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속에서 성장하는 존재들

에세이 하루와 하루 사이

by 강이랑

어쩌면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은 일주일을 보낼 뻔했다. 정말 그렇게 어영부영 보냈다 한들 어쩔 수 없다. 이미 그렇게 시간은 지났고 보냈기 때문이다.


일주일 전에 중학교 때 친구가 여주가 먹고 싶은데 마트에서 구할 수 없다며, 주말쯤에 집으로 놀러 오라고 한다. 나는 우리 동네 마트 어디어디로 가면 여주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햇살을 온몸으로 만끽하며 여주를 구하러 밖으로 나선다.


옆집 담벼락의 능소화

옆집 능소화도 담 밖으로 나와 온몸으로 햇살을 만끽하고 있다. 정오 한낮 햇살에도 끄떡없구나. “능소화님, 저보다 훨 낫습니다!” 절로 존칭어가 나온다.


능소화의 아름다움에 힘을 받은 나는 평소 걷던 평탄한 길이 아닌, 계단을 올라가는 길로 과감하게 경로를 바꾸어 영화 <록키>의 한 장면처럼 힘차게 오른다. 한여름 땡볕이 내리쬐는 정오, 그동안의 게으름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괜한 객기를 부려본다.


목표로 한 마트를 들어가 야채 코너를 두 바퀴를 돌고 나서야 여주가 든 상자를 발견한 나는, 실하고 싱싱한 여주를 꼼꼼하게 골라 비닐봉지에 담았다. 내가 원하던 바로 그 여주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정오의 햇살이 무서운 나는 모자를 썼는데도 양산까지 챙겨, 친구 집을 향해 길을 나선다.


지붕을 뚫을 것처럼 주야장천 며칠이고 끈질기게 내리던 빗속을 그렇게 맨몸으로 견디고 햇살을 맞이한 길가 식물들이 무성해서일까, 자주 가는 친구네 집인데도 풍경이 달라 보인다.


친구네집 가는 길가에서 본 강아지풀

강아지풀이네! 어린 시절 손바닥에 올려놓고 놀았었지. 내 아무리 가는 길을 서두른다 해도 너희들을 안 찍을 수가 없다. 강아지풀은 어린 시절 놀았던 풀이라 막 반말이 나온다.


초록 잎사귀와 보랏빛 꽃이 아름다운 맥문동

보랏빛 꽃줄기가 길쭉길쭉한 맥문동도 아름답다. 꼭 내 친구 같이 키도 크고 날씬하다. 한여름 그 많은 장애 속에도 식물들은 이토록 쑥쑥 자라고 있었던 것이로구나.


친구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직접 공수해온 여주를 자랑스럽게 꺼내 친구에게 건넨다. 그러자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해둔 참치와 함께 여주 샐러드를 만들기 시작한다. 여주를 씻어 반으로 갈라 안의 쓴맛 나는 씨앗을 숟가락으로 파내고 탁탁탁탁 먹기 좋게 썰어 소금에 절여 씻어낸 다음 참치와 마요네즈로 버무려 멋진 그릇에 담는다. 내 친구 요리사!

여주 특유의 싱그런 향과 빛깔이 식욕을 자극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요리로 맥주를 마실 생각이다. 누군가가 내게 저녁밥으로 밥을 먹을래? 맥주를 마실래? 한다면 나는 맥주라고 답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맥주를 좋아한다. 그런데 친구도 맥주를 맛있게 마실 줄을 안다. 친구랑 먹으면 딱 적당한만큼만 마신다. 내심 나는 더 마시고 싶기도 하지만 순순히 따른다. 친구 덕분에 절제를 지키고 아는 순간이다.



그래서 먹었고, 마셨다.



친구 덕에 나도 이 여름 아무것도 안 할 뻔 한 이 한 주 행복을 만끽했다. 그리고 우리는 가족에 대해, 친구에 대해, 나 자신에 대한 아주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를 나누며 알았다. 친구는 두 말할 필요도 없고 아, 나도 나도 강아지풀이나 맥문동처럼 이 여름 그래도 자라고 있었다. 참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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