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누군가를 따를 때는 그냥이 아니다. 그 무엇인가가 관여되었기 때문에 발생한다.
아침, 빨리 눈이 떠졌다.
물 한 잔 마시고 창문을 여니 어느새 밖이 환하다.
나는 세수를 하고 바로 밖으로 나간다.
찔레꽃과 아카시아가 만발하고 때죽나무 꽃이 피어올라 향기가 은은하다.
아침 햇살이 드리운 들길을 따라 몸을 풀고 있는데 어디선가 고양이 소리가 난다. 길고양이 사랑이일까. 불러도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이른 아침 강아지와 산책 나오신 분이 내쪽으로 다가온다. 평소 사랑이가 잘 따르던 분이다. 이분이 “사랑아” 부르자 “야옹”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철쭉나무 수풀에서 사랑이가 냉큼 달려 나온다. 그리고는 이분 발밑을 떠나지 않는다. 두 존재 사이가 이만 저만 돈독한 게 아니다.
“사랑이가 잘 따르네요.”했더니, 처음에는 별로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사랑이가 워낙 잘 따라 정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랑이가 이분을 따르기까지는 전사가 있었다.
이분은 사랑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봐왔고, 사랑이랑 좀 가까워질 무렵, 사랑이 귀에서 진물 같은 것이 흘러서 보니, 중이염을 앓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고양이 전용 약을 사다가 발라주어 나았다는 것이다. 사랑이가 아프고 힘들 때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을 때 이분이 약을 발라주고 보살펴준 것이다.
그랬던 것이구나.
그래서였구나.
그럼 그렇지.
사람을 잘 따르지 않는 길고양이 사랑이가 이분을 잘 따르는 것은 이러한 까닭이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분 말고 사랑이가 잘 따르는 사람들은 이분과 마찬가지로 그 어떤 연유가 있었을 것이다. 사랑이가 그냥 무턱대고 아무나 따르진 않을 것이다.
나와 사랑이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저 그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고 관심을 보였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이가 가끔 내게 보이는 호의를 그저 감지덕지하며, 그 아이가 지닌 사랑스러움에 그저 나 혼자 좋아서 사랑이를 따를 뿐이다. 그래서 때로 그 아이가 휑하니 돌아서도 살짝 아주 살짝 서운하기는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전혀 다른 종인 사랑이와 돈독하기까지에는 나와 사랑이 사이에는 아무런 내재한 연유가 없다. 그래서 나는 일방적으로 사랑이를 지켜보고 불러주고, 가끔 내게 보이는 호의에 벅차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