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난 아이, 소피의 경우

몰리 뱅,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박현수 옮김, 책읽는곰)

by 강이랑

<그림책 한번 읽어볼까?> 몰리 뱅의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


몰리 뱅의 그림책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2013)에서 주인공 소피는 애착 인형 고릴라를 트럭에 태워 노는 것을 좋아한다. 사랑하는 인형과 장난감 트럭만 있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혼자 한참을 놀 수 있지만, 소피만큼이나 고릴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또 한 명 있다. 소피의 언니다.


엄마까지 언니 차례라고 편고, 고릴라를 뺏기지 않으려다가 에서 밀려 넘어진 소피 가 난다.

소피의 분노는 새빨갛게 소피 주위를 감싸며 폭발 일보 직전이다. 아니나 다를까, 소피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며 문을 닫고는 밖으로 뛰쳐나간다. 숲으로 달려간 소피는 늙은 너도밤나무에 올라앉아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감정을 달랜 후 다시 집으로 들어온다. 밝은 얼굴로 돌아온 소피를 가족들은 따뜻하게 맞이한다.


아무리 자신이 애착하는 인형일지라도, 사랑하는 엄마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편을 들지라도, 모두가 다 소피처럼 분노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소피는 분노한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소피는 자신의 분노를 내면으로 억압하거나 무의식 속에 가두는 것이 아닌 표출하는 아이인 것이다. 소피가 신은 양말은 짝짝이다. 소피는 왼발에는 연두색 양말을 오른발에는 보라색 양말을 신었다. 틀에 박힌 기존 관념을 거부하 자기 욕구가 분명한 아이이다. 어쩌면 욕망의 크기만큼이나 화가 많은 아이기도 하다.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는 것이 아닌 거부당했을 때는 욕구를 과감하게 표현하고, 분노하고, 해결 방법까지 스스로 찾아는 아이인 것이다. 그런 한편 소피는 자신의 분노를 가족들에게 투영하지도 않고 가족들에게 위로를 요구하는 것도 아닌 자연 속에서 자기 나름의 해결 방법을 찾아낸다.

그림책 뒤표지는 화가 난 소피가 집을 나와 늙은 너도밤나무를 찾아가 올려다보는 장면을 가져왔다. 연륜이 깊은 나무인만큼 둥치가 하얀 너도밤나무에는 소피가 발 딛고 올라갈 수 있는 듬직한 가지들이 곳곳에 뻗쳐있다.


한 곳에 뿌리내린 채 수백 년 동안 묵묵히 초록 잎사귀를 틔운 너도밤나무와 다혈질 아이 소피의 만남.


소피는 머릿결을 어루만지는
산들바람을 느껴요.
일렁이는 물결을 바라봐요.
드넓은 세상이
소피를 포근히 감싸줘요.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

늙은 너도밤나무는 내가 생활하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신성한 나무 그 자체일 수도 있다. 또는 품이 넓은 우리들의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상징할 수도 있다. 어찌되었거나 다혈질 소피를 품어줄 존재가 가까이에 있는 것은 행운이다.


화를 내는 이유는 각기 다를 것이다. 화를 표출하는 방법도 각기 다를 것이다. 소피의 경우는 나는 더 원해, 나 속상해, 나 화났어, 하며 가족들에게 표현하고, 대신에 화를 가족들에게 투영하는 것이 아닌, 대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고, 다스린다.


소피는 어쩌면 대자연의 숨결 속에서 위로를 받고, 대자연에 압도되어 자신의 감정 따위는 한갓 미숙한 감정에 지나지 않으며, 자신이 지나쳤음을 깨달았을 수도 있다. 또 어쩌면 무슨 이유에선가 그동안 먼지처럼 켜켜이 쌓였던 좋지 않은 감정을 바람을 쏘이며 환기시켰을 수도 있다. 그래서 고릴라를 사이에 두고 벌인 자매간의 쟁탈전은 어쩌면 그닥 중요하지 않고, 화가 난 것은 단지 바깥바람을 쏘이기 위한 핑계였을 수도 있다. 아니면 이를 계기로 자신의 욕망의 크기를 직시했을 수도 있다.


소피만이 아닌 우리 또한 때때로 화가 날 때가 있다. 소피처럼 방방 뛰어오를 것처럼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고, 분에 못 이겨 바깥으로 내달렸을 수도 있다.


숲 속에서 눈물을 훔치며 걷던 소피가 축 쳐져 때, 음지식물인 고사리 또한 축 쳐져간다. 즐겁고 명랑하고 좋은 감정만큼이나 부정적인 감정 또한 내 안에 존재함을 알고 있지만, 짜증이나 화 같은 어쩌면 음지의 감정을 나 스스로 얼마나 직시하고 다독이고 있는지는 의문이 든다.


안전지대인 가족 안에서 음지의 감정 또한 서로의 성장 과정으로 이해하며 풀고 받아주는 넓고 단단한 소피네 가족이 부럽다.


가끔 주변에서 만나는 존재들 중에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직시하지 못하고 감정 쓰레기를 아무 데서나 질질 흘리거나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스스로 해소하지 못하고 가까운 타인에게 투사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어쩌면 해소할 수 있는 장치가 부족하거나, 적절하게 풀어낼 방법을 모르거나, 잘 비우지 못하고 등한시한 채 쌓아놓거나, 욕망의 크기에 비해 담아낼 내면의 용량이 적어서 발생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


소피의 경우를 보면서 욕망이 큰 아이일수록 화도 많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소피의 경우는 어디까지나 아직 어린 아이이다. 다 커서까지 자신의 화를 직시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투사하며 화내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표출한다면 대략난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면의 미숙한 유아성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란 과제가 제시된다.


어찌 되었거나, 서로 좋은 감정을 공유하고, 부정적인 감정 또한 성장의 기폭제로 가져갈 수 있는 관계나 장치가 지금 내 곁에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내 정신 건강 또한 좌우됨을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을 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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