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었다

에세이 하루와 하루 사이

by 강이랑

엄청난 폭우다.

그림책 독서 모임이 있어서, 집을 나서려 하는데 폭우가 쏟아졌다.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다. 방수 잘 되는 신발, 책을 보호해줄 커다란 가방, 가벼운 옷차림, 그리고 우산.

만만하게 생각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단단히 각오까지 한 터였다.


폭우는 사방에서 휘몰아치듯 내리쳤고, 믿었던 신발은 속수무책이었다. 정말이지 내가 만만하게 볼 상황이 아니었다. 집을 나선지 3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흠뻑 젖고 말았다. 순식간이었다. 비옷을 입고, 장화를 신고 왔어도 모자랄 판이었다.


나 자신의 안이함을 인정하고 재정비를 해야했다.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은 아직 늦지 않았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비옷 역할을 할 겉옷을 걸치고, 양말과 신발을 갈아 신고, 여분의 양말을 더 챙기고, 집에 있는 가장 큰 우산을 집어 들었다. 이 커다란 우산을 쓰는 것은 몇 년만인가. 잘 살펴보면 제 때에 제 역할을 할 도구들이 있는데, 나는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이야말로 장화를 신었어야 했는데 이미 늦었다.


하지만 몇 분 전의 속수무책과는 달랐다. 방심한 것이 아닌데도 종종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릴 때가 있다.


빗속에 핀 옆집 능소화

만만하게 생각한 것은 결코 아니지만 결국 그런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길가 비에 젖은 다른집 분꽃 화분

전철 바닥도 빗물로 흥건하고, 온통 빗물 투성이었다. 모임에서도 오늘의 첫 번째 화두는 온통 비에 대한 것이었다.


빗물에 젖은 우리집 분꽃


빗물에 흥건히 젖은 우리집 분꽃


집으로 돌아와 여전히 몰아치는 빗소리에 집중하며, 나는 이 세상에는 그 어느 것도 만만한 것이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나 자신의 미약함을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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