이제는 소년이 도와주거나 거들지 않아도 눈아이 스스로 일어나 앉는다. 눈아이의 성장이 눈부시다.
따스한 소년의 눈빛, 입김, 손길에 눈아이는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어느 시기에 도달하면 따뜻함도 독이 되는 것일까? 온 세상이 따스한 햇볕으로 감싸이자 눈아이는 점점 작아지고 더러워져 간다. 눈아이를 둘러싼 세계가 따뜻하면 따뜻할수록 눈아이는 녹아든다. 그리고 눈아이는 그렁그렁 눈물을 흘리며 소년에게 묻는다.
내가 더러운 물이 되어도 우리는 친구야?(『눈아이』)
사실, 우리는 그림책을 끝까지 보지 않아도 알고 있다.
눈아이가 사라질 것이란 것을.
찰나의 순간일지언정 지금 이 순간이 전부인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여, 그와 비례하는 속도로 사라져 가는 눈아이는 가슴을 아프게 한다.
하지만 또 우리는 알고 있다. 눈 내리는 겨울이 오면 다시 눈아이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소년이 눈아이에게서 생명을 보았던 그 마음을 간직하고만 있다면.
그러나 걱정 없다. 빨간 장갑과 소년이 목에 두른 초록 목도리가 말해준다.
소년과 눈아이는 빨간 장갑을 한 짝씩 나눠 낀다. 빨간 장갑은 약속의 징표가 되고, 소년은 다음 해에 빨간색 장갑을 낀 눈아이를 만나게 된다.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는 것처럼, 만날 친구는 다시 만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초록색. 그림책 『눈아이』에서 소년이 목에 두른 초록색은 사시사철 푸르른 전나무 색으로도 나온다. 전나무처럼 푸르른 소년은 전나무처럼 커서도 생명을 찾아내는 마음의 눈을 가지고, 생명을 보는 사람으로 크게 크게 자라나 있을 것만 같다. 그 어디선가 여전히 생명을 보는 눈으로 생명을 찾아내 생명을 말하고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